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연평도는 한산했다. 골목 어귀 어디에도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지난해 이맘때만 해도 이곳저곳에서 그물에 걸린 꽃게를 떼어내느라 분주한 주민들의 왁자지껄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꽃게 발가락 하나도 보지 못한 건 처음 있는 일”이라고 주민들은 입을 모았다. 6월14일 인천 옹진군 연평면 연평도 동부리 경로당에서 만난 한 노인은, 가만히 누운 채 중얼거렸다. “일거리가 없으니 마땅히 할 일도 없어. 꽃게 따는 게 봄철 낙이었는데….”

예년의 경우, 노인들은 하루 3∼5시간씩 시간당 1만원짜리 꽃게 따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때마다 내다팔기 어려운 꽃게는 나눠먹고, 쏠쏠하게 번 용돈으론 주전부리를 사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꽃게가 줄면서 올해는 아기자기한 재미도 사라졌다. 그나마 정부가 시행 중인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해, 바닷가나 길거리에 널린 쓰레기를 줍고 소득을 마련한다. 하지만 꽃게가 주는 재미만 못하다. 노인들은 “꽃게가 안 잡히면 마을이 쓸쓸하고 가난해”라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중국 어선의 싹쓸이 조업으로 연평도 근해의 꽃게 어획량이 급감한 가운데 6월16일 오후 연평도 북단 망향전망대 인근에서 중국 어선이 꽃게를 잡고 있다

연평도를 비롯해 인천 해역에서 잡히는 봄어기(4∼6월) 꽃게는 맛이 좋아 전국에서 인기가 높다. 우리나라 전체 어획량의 40% 가까이를 차지하는 까닭에 연평도 주민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하지만 연평도 꽃게는 갈수록 씨가 마르는 상황이다. 올해 상반기 연평도 꽃게 어획량은 최근 3년간 가장 낮았다. 옹진군청에 따르면, 2016년 5월 말까지 연평어장(801㎢)에서 잡아들인 꽃게 어획량은 5만1600㎏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14만9995㎏의 약 30%에 불과하다. 2014년 33만1496㎏과 비교하면 15.5% 수준이다. 6월 한 달간 조업이 남아 있지만, 어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 어획량이 적을 것으로 본다. 어획량이 급감한 데 따라 가격이 급등하면서 꽃게는 ‘금게’가 되었다. 잡힌 꽃게는 운반선으로 옮겨져 다음 날 새벽 곧바로 인천의 수협 공판장에 도착했다. 지난해 ㎏당 2만∼ 2만5000원 선이었던 꽃게는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에서 4만∼4만5000원 선에 팔린다.

꽃게 어획량이 크게 줄면서 보름 남짓 남은 봄어기를 아예 포기한 어선이 나올 정도다. 연평도에서 꽃게잡이에 나서는 어선은 모두 33척이다. 6월에는 이 가운데 하루 20척가량만 바다에 나섰다. 집 앞마당에서 어망을 정리하던 어민 박 아무개씨는 “지금 같은 때는 출항하는 게 오히려 적자다. 유속이 느린 ‘조금’ 때는 하루 두 상자(상자당 50㎏)를 간신히 채운다. 꽃게가 주렁주렁 열리던 해에는 30∼50상자씩 담았다”라고 말했다. 한 번 출항하는 데 쓰는 기름 값 45만원, 선원 6명 인건비에, 늘 교체해줘야 하는 그물 값을 제하면 손에 쥐는 돈이 거의 없다.

ⓒ시사IN 조남진6월16일 오후 일찍 조업을 마친 연평도 어선들이 닻을 내린 채 항구에 정박해 있다.

연평도에서 꽃게가 ‘흉년’을 맞은 것은 중국 어선 때문이다. 북한 어선의 조업도 증가 추세이긴 하지만,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중국 어선을 첫 번째 원인으로 꼽았다. 기자가 연평도에 도착한 6월14일, 연평도 북동쪽 망향전망대 앞 해역에서 중국 어선 약 80척이 불법 조업 중이었다. 인근 식당 건물 2층에서도 바닷가 한가운데 떠 있는 중국 어선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나마 6월 첫날, 208척이 출현한 이후 161척, 170척, 151척 등에 비해 절반가량 줄어든 수치였다. 식당 주인은 바닷가를 가리키며 “수일 전까지만 해도 중국 어선이 까마귀 떼처럼 무리 지어 개수를 셀 수 없을 지경이었다”라고 말했다.

