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이사철을 맞았다. 5월10일, 국회 의원회관 복도 곳곳에 집기와 자료가 나뒹굴고 있었다. 낙선한 한 의원 사무실 문에는 국회사무처가 지난 3월에 붙여둔 ‘노트북 수거·정비 안내’ 공지문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20대 국회에서 사용하기 위해 장비를 수거하고 새로 포맷한다는 내용이다. 재선에 성공한 의원실에는 각종 축하 화분이 가득했지만, 방을 빼야 하는 의원실에는 정적이 흘렀다.

의원회관 5층에는 국회도서관이 쓰는 임시 사무실이 마련됐다. 자료수집과 직원들이 상주하며 의원회관 곳곳에 포스터를 붙여두었다. 19대 국회를 마무리하며, 각 의원실에서 만든 국정감사, 예·결산, 세미나 자료 등을 수거한다는 안내문이었다. 임시 사무실 유리벽에 각종 발간물이 수북이 쌓였다.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이곳에 도착한 자료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다. 의원실에서 흘러나온 일부 자료는 그대로 쓰레기 더미에 담겨 폐기 처분된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실에서 만든 자료는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공공기록물로 분류된다. 일종의 ‘사초(史草)’다. 그러나 4년에 한 번꼴로 의원실이 뒤집히는 과정에서 많은 사초가 유실되거나 묻히고 만다.

공중분해되는 자료는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제본한 자료, 일반 문서자료, 피감기관 자료다. 그나마 의원실에서 제본해서 제작한 ‘책’ 형태 자료는 상당 부분 국회도서관에 보존된다. 국정감사 및 법안 자료뿐 아니라 특정 정책을 다룬 간담회나 토론회 자료는 일반 서류보다 분류·보존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PDF 파일을 확보해 곧바로 전자자료로 등재하기도 한다. 2011년에는 국회도서관이 ‘국회의원 정책자료 DB’라는 별도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시사IN 이명익5월11일 국회도서관 측이 19대 국회 의정 및 정책 자료를 수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런데 공공기록물을 ‘남기는 일’은 의무사항이 아니다. 의원실에서 자료 등재를 빠뜨리는 바람에, 세미나 개최를 뒤늦게 안 국회도서관이 따로 의원실을 찾아 기록물을 추후 요청하는 경우가 적잖다. ‘국회의원 정책자료 DB’에 세미나를 개최했다는 흔적이 남아 있더라도, 관련 자료가 없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2015년 7월9일 국회에서 열린 세 토론회를 살펴보자.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실은 이날 오후 1시30분 ‘폭력 없는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토론회를 개최했지만, 관련 자료는 ‘정책자료 DB’와 도서관에서 찾을 수 없다. 오후 4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강기정 의원실에서도 ‘바람직한 블로그 정책을 위한 간담회’를 열었지만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오전 10시 새누리당 이종배 의원실이 주최한 ‘한식 진흥을 위한 대국민 정책토론회’는 ‘정책자료 DB’에는 자료가 없다고 나와 있지만, 국회도서관 홈페이지에서는 PDF 파일이 검색된다. 의원실에서 DB를 남기지 않았거나, 남아 있더라도 국회도서관 내 DB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셈이다. 게다가 신 의원과 강 의원은 이번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해 곧 사무실을 정리해야 한다. 2주 남은 19대 국회 임기 동안 자료를 등재하지 않으면, 사실상 국회 예산이 투입된 ‘공공기록물’이 공중에 사라지고 만다.

국회도서관 관계자들은 최대한 자료를 빠뜨리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수집 과정의 어려움 역시 토로한다. 국회도서관 관계자는 “의원실이 국회사무처에서 발간 비용을 받아 자료집을 만들고, 이를 회계 처리하면서 증빙자료로 제출한다. 이 경우 국회도서관이 의원실이 아닌 국회사무처를 찾아가 그 증거자료를 받아오는 경우도 있다”라고 말했다. 국회도서관이 정기적으로 ‘순회 수집’에 나서기도 한다. 한 새누리당 소속 초선 의원 측 관계자는 “분기에 한 번씩 국회도서관 직원들이 서류 수레를 끌고 사무실을 찾아왔다. 주로 의원실에서 발간한 의정보고서 여유분을 달라는 요청이었다. 방마다 일일이 찾아다니며 자료로 남길 수 있는 인쇄물을 최대한 긁어갔다”라고 말했다.

