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교무실을 쓰던 강사가 해고됐다. 갑작스러운 소식이었다. 팀장은 해고 통보를 사흘 전에 한 것만 해도 예의를 지킨 것 아니겠느냐고 위로했다. 학원가에서 해고는 흔한 일이다. 동료들은 마구 잘려나간다. 어떤 학원에서는 강사를 3주 만에 잘랐다. 한 학생이 “그 강사가 수업을 못해서 한 시간 앉아 있는 것도 아까웠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해고당해도 금방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게 또 학원 강사 일이다. 학원은 많고 강사도 많다. 그들 중 4대 보험에 가입된 사람은 거의 없다. 4대 보험 가입을 요구하는 이에게 “법을 많이 알아서 불편하다”라며 해고하는 경우도 있다. 관행에 의문을 제기하면 피곤해지는 것은 본인이다. 대부분 월급에서 사업소득세를 공제하고 있고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사람도 없다. 작성한다 하더라도 ‘강의 위탁 계약’이라는 실제와 다른 계약서를 쓴다. 학원은 항상 강사에게 “사업자끼리” 계약한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퇴직금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고 실제로도 지급하지 않는다.

물론 퇴직금을 주는 학원도 있긴 하다. 1년간 월급에서 13분의 1을 떼어서 적립했다가 연말에 돌려주는 방식이다. 강사의 한 달치 월급을 적립했다가 퇴직금 명목으로 돌려주는 것이다. 월급 적립이 불법이라고 언급해봐야 그들은 “어차피 다 돌려줄 돈”이라고 말하곤 한다. 동시에 이것이 근로자성을 인정받는 계기가 될까 봐 두려워 ‘계약 유지 장려금’이라는 용어로 지급해 노동청의 감시를 피해가곤 한다.

ⓒ박해성 그림

교재 저작권 강탈에 임금 체불까지

학원에 소속된 강사 대부분은 주 5일 혹은 주 6일 내내 학원에서 정해준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전임’ 강사다. 정해진 월급을 받는 회사원인 셈이다. 하지만 학원은 강사들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혹시라도 법정 다툼에 가서 노동자로 인정받게 될까 봐 출퇴근 시간을 지정하지 않는다는 계약서를 작성하는 학원도 있다.

하지만 계약서와 달리 정해진 회의 시간이 있고, 출근 시간을 구두로 강요하고 감시하며, 시간표를 학원에서 지정해주는 등 실제로는 학원이라는 회사의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휴게 시간이 보장되지 않아 주말에 9시간 혹은 12시간씩 쉬지 않고 수업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이들을 위한 ‘서비스’ 수업 혹은 ‘학생 관리는 선생 몫’이라는 이유로 보충수업이나 초과근무도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나오지 않으면 해고된다는 말을 원장들은 서슴없이 꺼낸다.

불만을 제기하는 강사는 거의 없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초과근무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못하는 아이는 눈에 밟히고, 하나라도 더 봐주면 될 것 같은 아이들과 관심을 가져달라고 갈구하는 아이들은 너무나 많다. 보상받지 못하는 강사들의 열정은 본인 몸에서 건강을 앗아가고, 학원에는 이득을 안겨준다. 부모가 돌아가신 날도 수업을 해야 했던 한 강사는 그렇게 해야 성공한다는 원장의 위로를 받았다.

‘특수성’은 불합리한 모든 상황에 달라붙는다. 근무시간 외에 오랜 시간을 투자해 교재를 제작해도 학원 재산으로 귀속될 뿐 교재 판매 수익을 받지 못한다. 임금을 체불당하는 일도 일어난다. 체불 임금을 노동청에 가서 받으면 전액을 받기도 어렵다. 신고된 재산이 적은 원장이 많고, 그들은 협의를 요청해 더 적은 돈을 주곤 한다. 어떤 근로조건도 지키지 않으면서 임금을 밀리지 않고 지급한다는 것만으로도 남들과 다른 좋은 학원이라고 자부하는 원장도 흔하다.

마음만으로 모든 일을 버틸 수는 없기에 강사들은 고백한다. “내가 부모라면 오늘의 내 마지막 수업은 신청하지 않게 할 거야. 9시간을 못 쉬고 수업했더니 힘이 없어서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결혼식 전날까지 수업하는데, 수업이 제대로 되겠어? 애들한테 미안하지.” 이렇게 말하면서도 강사들은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한다. ‘오늘은 잘할 수 없을 것 같다’면서도 많은 직장인들이 그렇듯 그날 하루를 또 잘 견뎌낸다. 하지만 아이들 앞에 서서 강의를 하면서 ‘지금 잘하고 있나’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의무만 많고 권리가 없는 노동자라는 지위는 강사를 지치게 한다.

기자명 해달 (필명·대입 학원 강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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