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들이 개인 호주머니를 털었다. 6월11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 부스를 차린 ‘한국성소수자연구회(준비위원회)’는 〈성 소수자에 대한 12가지 질문〉이라는 소책자를 무료 배포했다. 온라인(www.lgbtstudies.or.kr)에도 PDF 파일을 올려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들은 이날 연구자 353명이 연명한 ‘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에 맞서 공존의 사회를 바라는 연구자들의 입장’도 발표했다.

이 책은 교육학·법학·보건학 등 다양한 학문의 연구자 12명이 지난 3개월간 공동 집필한 결과물이다. 이들은 왜 사재까지 털어가며 나섰을까. 집필진 중 한 명인 김지혜 교수(강릉원주대)는 “성 소수자에 대한 잘못된 지식과 혐오를 조장하는 말이 함께 유통되고 있다.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라는 데 동의했고, 관련 연구를 하는 우리가 지식을 공유하는 역할을 너무 소홀히 하지 않았나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챕터마다 책임 집필자가 있지만 굳이 필자의 이름을 넣지 않았다. 각기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이 함께 썼다는 공동 작업의 개념도 있고, 공동의 목소리를 낸다는 의미도 담았다.

책은 성 소수자에 대해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기초적인 질문 12가지를 추리고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쓰였다. 책의 주요 내용 중 8가지를 요약·발췌했다.

ⓒ시사IN 신선영2015년 6월28일 ‘2015 퀴어페스티벌’의 행사로 퀴어퍼레이드가 시청광장 일대에서 열렸다.

■ 동성애란 무엇인가

가장 단순한 의미로는 동성에게 지속적으로 사랑의 감정과 성적 친밀성을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사회에서 동성애는 서구에서 ‘수입된’ 퇴폐적인 성적 행위로 비난받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동성애는 인류가 존재한 이후 현재까지 전 세계 모든 곳에서 나타난 보편적인 현상이다. 한국만 해도 ‘수동무’ ‘맞동무’ 등 동성애 남성을 일컫는 용어가 사용됐으며, 〈삼국유사〉 〈조선왕조실록〉 등의 문헌에도 언급되었고, 1940년대까지 계층과 직업을 망라해 남성 동성애가 행해졌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으로 강제징집되면서 남성 동성애는 급격히 사라졌다. 이처럼 동성애는 통시적이며 공시적으로 존재해온 섹슈얼리티의 한 형태다.

■ 트랜스젠더는 누구인가

지정 성별에 따른 외모·옷차림·성 역할·신체 등에 불편함을 느끼거나 지정 성별과는 반대의 성별 또는 남과 여가 아닌 독자적인 성별로 자신을 인식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미국 내 트랜스젠더는 0.3%, 영국은 0.6%로 추정되는데 이 비율을 한국에 적용해보면 국내에는 약 15만명 전후의 트랜스젠더가 존재한다고 추정할 수 있다.

트랜스젠더에 관한 가장 큰 오해는 이들이 모두 수술을 통해서 자신의 몸을 바꾸었거나 바꾸려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트랜스젠더라고 해서 모두가 동일한 방식으로 자신의 정체성에 따른 성별 표현이나 성별 역할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수술 여부나 현재의 외모, 신체 조건 등을 기준으로 트랜스젠더인지 아닌지를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 동성애는 정말 질병인가

지금으로부터 43년 전인 1973년, 미국 정신의학회가 전 세계적으로 정신과 진단의 표준을 제시하는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 3판’에서 동성애를 정신과 진단명에서 삭제하기로 결정했다. 동성애가 정신질환이 아니라는 과학적 근거는 지난 40년 동안 의학·심리학·사회학을 비롯한 다양한 학계의 연구 결과가 지속적으로 축적되면서 오늘날에 와서 ‘상식’이 되었다. 그럼에도 계속되는 논란에 2016년 3월 세계정신의학회는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자 동성애가 질병이 아니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적 지향은 선택 사항이 아니다. “최신 문헌과 이 분야 관련 대다수 학자들은 성적 지향이 스스로의 선택에 따른 것이 아니라고 단언한다(미국 소아과학회).” 당연히 현재까지 효과가 입증된 동성애 전환 치료는 존재하지 않으며 성적 지향을 억지로 바꾸려는 치료는 대상자의 정신 건강을 오히려 악화시킬 수 있다.

■ 동성애는 HIV/AIDS의 원인인가

동성애를 HIV 감염과 연관 짓는 것은 HIV(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와 AIDS(후천면역결핍증후군)의 예방 및 치료에 큰 장벽으로 작용한다. 세상의 낙인 때문에 필요한 예방 수단에 접근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이성 간이든 동성 간이든 감염된 파트너와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를 맺는 경우 똑같이 HIV에 걸릴 수 있다. 바꿔야 하는 것은 동성애가 아니라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다. 또한 HIV 감염은 의학적으로 더 이상 치명적인 죽음의 질병이 아니라 당뇨나 고혈압처럼 관리 가능한 만성 질환이다.

■ 동성애 혐오도 권리인가

‘더러운’ ‘항문’ ‘종북’ 따위 단어와 동성애를 엮어서 표현할 때 발생하는 분명한 효과가 있다. 동성애자에 대한 부정적 생각이 만들어진다. 성 소수자와 교류해보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이런 말을 통해 알 수 없는 공포감을 품기 쉽다. 독일 나치는 유대인을 혐오스러운 곤충·병균·암세포·오염과 타락의 존재로 묘사했고, 르완다는 소수민족을 ‘바퀴벌레’라고 선동했다. 학살은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일어났다. 혐오 발언은 단순히 말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으로 광범위한 차별과 잔혹한 폭력을 부르는 효과가 있다.

결국 동성애자를 혐오할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인간을 차별하고 폭력을 행사할 권리’를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간의 존엄성·평등·민주주의·평화 등 사회를 구성하는 근본 원칙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다. 인간의 역사는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을 수호하는 쪽으로 발전해왔다.

■ 왜 동성 간에 결혼을 하려고 하나

동성 결혼은 이미 현실로 존재한다. 한국 정부는 최근 주한 미군의 동성 배우자에게도 피부양자 지위를 정식으로 인정했다. 미국 국방부가 한국 정부에 요청해 받아들여진 결과다.

동성 결혼을 옹호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결혼을 동성 결합의 유일한 형태로 보는 것은 아니다. 이들 주장의 핵심은 혼인이란 인간의 행복 추구를 위한 근본적이고 중요한 기본권이며, 개인은 혼인의 형태와 상대를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점이다.

■ 성 소수자들은 왜 축제를 하는 걸까

성 소수자들이 퍼레이드나 축제를 여는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차이 드러내기(가시화)다. 공공장소에 각인된 이성애 정상 가족 규범의 획일성에 저항해 이질적이고 다양한 성적 주체를 드러내고 성적 시민권을 주장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어디에나 있는 성 소수자의 존재를 ‘여기에서도 확인하는’ 행사인 축제를 통해 주류 사회는 평소 간과해왔던 성 소수자들의 존재를 깨닫게 된다. 축제는 낯섦을 익숙함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 종교인은 성 소수자를 어떻게 봐야 할까

‘예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물음은 노골적인 성 소수자 혐오를 드러내고 점점 폭력화되어가는 한국 사회에 긴급한 질문이다. 성 소수자 혐오에 인용되는 구절 중 정작 ‘예수로부터’ 나온 것은 하나도 없다. 타자를 사랑하는 것과 신을 사랑하는 것이 동일한 것임을 예수는 그의 말과 행동으로 분명하게 전한다. 예수는 내가 타자와 어떠한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하는지 가르치고 있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