제본한 ‘책’과 달리, 문서 자료나 보도자료 등은 보존 기준이 전무하다. 의원실에서 제작한 ‘보도자료’는 대개 특정 현안에 대한 핵심 정보가 압축되어 있다. 언론에서 기사화하면 뉴스 기록이라도 남지만, 주목받지 못한 보도자료는 보좌진의 컴퓨터에 남거나, 지금 같은 이사철에 ‘포맷’되고 만다. 의원이나 담당자가 따로 자료를 백업해서 보관하기도 하지만, 공공기록물의 생사 여부를 ‘개인’의 ‘외장하드(HDD)’나 ‘휴대용 저장장치(USB)’에 맡겨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이어진다.

국정감사나 상임위 활동 중 확보한 ‘피감기관 자료’ 역시 이렇게 ‘개인 보관’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피감기관 자료 중에는 대중에게 공개하기 어려운 자료도 섞여 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한 의원의 보좌관은 “국가정보원에 대해 의원실이 따로 확보한 정보, 내부고발자에게서 받은 정보를 ‘공공기록’으로 남겨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라고 말했다. 인사청문회에서 사용한 개인정보 등 비밀을 유지해야 할 자료 역시 의원실에서 파쇄·폐기한다.

ⓒ연합뉴스2015년 9월 국정감사가 진행되는 한 상임위 앞 풍경. 국감 때마다 자료가 수북이 쌓인다.

행정부 감사 자료는 축적해야 할 자산인데…

그러나 공공에 충분히 공개할 만한 가치가 있는 행정부 감사 자료는 입법부에서 축적해야 할 자산이다. 입법부가 확보하는 자료는 일반인이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행정부로부터 확보할 수 있는 자료에 견줄 바가 아니다. 그러나 피감기관 자료는 국감 자료집에 실리지 않으면 입법부 공공기록물로 남겨두기가 어렵다. 특히 국정감사에서 피감기관이 “추후에 자료를 제공하겠다”라며 자료 제출을 피한 경우 또는 나중에 의원실이 확보한 2차 자료는 따로 국회도서관에서 수집하기 어렵다. 해당 자료가 대중에 공개하기에 민감한 내용인 경우도 있지만, 행정부 입맛에 맞춰 기록을 남기지 않는 우회로가 되기도 한다.

이 같은 혼란을 두고 한 야당 의원 보좌관은 “4년에 한 번꼴로 찾아오는 블랙홀이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다시 시작하는 시간이 또 왔다”라고 표현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입법부가 의정 활동의 연속성을 잃게 된다는 점이다. 자료와 노하우가 ‘사람’에게 귀속되다 보니 어떤 보좌관이 어느 의원실로 옮기는지, 어떤 의원이 재선에 성공하는지에 따라 특정 이슈에 대한 자료는 물론, 인적 네트워크마저 사라질 위험에 처한다. 한 새누리당 의원실 보좌관은 “특정 이슈를 이전 국회에서 어떤 보좌진이 담당했는지 알아내 그쪽에 연락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일을 아예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자료를 다시 확보하고 관련 사안을 새로 알아봐야 한다는 불편함은 분명 있다”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19대 국회 정무위에서 활동한 김기식 의원 같은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했지만, 정무위에서 다룬 주요 의정 활동과 노하우를 문서로 정리하는 작업을 하며 주목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 역시 어디까지나 개인에게 의존한 ‘특별 케이스’에 해당한다. 이미 4월부터 각 당선자와 기존 보좌 인력 간의 ‘구인·구직’이 진행되면서 낙선 의원실의 정책 보좌관들이 대거 물러난 경우도 적지 않다. 한 야당 의원실 관계자는 “각 의원이 헌법기관인 국회 특성상 대통령 기록물을 관리하는 것만큼 깐깐하게 자료를 남기도록 강제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이 방대한 자료를 정당에서 관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현재로서는 국회도서관에 남길 수 있는 자료를 자발적으로 등재하도록 의회 내에 ‘기록 문화’를 만드는 방법밖에는 없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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