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실시된 거제 수산업협동조합(수협) 정규직 채용 시험 공정성에 의혹이 제기됐다. ‘4급 일반 관리계’ 정규직으로 뽑힌 신입 직원 16명 가운데 거제시장과 거제시청 소속 과장(수협 관련 업무 담당), ㅇ면장 자녀 등 지역 유력 인사들의 자제 다수가 포함되었다. 당락을 가른 것은 인사 담당자의 주관적인 평가가 이뤄지는 정성평가인 면접 점수였다. 면접은 응시자의 가족 사항이 적힌 이력서를 토대로 진행됐다.

거제수협의 신규 정규직 공채는 7년 만이다. 2009년 이후로는 신규로 정규직을 뽑은 적이 없다. 대신 거제수협은 우선 계약직으로 뽑은 뒤 이들에 한해서 정규직 전환 시험을 치르게 했다. 보통 한 해에 3~4명이 이 시험에 합격해 정규 직원이 됐다.

계약직을 거치지 않는, 7년 만에 치러진 정규직 공채는 1차 서류전형, 2차 필기시험, 3차 면접 순서로 진행됐다. 시험을 관리한 거제수협 인사 담당자는 “서류전형은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으면 모두 합격시켜 필기시험을 보게 했다”라고 말했다. 2차 필기시험에는 ‘종합상식’을 묻는 문제가 출제되었다. 응시생 133명 가운데 48명이 필기시험을 통과했다. 최종 선발인원의 3배수이다. 3차 전형에 해당하는 면접위원들은 총 6명이었는데, 거제수협 내부 인사 5명과 외부 인사 1명으로 구성됐다. 외부 인사는 경남도청 산하 수산기술사업소 거제사무소 관계자였다.

ⓒ시사IN 이상원거제수협은 지난해 12월, 7년 만의 정규직 공채 시험을 치렀다. 그 과정에서 공정성 논란이 불거졌다.

거제수협 인사 담당자는 “면접 도중 내부 면접위원 가운데 한 사람이 급한 일로 도중에 나갔다. 나머지 면접위원 5명의 점수 중 최고점, 최하점을 제외한 평균점을 최종 점수로 집계했다”라고 말했다. 면접 질문은 지식을 묻지 않았다. “거제수협은 어떤 곳인가?” 따위 일반적 내용이었다. “꽃을 좋아하는가?”라고 물어본 면접위원도 있었다.

최종 16명을 가려내는 데에 필기시험 점수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 면접 점수만 100% 반영했다. 유일하게 외부위원 자격으로 면접에 참가한 면접위원은 “응시자들의 필기시험 점수를 아예 받지 못했다. 이력서만 보고 면접을 했다. 면접위원들끼리 질문 내용을 미리 협의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면접위원들이 받은 응시생의 이력서 ‘가족사항’ 칸에는 부모의 근무처, 직위, 조합원 여부가 적혀 있었다. 권민호 거제시장(새누리당 소속)의 아들 권 아무개씨는 면접 점수 3등으로 합격했다.

거제수협 인사 담당자는 “시장 아들이 합격한 것은 사실이나 공정한 과정을 거쳤다. 면접뿐만 아니라 필기시험 성적도 출중했다. 시장 아들을 붙였다고 부정 채용이라면, 유명한 사람의 자제들은 취업하지 말라는 소리인가?”라고 말했다. 그는 “서류전형이나 필기시험 점수는 최종 합격자 선정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3차 면접 점수가 높은 순서로 최종 선발했다”라고 말했다. 즉 이 담당자의 설명대로라면, 48명 가운데 16명의 합격을 좌우한 것은 면접 점수였던 셈이다.

“시험 전에 합격 자랑하고 다닌 사람도 있다”

거제수협 인사 담당자는 “(권 아무개씨가) 시장 아들이라는 사실을 아직 모르는 수협 직원도 많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름을 밝히기 꺼려한 거제수협 직원은 “회사 소식에 귀를 닫고 사는 직원이 아닌 이상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거제는 좁다. 시장 아들뿐만 아니라 수협 거래처 사장 자녀, 유력 조합원 자녀 등 신입들의 부모에 대해 말이 돌았다”라고 주장했다.

