성 소수자 인권 문제는 정치인에게는 뜨거운 감자다. 동성 결혼이 합법화된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한 이 쟁점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거듭 표명해온 사람이 있다. 바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다.

반기문 총장은 최근 여당의 강력한 대권 후보로 떠올랐다.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온갖 평가가 따라오기 마련이다. 그중 새누리당 이혜훈 의원의 언급이 눈길을 끈다. 공개 강연에서 이 의원은 “유엔 사무총장이 하나님 나라를 무너뜨리는 법을 밀고 있다”라고 대놓고 비판했다. 여기서 ‘하나님 나라를 무너뜨리는 법’이란 차별금지법을 일컫는다. 유엔은 대한민국 정부에 대해 “성 소수자를 포함한 약자와 소수자를 차별하지 말라는 내용의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고 수차례 권고했다. 유엔의 각종 규약위원회가 유엔 사무총장의 견해나 지시에 따라 권고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 의원의 비판이 엄밀한 의미에서 맞진 않지만 또한 터무니없는 것도 아니다.

반 총장은 유엔의 각종 회의나 행사, 기념식 등에서 성 소수자 인권 문제에 대해 분명한 메시지와 소신을 피력해왔다. 유엔의 공식 문건이나 보도자료, 외신 등을 통해 확인된 것만도 10여 건이나 된다. 그는 2010년 12월10일 뉴욕에서 “전 세계가 편견에 맞서 싸우라. 폭력에 대항해 목소리를 내라”고 촉구함으로써 ‘기념비적’이라는 평가를 듣는 연설을 남긴다. “양심을 가진 인간으로서, 우리는 특별히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거부합니다. (중략) 동성애를 범죄화하고,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용인하고 폭력을 조장하는 법을 폐지해야 합니다. (중략) 저는 이런 일에 헌신할 것입니다. 공적·사적 외교 수단을 적절히 활용하고자 고심하고, 언제 어디서든 이 이야기를 꺼낼 것입니다. 이것이 옳은 일이고 정의로운 일이기 때문입니다(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한 폭력 및 제재 철폐 행사에서).”

유엔의 수장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자, 유엔의 여러 기관은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 금지를 주요 의제로 채택한다. 2010년 이후부터 그는 유엔 패널 토의 대표연설, 뉴욕 인권영화제, 유엔 성 소수자 직원간담회, 국제올림픽 위원회 기조연설에서 이런 발언을 계속했다. 외국에서뿐 아니다. 지난 5월 말 한국에서 열린 제주 포럼과 유엔 NGO 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도 이런 발언을 이어갔다.

문화와 전통·종교를 빌려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데 대해서도 그는 단호히 부정한다. 반 총장은 “문화와 전통을 존중한다 해도 성 소수자에 대한 기본적 인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런 법들은 사라져야 할 법”이라고 잘라 말한다. 각국 정부에 대해서는 “편견과 맞서 싸울 의무가 있다”라고 압박하면서 변화를 위해 지속적인 시민교육을 시행하라고 촉구했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성 소수자와 연대하겠다는 발언을 빠뜨리지 않는 점이다. “성 소수자들께 말합니다. 당신들은 혼자가 아닙니다. 오늘, 저는, 당신들의 편에 섭니다.”

‘성 소수자 편에 서겠다’는 말, 어떻게 지켜나갈지 궁금하다

반 총장은 유네스코 한국위원회가 발간한 가이드북에 서문을 기고하면서 “저의 모국 대한민국에서도 동성애는 대개 금기시되고 있다”라며 한국의 동성애 혐오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성 소수자를 차별하지 말라는 수준을 넘어 그는 동성 결혼 합법화에 대해서도 분명한 견해를 밝힌다. 아일랜드와 미국의 동성 결혼 합법화 이후 “정말 역사적인 순간이다. 적극 환영한다”라고 극찬했다. 유엔 사무국의 성 소수자 직원에게는 동등한 배우자의 권리와 혜택을 부여하는 정책을 단행했다.

최근 한국의 성소수자법정책연구회가 펴낸 발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성 소수자 인권 보호 수준은 마케도니아나 터키·모나코·우크라이나와 비슷하다. 리투아니아와 코소보·키프로스보다 못하다. 작년과 올해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 퍼레이드 축제 때에는 성 소수자를 혐오하는 맞불 집회가 열렸다.

반 총장의 성 소수자 인권 옹호 발언을 읽으면서 일견 놀라움이 생긴다. 그를 따라다니는 ‘미끄럽다’는 별명이 이 주제에 관한 한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어느 정치인보다 반 총장은 성 소수자 인권에 대한 확고한 옹호자다. 그가 국내 정치의 진흙탕 속에 들어온 뒤에도 성 소수자 인권 의제를 유엔 사무총장 때의 자세로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갈 수 있을지, 반동성애와 혐오의 분위기를 어떻게 돌파해 나갈지 주요한 관전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기자명 문경란 (서울연구원 초빙연구위원·전 서울시 인권위원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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