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영 그림

너무 호들갑 떨면 작가 자신도 민망할 테지만, 얼마 전 한국 문단에 경사가 하나 있었어. 짐작들 하시겠지만, 소설가 한강씨가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 국제 부문 수상자가 된 거 말이야. 어쩌면 한강씨의 수상으로 맨부커상이라는 걸 처음 들어본 이들도 있을지 몰라. 그냥 부커상이라고 하면 ‘아, 그 상, 이름은 들어봤지’라고 할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 금융기업 맨그룹(Man Group)이 상금을 후원하면서 2002년에 맨부커상이라고 이름을 바꾼 부커상은 영어권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들 가운데 하나야. ‘문학상들 가운데 하나’라고 약간 뒤로 물러선 것은 상의 권위에 순위를 매기는 게 과연 옳은지 몰라서 그랬어. 예컨대 퓰리처상과 맨부커상 중 어느 것이 더 권위 있는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아. 아무튼 1968년 유통기업 부커그룹(Booker Group)이 제정한 부커상(부커매코널상이라고도 해)을 지금은 맨부커상이라고 불러. 사실 지금도 그냥 줄여서 부커상이라고 부르기도 해. 부커상은 당초 영연방국가들과 아일랜드, 짐바브웨 출신 작가들이 영국에서 출판한 영어 소설만을 대상으로 시상하다가 2013년 작가의 국적 제한을 없앴어. 아, 그리고 그 전인 2005년에 국제 부문을 추가했어. 이 맨부커 국제상은 원래 영국 바깥의 영어권에서 영어로 출간된 소설까지를 수상 대상으로 삼았는데(예컨대 이스마일 카다레 같은 알바니아 작가만이 아니라 필립 로스나 리디아 데이비스 같은 미국 작가들도 이 상을 받았어), 올해부터는 원작이 영어로 되지 않은 작품 가운데 영어로 번역돼 영국에서 출판된 소설들만을 대상으로 삼고 있어. 설명이 좀 복잡한가? 되풀이하자면 맨부커 국제상은 원래 영어로 ‘집필된’ 소설의 작가에게도 주었는데, 올해부터는 영어로 ‘번역된’ 소설의 원작자에게만 준다는 거야. 이렇게 새로 개편된 맨부커 국제상의 첫 번째 수상자가 바로 한강씨고. 영어로 ‘번역된’ 작품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당연히 ‘번역자’의 역할을 두드러지게 만들지. 그래서 개편된 맨부커 국제상은 원작자와 영어 번역자가 공동으로 수상해. 그래서 요번에도 한강씨 혼자 이 상을 받은 게 아니라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버러 스미스가 함께 상을 받았어. 속되게 말하면 상금을 반으로 나눈 거야.

이상한가? 작품을 ‘창작’한 작가와 그 텍스트를 ‘번역’했을 뿐인 번역자의 공로를 똑같이 인정하는 게 말이야. 사실 전혀 이상하지 않아. 한강씨의 소설 〈채식주의자〉는 데버러 스미스의 번역을 통해 영국 독자들에게 읽히는 순간, 영국 문학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야. 물론 그 기원은 한국 문학이지만. 이 말이 너무 과격하게 들릴지 모르겠네. 우리가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운 〈두시언해〉는 중국 문학에 속할까 아니면 한국 문학에 속할까? 두 나라 문학에 다 속해. 그러나 나는 한국 문학에 ‘더’ 속한다고 생각해. 중세 한국어로 번역된 두보의 시는 중국어 사용자들보다 한국어 사용자들에게 더 큰 의미를 지니거든.

한강씨의 맨부커상 수상으로 이야기를 꺼낸 것은 오늘 번역과 그에 관련된 책에 대해 얘기하기 위해서였어. 인류 문화사, 문명사의 전개에서 번역이 맡아온 역할은 말로 형용하기 힘들 만큼 중요했어. 그렇지만 번역 행위라는 것 자체에 대한 지적 탐색에 사람들은 인색했지. 그나마 서양에서는 ‘번역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이 때때로 시도됐지만, 동아시아에서는 도쿠가와 바쿠후 시대의 란가쿠(蘭學: 네덜란드 언어와 문명에 대한 연구)와 메이지 유신 이후의 요가쿠(洋學: 영어를 비롯한 서양 언어와 서양 문명에 대한 연구) 이전에는 지식인들도 번역이라는 작업에 무심했어. 물론 중국 고전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른 논쟁의 결과로 ‘해석학’이라 부름직한 지적 담론은 활발했지만, 그건 ‘번역학’과는 꽤 거리가 있는 학문이야.

