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윤무영지형섭 과장(위)은 “중동 사람은 가슴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어서 마음을 움직이는 감성 마케팅으로 접근해야 제품을 팔 수 있다”라고 말했다.
LG전자 이란 법인 지형섭 과장(38)은 이름이 둘이다. 한국식 이름과 이슬람식 이름. 그는 1997년 모슬렘으로 개종하면서 ‘무스타파 지’(Mustafa Ji)라는 또 하나의 이름을 얻었다. ‘무스타파’란 알라의 별칭 중 하나로, 알라에 의해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지형섭 과장은 “대학에서 아랍어를 전공하면서 이슬람 세계와 인연을 맺었다. 아랍어를 공부하다 보니 아랍 세계를 이해하려면 모슬렘이라는 종교를 알아야겠다 싶어 모슬렘으로 개종했다”라고 말했다.

모슬렘으로 개종할 때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이 중동 땅을 누비며 가전제품을 팔게 될 줄은 몰랐다. 당시 그의 꿈은 대학교수였다. 아랍어 동시통역대학원을 졸업한 뒤 대학 강단에서 교편을 잡았다. 하지만 시간강사 생활은 무료했다. 대학 시절부터 이런저런 이유로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이집트, 요르단 등지를 누빌 기회가 많았다. 대학원에 진학하기 전에는 이집트에서 2년 동안 유학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때 누볐던 아프리카·중동 땅이 자꾸만 그의 피를 끓게 했다. 결국 그는 LG전자에 입사해 중동사업 부문을 맡았다.

그의 말마따나 중동과 그의 인연이 남달랐는지 그가 담당한 지역마다 매출이 큰 폭으로 성장했다. 그의 첫 담당지역이었던 이집트는 매출이 바닥 상태였다. 그러나 그가 맡고 난 뒤부터 매출이 연간 700%나 성장했다. 이란 법인도 그가 근무하기 시작한 4년 전부터 매출이 연간 30~40%씩 성장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아랍 세계와 인연을 맺으며 종교와 언어를 이해해온 덕에 남다른 마케팅 전략을 찾아낸 것일까. 지 과장은 “다른 것은 몰라도 중동 사람과 친해지는 것만은 자신 있다. 5분만 이야기하면 친구가 되곤 한다. 그들과 일단 친구가 되면 비즈니스가 쉬워지는 것은 물론이다”라고 말했다. 지 과장이 중동인을 금세 사귀는 비결은 오랜 경험에서 길어 올린 것이다. 중동 사람의 언어와 종교를 잘 이해하고 있는 그는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끼리만 통하는 농담이나 단어를 적재적소에 사용할 수 있다. 예컨대  ‘알라’라는 단어가 나왔거나 특별히 감사한 상황이 되면 그의 입에서는 “알라께 영광을 드린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중동 사람들과 논쟁을 벌여야 할 상황에서는 그들처럼 “알라 아훼트”(신은 강하다)라는 말로 위기를 넘기기도 한다. 외국인의 입에서는 좀처럼 튀어나오지 않는 말이기에 중동 사람에게 깊은 감동과 인상을 심어줄 수밖에 없다.

“중동 사람과 5분 만에 친구 될 수 있다”