필기시험 이전부터 ‘누구 자녀’가 지원했는지 알고 있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거제수협 계약직 직원 가운데 절반가량이 이번 채용에 응시하지 않았다. 일정 기간 이상 일한 계약직 직원에게 필기시험 가산점(2점)을 부여했는데도 그들은 7년 만에 치러진 신규 정규직 채용 시험을 포기했다. 한 응시자는 “시장 아들과 경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어떤 사람들이 지원했는지 미리 듣고 지원을 포기한 계약직 직원도 있다. 합격한 지역 유지의 아들은 필기시험을 치기도 전에 ‘나는 합격했다’고 떠들고 다녔다”라고 귀띔했다.

거제수협의 정규직 채용 과정에서 국가보훈처 경남동부지청도 문제를 제기했다. 공공기관을 비롯한 일부 기업들은 직원의 일정 비율을 국가유공자 자녀로 선발해야 한다.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국가유공자법) 시행령 제53조에 따라, 수협 직원 8%도 국가유공자 자녀로 뽑아야 한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신규 정규직 공채에서 거제수협은 보훈 자녀를 한 명도 선발하지 않았다. 국가보훈처 경남동부지청 관계자는 “지난해 신규 정규직 공채시험에 국가유공자 자녀 4명을 추천했는데 한 명도 뽑지 않아 이행촉구 공문을 보내고 과태료를 부과하려 했다. 그러자 4월11일 2명을 합격시켰고, 1명은 스스로 입사를 거부했다”라고 밝혔다.

이때 합격한 국가유공자 자녀도 정규직이 아니었다. 거제수협은 16명 신규 정규직을 뽑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계약직 6명을 추가로 뽑았다. 그런데 그 뒤 또다시 계약직 1명을 더 뽑았다. 이 계약직 직원이 바로 국가유공자 자녀 몫이었다.

ⓒ시사IN 조남진거제수협 사보에 신입사원 16명의 명단이 실렸다. 거제수협은 법으로 정해진 국가유공자 자녀 선발 기준을 지키지 않았다.

거제수협 인사 담당자는 “신규 채용에 지원한 국가유공자 자녀에게 국가유공자법에 따라 필기시험 만점의 10%를 가산점으로 줬다. 하지만 내부 규정상 합격에 필요한 최하 점수를 넘기지 못해 두 명 다 불합격 처분했다. 그런데 이후 국가보훈처 경남동부지청에서 둘을 합격시키라고 이행명령 공문이 왔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해명 역시 설득력이 떨어진다. 법적으로 보훈특별고용 대상자는 대상자들끼리만 경쟁한다. 그런데 거제수협은 이들을 일반전형과 묶어, 동일한 시험으로 함께 경쟁시켰다. 거제수협 인사 담당자는 관련법을 오인했다고 인정했다. 그는 “내부 규정에 따라 전형을 실시했는데, 국가보훈처에서 ‘그러면 안 된다’고 고용 명령이 떨어져서 (국가유공자 자녀를) 고용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수협의 ‘고용 세습’이나 ‘금수저 채용’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박민수 의원(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은 최근 5년간 수협 임직원 자녀 41명이 수협중앙회와 지역 조합에 취업했다고 지적했다. 41명 가운데 32명이 지역 조합에 취업했다. 이들은 모두 임원 자녀였고, 23명은 채용공고 없이 면접만으로 선발됐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 소속 한 의원실 보좌관은 “지방 농협이나 수협의 지역조합장은 군수나 의원만큼 높은 자리다. 조합장에 선출되면 도와준 사람의 자녀에게 입사 기회를 주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라고 말했다.

거제수협 채용 면접 전형에서 불합격한 한 응시자는 “면접만으로 점수를 줄 때, 시장 아들과 보통 사람이 있다면 누가 유리하겠는가? 더구나 일반적 인성만 묻는 면접이라면? 허탈하다”라고 말했다. 거제시청 홍보실은 “해당 사안은 시정이 아니기에 따로 입장이 없다. 채용을 주관한 거제수협 측에 문의하라”고 밝혔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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