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제 시위 의혹을 받고 있는 어버이연합의 자금줄이 전경련과 경우회로 지목되면서 사회적 파장이 커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박근혜 정부가 올해도 각종 극우 보수 단체에 국민 세금을 집중 배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4월13일 행정자치부가 확정해서 발표한 ‘2016년 비영리 민간단체 공익활동 지원사업’을 보면 전체 234개 단체, 225개 사업에 보조금 90억원을 배정했는데, 대상자 중 상당수(40여 개)가 극우 보수 단체다. 나머지는 아동보육, 다문화, 환경보전, 국제교류 등 일반 시민단체들로 채워졌지만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는 단 한 곳도 없다.

올해 정부의 보수 단체 지원금 확정 내역을 보면, 특히 ‘건국절 사업’에 앞장서고 있는 단체들이 눈에 띈다. 애국단체총협의회와 대한민국건국회, 대한민국사랑회가 그들이다. 세 단체는 지난해부터 상하이 임시정부가 아니라 이승만 정부가 들어선 1948년 8월15일을 건국기념일로 바꿔야 한다고 앞장서 주장해왔다.

올해 1월5일 보수 단체 합동 신년 하례회에서 ‘2016년은 건국절 제정 원년’이라고 선포하고 “5월부터 보수 단체를 총결집해 건국절 제정 1000만인 서명운동에 돌입하겠다”라고 밝힌 애국단체총협의회(회장 이상훈)에 4000만원이 배정됐다. 현 정부 출범 이후 3년간 이 단체가 받은 행정자치부 지원금은 총 1억6800만원에 달한다(40쪽 표 참조).

ⓒ시사IN 조남진전경련이 어버이연합에 차명계좌를 통해 자금을 지원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가운데, 4월22일 시민단체들이 전경련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또 1997년 대선 때 북풍 사건을 일으켜 구속되었던 권영해 전 국가안전기획부장(현재의 국정원장)이 회장으로 있는 (사)대한민국건국회에는 ‘건국 기념사업’ 명목으로 3000만원을 배정했다. 건국회는 지난해에도 ‘건국 다큐멘터리 제작비’로 4000만원을 타 갔다. 이승만 동상 건립과 국부 추대운동을 벌이고 있는 (사)대한민국사랑회는 〈건국의 재발견〉이란 도서의 제작비로 2100만원을 배정받았다. 이 단체가 박근혜 정부 3년간 행정자치부에서 받은 보조금은 총 8100만원이다. 이들 세 단체와 함께 지난해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 운동을 벌였던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회장 박희도)은 올해 4000만원(3년간 1억4700만원)을 배정받았다. 현 정부 들어 지금까지 4억6600만원의 행자부 지원금을 받은 이들 4개 단체는 지난해 7월27일 〈조선일보〉에 ‘새정치민주연합은 해산되어야 한다’는 광고를 연명으로 게재해 노골적으로 편향된 정치활동을 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탈북 관련 단체 20여 곳 지원 대상에 포함

보조금 지급 대상자로 선정된 보수 단체 중에는 포럼 동서남북도 포함되어 있다. 이 단체는 ‘범국민 안보의식 강화와 왜곡된 역사관 재정비’를 명목으로 지난해 4700만원을 받은 데 이어 올해 3000만원을 배정받았다. 포럼 동서남북은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만들어진, 박근혜 당시 후보의 외곽 비선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청와대 ‘문고리 4인방’으로 불리는 이 아무개 보좌관이 관여했던 이 단체는 2012년 대선 당시 선대위직능총괄본부 산하 SNS운영팀으로 참여해 ‘댓글 부대’라는 의혹을 사기도 했다. 또 올해 각각 3500만원씩 배정받은 선진화시민행동과 (사)NK지식인연대는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후보를 공개 지지한 단체다.

(사)국민행동본부 서정갑 본부장은 2004년 ‘국가보안법 사수 국민대회’에서 경찰관을 폭행하도록 방조한 혐의 등으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에는 서울 대한문 앞 시민분향소를 파괴한 혐의로 위로금 8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국민행동본부는 2009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짐없이 국가보조금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까지 8000만원을 지원받은 이 단체는 올해도 ‘헌법수호 및 국가안보 증진’을 위한 활동비조로 정부로부터 3500만원을 배정받았다.

올해 보수 단체 지원 대상에서 특징적인 현상은 ‘탈북’ ‘북한 인권’ ‘안보’를 사업 목표로 내건 단체들이 유난히 늘었다는 점이다. (사)탈북자동지회(4000만원), (사)북한민주화네트워크(5000만원), 북한민주화청년학생포럼(2억원), 북한인권학생연대(4000만원) 등 탈북자 관련 단체가 20여 곳이나 지원 대상에 포함됐다.