지난해 여름에는 이란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잡지 〈카네바데에 사브지〉(Khanebadee S abzi)가 지 과장을 표지 인물로 소개했다. “LG전자가 중동 지역 전문가를 이란에 파견해 성공 신화를 일궈가고 있다”라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 덕에 그는 테헤란의 유명인이 되었다. 결혼기념일이나 생일이면 모르는 이들이 축하 메시지를 보내오기도 하고, 거리에 나가면 알아보는 사람도 꽤 많아졌다. 그의 이름 뒤에는 늘 LG전자라는 꼬리표가 붙기 때문에 회사 브랜드를 알리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이란에서 구독율이 가장 높은 잡지 〈카네바데에 사브지〉가 지형섭 과장을 표지 기사로 소개했다.
그는 이란에서 만난 첫 고객을 잊지 못한다. 이란 법인으로 옮겨간 직후였다. 전쟁 때문에 팔을 잃은 아들과 어린 손자들을 부양하며 힘겹게 살고 있다는 한 할머니가 지 과장을 찾아왔다. 그 할머니는 “지금 당장은 세탁기 살 돈이 없으니 할부로라도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LG전자 이란 법인은 대리점으로만 물건을 유통하고 있어서 법인 맘대로 제품을 고객에게 직접 팔 수 없다. 지 과장이 결정할 사안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 과장은 친한 대리점 사장을 찾아가 할머니의 사정 이야기를 해주고, 세탁기를 기부하도록 권유했다. 며칠 뒤 세탁기를 받은 할머니는 이란 사람이 가장 좋아한다는 과자 한 봉지와 함께 감사 편지를 지 과장에게 보내왔다. 지형섭 과장은 “이란이나 아랍 사람은 정이 많다. 서양인의 생각이 머리에 있다면, 이곳 사람들의 생각은 가슴에 있다. 가슴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어서 친구가 되면 제품을 파는 데도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이란 사람이 초대하면 열일 제쳐두고 반드시 달려간다. 이란 사람들은 술을 즐기지 않는 대신 가족과 친척 중심의 문화가 발달해 있다. 그들은 저녁마다 가족과 친척을 초대해 파티를 연다.

이란 사람들의 특성 때문에 LG전자 이란 법인은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성 마케팅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가전제품은 여성의 마음을 여는 것이 관건이다. 이란 여성의 경우, 외부 활동이 자유롭지 않은 대신 가정 내에서는 입김이 세다. 지 과장은 “이란 여성은 자기가 사고 싶은 것은 빚을 내서라도 사는 경향이 있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마케팅 전략에 총력을 기울인다”라고 말했다. 이란 여성의 심리를 이용한 ‘광 파워 오븐레인지(솔라돔) 광고 마케팅’은 대표 히트작이다. 지 과장 팀은 솔라돔을 출시하면서 “솔라돔을 아십니까? 솔라돔은 남편 사랑의 증표입니다”라는 광고를 내보냈다. 이어 “아직도 솔라돔을 선물 받지 못했다면 남편의 사랑을 의심해도 좋습니다”라는 광고 카피를 만들어냈다. 이 마케팅 덕분에 이란 여성 사이에서는 ‘남편 사랑의 증표는 솔라돔’이라는 유행이 번졌고, 이 제품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지 과장 팀은 또 전자레인지 구입 고객을 대상으로 한 쿠킹스쿨을 전국 6개 지역에서 열었다. 자기가 구입한 전자레인지 기능을 익히고, 요리를 배울 수 있는 무료 강좌다. 쿠킹스쿨은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 매달 3000명 이상의 이란 여성이 LG전자 쿠킹스쿨에서 교육을 받는다. 이 교육 때문에 LG전자 전자레인지를 일부러 구입하는 여성도 늘었다. 쿠킹스쿨 수강생들이 LG전자 제품의 구전 마케팅 전도사로 활동하면서 LG전자 제품은 더 불티나게 팔렸다. 다양한 방법으로 이란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은 덕에 LG전자 가전제품 대부분이 이란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달린다. 이란은 중동 아프리카 시장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시장이다. 인구 7000만명에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만 달러인 나라다. 1979년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는 아시아 국가 중 일본 다음으로 잘사는 나라였다. 

최근 잠시 귀국했던 지 과장은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중동을 무대로 살다 보니 한국보다 중동이 더 편해졌다. 서울에 오면 오히려 불편한 점이 더 많아 하루라도 빨리 테헤란으로 돌아가고 싶어진다”라고 말했다. 그는 천상 ‘중동 장사꾼’으로 살아야 할 팔자인가 보다.

기자명 안은주 기자 다른기사 보기 anjo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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