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가 내세우는 ‘격이 다른’ 고택
  • 정희상 전문기자
  • 호수 450
  • 승인 2016.05.23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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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성 거북정 게스트하우스

녹차와 판소리의 고장 전남 보성 지방을 찾는 여행객이라면 꼭 한번 들러봄직한 이색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보성 녹차의 명소 대한다업에서 6㎞가량 떨어진 곳에 자리한 전통 한옥 ‘거북정’이다.

마을 꼭대기에 터를 잡은 거북정은 본래 400여 년 역사를 지닌 영광 정씨 종택이었다. 거북정은 정씨 고택의 별칭으로 안채, 사랑채, 사당, 내삼문, 외삼문, 한반도 모양의 연못 등으로 구성돼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261호’로 지정된 집이기도 하다. 4년 전 전남도와 보성군에서 정씨 고택 후손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전통미를 살린 게스트하우스로 개조하도록 지원했다.

해남군의 윤씨 고택 ‘녹우당’과 더불어 전라남도가 내세우는 양대 보물로 꼽히는 거북정에서의 하룻밤은 여느 숙소와는 격이 다르다. 거북정 입구 대문에서 들여다보면 중문채를 거쳐 한 단 높은 곳에 중문이 있고, 그 너머에 본채가 있다. 본채는 7칸 겹집에 큼지막한 5량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정면 기둥 9개 가운데 5개는 둥근 기둥으로 조선시대 궁궐 또는 관아에서나 쓰던 이색 기둥 양식이다. 구한말 이곳 고택의 종부가 홍살문을 하사받은 열녀 집안이었기에 둥근 기둥을 허락받았다는 사연이 전해 내려온다. 중문채와 사랑채, 본채 모두 내부에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킨 아담한 여행자 숙소로 꾸며졌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정희상</font></div>

거북정은 임진왜란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항일 구국운동에 앞장선 정씨 가문의 역사와 아픔이 고스란히 스며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400여 년 전 이곳에 터를 잡은 정손일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종사관으로 혁혁한 전공을 세운 반곡 정경달의 후손이다. 임란 때 세운 전공으로 조정에서 공신토지를 하사받아 3000석지기 부농으로 가세를 일으켰던 정씨 집안은 구한말 일제강점기에 들어서자 전답 대부분을 털어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특히 항일운동 과정에서 중앙 정치무대의 거물 정치인들이 이곳을 찾아 독립 후 나랏일을 도모했다. 인촌 김성수나 몽양계 거물 장건상, 김성숙 등이 무시로 들러 묵었던 거북정 사랑채는 아직도 옛 모습 그대로다.

남도의 소리가 완성되면 거북정에서 시연이 벌어졌다

3월 하순 거북정 사랑채에서 잠자리에 들었다. 붉게 물든 전통 창살문에 이끌려 대청마루로 나서니 탁 트인 득량만 위로 솟구치는 태양이 찬란하다. 사랑채 앞에 조성된 오래된 정원이 고색창연한 자태를 뽐낸다. 사방으로 퍼지는 남녘의 꽃향기가 방문객의 춘심을 자극한다. 향나무·동백·백일홍·벚꽃이 어우러진 정원 가운데 한반도 지도 모양을 한 작은 연못이 있고, 매화·난초·대나무·소나무가 연못을 빙 둘러 호위하고 있다.

판소리의 고장인 보성군 영천리 도강재마을은 거북정에서 동쪽으로 2㎞ 거리에 자리한다. 도강재마을 송계 정응민 선생도 거북정 사랑채 단골이었다. 강산 박유전을 비조로 하여 서편제 보성소리를 완성한 천하의 가객으로 불리는 송계 선생은 명창 정권진·성우향·성창순·조상현 등을 이곳에서 제자로 양성했다. 송계는 물론 제자들도 소리가 완성되면 거북정 사랑채에서 시연을 하곤 했는데, 그럴 때면 장건상·김성숙 선생 등 몽양계 거물이나 인촌 김성수 등이 찾아와 머물면서 소리판이 벌어졌다고 한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정희상</font></div>

보성 지방의 다양한 볼거리와 먹을거리는 모두 거북정의 지근거리에 있다. 동쪽으로는 대한다업을 비롯한 봇재마루 등고선 녹차밭과 삼장부락 다원, 판소리 성지 도강재마을이 모두 5㎞ 이내 범위에 몰려 있다. 거북정 바로 뒤로는 해발 668m의 일림산 산세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해마다 5월 초순에 열리는 ‘철쭉제’로 유명한 호남정맥의 명산 일림산을 오르는 길은 거북정 뒤 봉서동길을 택하면 된다.

보성은 예로부터 육·해·공 식재료가 풍성했다. 득량만에서 생산되는 키조개와 새조개, 바지락은 이미 1970년대부터 거의 전량 일본으로 수출될 만큼 맛과 영양이 뛰어났다. 봄철이면 바지락회·주꾸미회가 입맛을 돋우고, 여름과 가을에는 율포와 회령마을(5일장이 서는 곳) 곳곳에 자리한 식당에서 서대회(여름)와 전어회(가을)를 선보인다. ●

 

주소 전남 보성군 회천면 봉서동길 36-8

홈페이지 www.정씨고택.kr

체크인 오전 11시  체크아웃 오전 10시

주인장이 추천하는 곳 거북정에서 도보로 20여 분 거리에 위치한 삼장마을 녹차밭은 대한다업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대규모 평지형 녹차밭이다. 각종 CF의 배경이 될 만큼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20자평 조상의 얼과 소리가 스며든 고택에서 걸쭉한 하룻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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