1968년 울진무장간첩 사건 당시 살해된 고 이승복군의 이름도 행자부의 공익사업 지원 활동에 여러 차례 등장한다. 지난해 6600만원을 지원받아 안보 전시회를 열었던 블루유니온은 올해 ‘이승복 어린이 나라사랑 홍보 캠페인’ 명목으로 4000만원을 지원받는다. 또 남북동행이란 단체는 ‘이승복 역사와 함께하는 안보교육’에 3500만원을 받았다.

현 정부 들어 군 출신 인사들의 모임에도 행자부 지원금이 배정됐다. 충호안보연합은 ‘자유통일 기반 구축을 위한 안보 공감대 확산’ 명목으로 지난 2년간 6100만원을 받았다. 포병전우회도 ‘청소년 호국 및 안보, 보훈의식과 인성계도’ 명목으로 지난해 4000만원을 지원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호국 안보 활동을 내건 군 출신 단체 중 가장 많은 지원을 받고 각종 친정부 집회에 단골로 나서는 곳은 고엽제전우회다. 고엽제전우회는 보훈처로부터 운영비와 인건비 명목으로 지난해 81억여 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보훈처의 보훈단체 지원예산 총액은 약 223억원이었다.

이명박 정권 이래 우후죽순처럼 생겼다가 이합집산하는 군소 보수 단체들의 모태로는 3대 관변단체가 꼽힌다. 과거 반공연맹에 뿌리를 둔 자유총연맹과 전두환 정권의 사회정화위원회가 모태가 된 바르게살기운동위원회, 그리고 박정희 정권의 유산인 새마을운동중앙회가 그들이다. 비영리 민간단체로 분류되는 다른 군소 보수 단체와 달리 이들 빅3는 법정 단체로서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막대한 예산을 지원받는다. 행자부가 지난해 지급한 보조금 총 22억여 원 가운데 새마을운동중앙회에 6억5000만원, 바르게살기운동위원회에 4억2700만원, 자유총연맹에 5억9000만원이 배분됐다.

그러나 행자부 보조금은 빙산의 일각이다. 빅3 관변단체가 16개 광역지자체로부터 받는 돈은 훨씬 많다. 더불어민주당 강창일 의원이 전국 지자체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한 해 3개 관변단체가 타 간 금액은 무려 500억원에 달한다. 새마을운동중앙회는 310억원, 바르게살기운동위원회는 107억원, 자유총연맹은 83억원을 각각 사업비와 운영비로 받았다.

각종 친정부 집회에 앞장선 ‘공익사업’ 단체들

3개 관변단체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 명목은 ‘밝고 건강한 국가사회 건설’ ‘성숙한 자유민주 가치 함양’ 등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들이 한 일은 애국단체총협의회 등에 이름을 걸고 각종 친정부 집회에 나서는 것이었다. 특히 보수 단체의 맏형 격인 자유총연맹은 세월호 반대집회, 역사 교과서 국정화 찬성 등의 보수 단체 집회에 앞장섰다. 그뿐 아니라 ‘어버이연합’의 자금줄이라는 의심도 받고 있다. 자유총연맹은 지난 2012년 3월 어버이연합 고문의 100세 잔치에 자체 예산 1400만원을 책정해 지원했다. 이 중 ‘급식비’ 명목으로만 934만원이 지출돼 잔치에 참석한 어버이연합 회원 300여 명에게 식비를 댄 셈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 예산은 자유총연맹 자체 예산의 일반회계 중 ‘선진국민의식 선도 활동’ 자금 중에서 지출됐다.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은 어버이연합이 참석한 집회 및 시위 비용을 자유총연맹이 지원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지난 몇 년간 자유총연맹이 ‘자유수호 활동’이라며 자체 사업 목적으로 벌인 정치 현안 관련 집회·시위가 어버이연합의 집회·시위와 상당 부분 겹친다. 자유총연맹이 총 5회에 걸쳐 진행한 ‘한·미 FTA 폐기 저지 규탄대회 및 전국투어’ 집회에는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대거 참가했다.”

‘호국’ ‘안보’를 내걸고 활동하는 보수 단체는 해마다 정부의 예산 지원을 받아 사실상 박근혜 정부의 ‘홍위병’ 노릇을 수행해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세월호 반대 집회, 역사 교과서 국정화 찬성, 건국절 추진 등 정치·사회적 이슈는 물론이고 야당 해체를 요구하는 집회와 신문광고 게재까지 거침없는 활동을 벌였다.

공익사업 지원 요건에 따르면, 정부 보조금을 받는 단체는 정치활동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단체들이 공공연하게 노골적인 정치활동에 나서고, 정부는 이들 단체에 혈세 지원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런 ‘비정상적 상황을 정상으로’ 돌리기 위해, 이제는 국회가 ‘비영리 민간단체 지원법률’ 개정에 나서야 할 때다.

ⓒ연합뉴스대한민국재향경우회 등 보수 단체가 2015년 10월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찬성하는 집회를 열었다.

 

 

기자명 정희상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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