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시초에 SK케미칼이 있다
  • 변진경 기자
  • 호수 451
  • 승인 2016.05.04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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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가습기 살균제는 1994년 유공(현 SK케미칼)이 개발했다. SK케미칼은 가장 사망자를 많이 낸 가습기 살균제의 성분 PHMG도 독점 생산했다. 살균 물질을 흡입 용도로 사용하는 발단을 제공하기도 했다.

지난 4월26일 옥시레킷벤키저 신현우 전 대표가 서울중앙지검 포토라인에 서자, 한 기자가 “가습기 살균제를 최초 개발한 것이 맞느냐”라고 물었다. 신 전 대표는 “저희가 아니고 SK의 가습기메이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신 전 대표의 말이 맞다. 옥시의 ‘뉴가습기당번’은 가장 많이 팔리고 피해자도 가장 많았지만, 최초의 가습기 살균제는 아니다. 그 이전에 유공(현 SK케미칼)의 ‘가습기메이트’가 있었다.

1994년 11월16일자 <매일경제>에 따르면 유공 바이오텍 사업팀은 1년 동안 18억원을 투자해 “물에 첨가하면 각종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을 완전 살균해주는” 가습기메이트를 개발했다. <중앙일보>는 같은 날 “선진국에도 물때를 제거하는 제품은 있으나 살균용 제품은 없는 점에 착안, 내년 중 북미 지역에 수출키로 했다”라고 보도했다. 국내 최초일 뿐 아니라 ‘세계 최초’ 가습기 살균제가 출시된 것이다.

가습기메이트는 출시 당시 언론에 “독성 실험 결과 인체에 전혀 해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라고만 보도됐을 뿐 주요 성분은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가습기메이트 개발을 담당한 전 유공 관계자는 “20년도 더 지난 일이라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라면서도 “(성분은) PHMG·PGH·CMIT·MIT와는 전혀 다른 물질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1998년부터 가습기메이트의 판매를 담당한(제조는 계속 SK케미칼이 맡았다) 애경 측 관계자는 “우리는 성분 변화 없이 이전 제품을 그대로 가져온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2011년까지 애경이 판매한 가습기메이트의 주요 성분은 CMIT·MIT이다. 이 두 성분의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자는 총 58명(사망 18명, 2013년 9월 정부 접수분)에 이른다. CMIT·MIT를 생산하는 업체도 SK케미칼이다.

1994년 유공(현 SK케미칼)이 개발한 가습기메이트의 신문광고. 가족의 건강을 위해 가습기 물 속 세균을 없애는 살균제를 넣자고 홍보했다.

SK케미칼은 현재 검찰 수사 대상에서 벗어나 있다. 검찰이 PHMG·PGH 성분의 제품을 제조한 기업만 조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료 생산 기업’으로 범위를 확대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PHMG 역시 SK케미칼이 국내에서 독점 생산하는 원료이기 때문이다. 유공은 1996년 12월 환경부에 PHMG 제조 신고를 하며 ‘항균 카펫 등의 첨가제’로 유해성 심사를 신청했다. 이듬해 3월 환경부는 “유독물 해당 안 됨”으로 이를 통과시켰다. 이때부터 흡입 독극물 PHMG가 일반 공산품에까지 널릴 쓰일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항균 카펫 첨가제’로 통과된 PHMG

SK케미칼은 PHMG의 흡입 유해성을 이미 알고 있었을까? 2003년 PHMG를 수출할 때 오스트레일리아 정부 당국에 제출한 보고서에 “PHMG를 흡입하면 위험할 수 있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SK케미칼이 국내에서 PHMG를 판매할 때 구매업체에 건넨 물질안전보건자료(MSDS)에도 “흡연하지 마시오” 등의 문구가 쓰여 있다. 하지만 SK케미칼 측 관계자는 “해당 문구는 MSDS에 화학물질 주의사항을 기재할 때 정해진 일반적 규칙 중 하나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관련 자료가 이전까지 없었기 때문에 SK케미칼 측도 PHMG의 흡입 독성에 대해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관계자는 “PHMG를 옥시 등의 제조사가 아닌 중간도매상에게 판매했기 때문에 그 물질이 가습기 살균제 용도로 쓰이는 줄도 전혀 몰랐다”라고 말했다. 때문에 현재까지 SK케미칼이 지고 있는 '법적' 혐의는 없다.

그렇다 해도 SK케미칼이 ‘도의적’ 책임에서마저 자유롭기는 힘들다. 정부가 공식 인정한 피해자 221명 중 177명(사망 70명 포함)이 SK케미칼이 공급한 PHMG 성분의 제품을 썼다. CMIT·MIT 성분 가습기 살균제는 원료를 공급하는 동시에 직접 만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SK케미칼은 살균제를 흡입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오늘날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발단을 제공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은 지난 3월9일 SK케미칼 전·현직 임원 14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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