참다못한 연평도 어민들은 지난 6월5일 새벽 5시께 중국 어선을 직접 나포하기에 이르렀다. 흔히 중국 어선은 해경이나 어업 지도선이 단속에 나서면 북방한계선(NLL) 북측 수역으로 달아난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직접 나포에 나선 임동환씨는 “NLL을 넘기 전에 중국 어선 두 척을 사방에서 포위해 꼼짝 못하게 한 뒤, 양옆에서 닻줄을 걸고 연평항까지 강제로 견인했다. 이런 건 해경이나 군부대에서 해줘야 하는데, 오죽 답답하면 우리가 직접 나섰겠나?”라고 되물었다. 우리 어민이 불법 조업 중인 중국 어선을 나포한 건 2002년 10월 이후 14년 만이다.

ⓒ시사IN 조남진꽃게는 연평도 주민들의 수입원이자 자부심이다. 6월16일 대연평항에서 잡아올린 꽃게를 옮기는 연평도 어부들.

중국 어선은 불법 조업 방식으로 해양생태계를 해친다. 해양 기상 상태나 밤낮 고려 없이, 북방한계선 해역에 나타나 배 밑바닥에 모터를 돌려 바닥을 뒤집고 치어와 어린 꽃게를 모두 쓸어간다. 우리나라 현행 규정상 알이 나와 있는 암컷 꽃게와 길이 6.4㎝ 이하 꽃게는 어획이 금지돼 있다. 국내 어선은 그물의 크기 33㎜ 이하는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중국 어선은 33㎜ 이하 그물을 사용할 뿐 아니라, 국내에서 꽃게 조업을 하는 데 사용하지 않는, 배 두 척이 그물의 양 끝을 잡고 조업하는 저인망 방식으로 꽃게를 잡는다. 꽃게·대게가 다니는 길목에 이중으로 그물을 치는 방식도 중국 어선이 선호하는 조업 방법이다. 이 모든 것이 ‘꽃게 씨를 말리고’ 있다.

“남북 대화로 공동 어로구역 설정해야”

중국 어선 외에 서해5도 해역의 환경 변화도 꽃게 수 감소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해양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꽃게는 온대성 생물로 5∼10월 영상 15℃ 이상의 바다에서 산란해 여름철에 급격히 성장하는데, 최근 3년간 해역의 수온이 2013년 13.7℃, 2014년 14.2℃, 2015년 13.8℃로 꽃게 산란 최적온도에 미치지 못했다. 서해수산연구소 관계자는 “환경 변화에 따른 꽃게 개체 수 감소의 상관관계는 세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7∼8월 수온 등 환경요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올해 봄어기 연평어장 꽃게 어획량은 지난 5년에 비해 최저치를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6월17일 동이 트기 전 연평도 어민들은 그물을 정리해(위) 바다로 나섰다. 지금처럼 꽃게 어획량이 줄었을 때는 출항하는 게 오히려 적자이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앉아 있을 수도 없는 처지다.

6월15일에는 기상 악화로 조업 허가가 나지 않았다. 새벽 4시50분께 어민들은 바다에 나가는 대신 연평항에 정박된 배를 정비하고 어망과 그물을 손질했다. 그때도 북동쪽 바다에는 중국 어선 40여 척이 밤샘 작업을 마치고 꽃게가 달린 그물을 올리고 있었다. 성도경 연평동 어민회장은 “우리 어민은 기상에 따라 출항 허가를 받고, 일출∼일몰 때만 조업하고 금어기가 정해져 있지만, 중국 어선은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 어장 확대나 조업 시간 연장 등 지원책도 중요하지만 중국 어선을 잡으려는 정부의 의지가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금어기는 7~8월이다. 이때는 산란기라서 꽃게잡이가 허용되지 않는다.

상황이 이런데도 중국 어선 단속은 쉽지 않다. 중국 어선이 배타적 경제수역 중 특정금지구역을 침범해도 NLL의 남과 북을 오가며 도주하는 까닭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어민들은 ‘정부가 수수방관하고 있다’ ‘무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8년 동안 꽃게를 잡아온 한 어민은 “공식적으로 어민회에서는 중국 어선 활동 지역에 인공 어초를 설치해 퇴치하도록 주장하지만, 이런 식의 단속은 한계가 있다.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선장은 “남북 대화로 공동 어로구역을 설정해 공동 대처해야 한다. 중국 어선 진입을 아예 봉쇄해야 한다. 정부는 이런 해법을 아예 배제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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