자, 얼마 전 맨부커 국제상을 탄 텍스트는 〈채식주의자〉일까? 그렇지 않아. 그 상을 수상한 텍스트는 〈더 베지테리언(The Vegetarian)〉이야. 거기까지는 납득하시겠지? 그렇다면 〈The Vegetarian〉이라는 영어 텍스트의 ‘저자’는 한강씨일까, 아니면 29세의 영국 여성 데버러 스미스일까? 나는 데버러 스미스라고 생각해. 다만, 데버러 스미스의 〈The Vegetarian〉은 한강씨의 〈채식주의자〉를 표절한 작품이야. 의도적으로, 섬세하게, 철저히 표절한 작품이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말이 기이하게 들릴지도 몰라. 번역학을 연구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이 의견에 공감하는 이들이 거의 없을 거야. 그러나 나는 다음 명제에 굳은 믿음이 있어. “모든 번역 텍스트의 저자는 번역자인데, 그 번역자는 원저자를 표절한 것이다. 그리고 원문을 잘 표절한 번역 텍스트일수록 ‘공식적으로는’ 잘된 번역이라고, 좋은 번역이라고 평가된다!”

나는 한강씨의 〈채식주의자〉는 읽어봤지만, 데버러 스미스의 〈The Vegetarian〉은 읽어보지 못했어. 그렇지만 〈The Vegetarian〉이 〈채식주의자〉를 매우 섬세하고 꼼꼼하게 표절했으리라는 확신은 있어. 그러지 않았다면 한강씨가 맨부커 국제상의 수상자가 되지 못했을 테니까. 그렇게 섬세하고 꼼꼼하게 표절해 영어 텍스트를 짜낸 데버러 스미스에게 상금의 반이 돌아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거야.


번역 ‘기술’과 번역‘학’ 사이의 거리

〈번역하는 문장들〉조재룡 지음문학과지성사 펴냄

번역에 대한 내 생각만으로 이 난을 채울 수는 없지. 역사적으로 번역이라는 중요한 문화 행위에 대한 탐구가 없던 것에 한풀이라도 하듯, 지금 한국에는 번역을 주제로 한 책들이 수십 종은 쏟아져 나와 있을 거야. 한국인이 한국어로 쓴 책이든, 외서를 번역한 책이든. 그렇지만 내 독서 범위 안에서 그 책들 가운데 읽을 만한 것은 매우 드물어. 대개는 번역이라는 행위 자체에 대한 지적 탐구가 아니라, 외국어(사실상 영어)를 번역하는 기술에 관한 책들이야. 그렇지만 그런 기술적 수준의 지식을 전달하는 책들 가운데서도 뛰어난 책이 있는데, 전문번역가 이희재씨가 쓴 〈번역의 탄생〉(교양인)이 그래. 어떤 분야든 오래, 깊이 파고들면 미립을 얻게 마련이지. 〈번역의 탄생〉은 자신의 번역 경험을 바탕으로 삼아 좋은 번역과 나쁜 번역의 예를 들며, 굳이 내 식으로 얘기하자면 ‘섬세하고 꼼꼼한 표절’이 뭔지를 알려줘. 이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한국어 감각에 거의 맞먹는 영어 감각을 지니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어.

그러나 〈번역의 탄생〉은 ‘번역학’에 대한 책은 아니야. 번역에 대한 이론적 탐구를 엿볼 수 있는 책으로는 데이비드 벨로스의 〈내 귀에 바벨 피시〉(정해영·이은경 옮김, 메멘토)와 고려대 조재룡 교수의 〈번역하는 문장들〉(문학과지성사)을 읽었으면 해. 데이비스 벨로스나 조재룡이나 그 학문의 바탕은 불문학인데, 이 책들을 보면 그들을 번역학자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아. 번역이란 무엇인가, 온전한 번역이라는 게 가능한가, 중역(重譯)은 반드시 나쁜 것인가, 운문의 번역은 가능한가, 하는 이론적 쟁점들을 다루고 있어. 두 책 다 술렁술렁 읽히는 책은 아니야. 그렇지만 문장들을 곱씹는 맛도 나쁘지 않아. 조재룡의 〈번역하는 문장들〉에 대해선 한마디 찬사를 하고 싶은데, 이 책을 통해 한국에 ‘번역학’이 탄생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야.

찜찜하지만, 남 험담으로 이 글을 마무리해야겠네. 한강씨의 맨부커 국제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이튿날 한 조간신문에는 이 경사의 의미를 되새기는, 잘 알려진 문학비평가의 글이 실렸어. 그 글 앞부분에 이런 대목이 있어. “해방 이후 한국 문학은 한글의 우수성에 힘입어 독자적으로 생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또한 한글의 고립성 때문에 유통에 심각한 곤란을 겪어왔다.” 무슨 말인지들 혹시 이해가 되셔? 나는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여기서 필자가 말하는 ‘한글’이란 도대체 뭘까? 그리고 그 ‘우수성’이란 또 뭘까? 더 나아가 그 ‘고립성’이란 또 뭘까? 앞의 ‘한글’이랑 뒤의 ‘한글’은 같은 뜻일까 다른 뜻일까? 이런 문장은, 과장하자면, 한국어에 대한 테러야. 이런 테러가 다른 사람들도 아닌 문인들의 손을 통해 매일 저질러지고 있어. 김수영 이후 반세기가 지났는데도, 우리는 아직 문학 이전에 있어. 아니면 문학을 누락한 채 문학 너머로 날아와버렸는지도 몰라.

기자명 고종석 (작가·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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