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평생 관제 행사에 동원되던 탈북자들이 남한에 와서까지 일당 2만원짜리 관제 데모꾼으로 동원되다니 어이가 없다.”

‘아스팔트 위 보수’를 자처한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이 전경련과 경우회에서 받은 돈으로 탈북자 1000여 명(일당 2만원으로 총 8000만원 지급)을 보수 단체의 집회·시위에 동원했다는 뉴스에 대한 한 탈북자의 개탄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4월21일 전경련과 어버이연합의 금융실명제법 위반, 조세포탈 혐의 등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사안을 엄중하게 받아들여 이춘석 비대위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당내 진상규명 태스크포스를 꾸리기로 했다.

바야흐로 이 사건은 청와대와 국정원이 주연, 전경련과 경우회·어버이연합·탈북자 등이 조연으로 등장하는 ‘어버이연합 게이트’로 비화하는 형국이다.

당초 어버이연합은 전경련 자금 지원 및 탈북자 동원 사실을 부인했다. 그러나 파문이 확산되자 4월22일 기자회견을 열고 “전경련으로부터 돈을 지원받았지만 직접 지원 대신 기독교 선교단체인 벧엘복지재단을 통해 간접적으로 받아 어르신들의 급식비와 일당으로 썼다”라고 해명했다. 자금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상의 시인이다.

ⓒ시사IN 신선영4월22일 어버이연합 추선희 사무총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전경련 뒷돈’ 의혹과 관련된 입장을 밝혔다.

전경련 지원 자금이 담긴 차명계좌의 주인으로 밝혀진 어버이연합 추선희 사무총장은 ‘청와대와 국정원 등에서 집회를 지시했느냐’는 질문에 “어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집회를 열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고령자들로 이뤄진 어버이연합이 지난 수년 동안 벌여온 치밀하고 조직적인 활동으로 볼 때 이 같은 부인은 ‘배후 꼬리 자르기’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번 사건은 어버이연합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와 탈북자의 제보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자료에는 2014년 9월부터 12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전경련이 지원한 돈만 드러나 있다. 그동안 어버이연합이 탈북자들을 행동대로 내세운 집회로는 세월호 진상규명 반대, 전교조 해체, 야당 해산 촉구, 국정원 사수, 국정교과서 지지, 노동개혁법 처리 촉구 집회 등이 있다. 지난 3년여에 걸친 박근혜 정권의 주요 현안을 망라했다.

이 때문에 이번에 밝혀진 전경련의 어버이연합 지원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라는 추정이 나온다. 전경련은 현재까지 이 문제에 대해 “할 말이 없다”라며 함구 작전으로 일관하고 있다.

어버이연합이 대다수 시국 관련 집회를 자유총연맹·재향군인회·재향경우회·고엽제전우회·애국단체총협의회 등 정부 지원을 받거나 자체 수익 사업으로 자금력이 튼튼한 보수 단체와 함께 개최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전경련 이외에 이런 ‘자금력 튼튼한’ 보수 단체들의 돈이 탈북자 동원 비용으로 흘러들어 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판사의 자택 위치까지 알아내 시위하기도

그동안 어버이연합의 활동은 각종 보수 단체 시위에 단골로 참석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60대 이상 노인 회원이 주축인데도, 보수 세력에 불만스러운 판결을 내린 법원 판사들의 자택 위치까지 일일이 알아내 몰려가서 ‘종북 판사 규탄시위’를 수차례 벌였다.

이런 사정 때문에 고령자와 탈북자들로 구성된 어버이연합에게, 일반인이 쉽게 알 수 없는 치밀한 정보를 넘기고 배후에서 조종해온 권력기관이 있을 것이라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다.

그 의혹의 중심에 청와대와 국정원이 있다. 4월22일 JTBC에 출연한 추선희 사무총장은 청와대 지시설에 대해 “지시는 받은 적이 없고 (시민단체 출신 청와대 행정관과) 협의는 했다”라고 말했다.

어버이연합의 차명계좌 주인이 기독교 관련 재단이라는 점 때문에 국가정보원 개입설도 나돈다. 탈북자 단체의 한 전직 간부는 “국정원 직원이 목사 안수를 받은 뒤 위장 선교재단을 만들어 친정부 활동을 하는 탈북자 단체에 자금을 지원하는 경우도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과 어버이연합은 한목소리로 부인했다.

하지만 4월22일 어버이연합 사무실에서 기자들 앞에 나타난 탈북자 단체 자유민학부모연합 김미화 대표는 국정원 배후 지원설에 대해 “우리가 북한에서 왔기 때문에 국정원에서 정보 교환을 하러 우리를 찾아오거나 해서 만나는 것일 뿐이다”라고 말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기자명 정희상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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