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판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두뇌 컨설턴트가 뛴다
  • 고재열 기자
  • 호수 6
  • 승인 2007.10.22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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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여론연구소 김헌태 전 소장 김헌태(문국현), 전 부소장 정기남(정동영), 전 수석전문위원 김성식(이명박), 전 기획위원 문명학(권영길) 등 정치 컨설턴트가 대선 최전선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다른 해석도 있지만, 손학규 후보가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패한 이유를 ‘제대로 된 책사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꼽는 정치인들이 많다. 한나라당을 탈당할 때, 대통합에 합류할 때, 경선 룰을 합의할 때, 경선 중단선언을 했을 때처럼 중요한 고비고비에서 후보가 적확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책사가 없었다는 것이다.

한 정치 컨설턴트는 캠프를 폐쇄하고 후반기 캠페인을 진행한 손학규 후보에 대해서 "전쟁 전체는 팽개치고 최정예 부대를 이끌고 적진 깊숙이 들어가 국지전을 치른 것과 같다"라고 평가했다. 손 후보의 잘못된 판단이 전투에 이기고 전쟁에 지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대부분 제자로 구성된 손 후보의 ‘책사’들은 그의 독단적인 결정을 막지 못했다.

만약 손 후보의 판단에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책사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안타깝게도 그럴 만한 책사로 꼽히는 김성식 전 경기도 정무부지사는 이미 손 후보를 떠난 후였다. 그는 손 후보가 한나라당을 탈당하는 단계에서 탈당을 말리다 떨어져 나갔다. 지금 김씨는 이명박 캠프의 일류국가비전위원회 제2공약위원회 총괄간사와 전략홍보조정회의 조직기획팀장으로 발탁되어 맹활약하고 있다.

김씨는 대표적인 정치 컨설턴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5만여 명이 정치 컨설턴트로 활약하고 있는 미국과 달리 우리는 극소수로 정치 컨설턴트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 소수의 정치 컨설턴트들이 날개를 펼치는 공간이 바로 대선이다. 흥미로운 점은 각 캠프에서 야전사령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이 사실은 얼마 전까지 한 사무실에서 일하던 동료였다는 사실이다.

   
 
ⓒ시사IN 윤무영
 

KSOI 출신이 범여권 캠프 전략 지휘

이들이 함께 일했던 곳은 바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다. 김성식씨는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수석전문위원이었고, 문국현 후보 정무특보를 맡고 있는 김헌태씨는 KSOI 소장, 정동영 캠프 공보실장을 맡고 있는 정기남씨는 KSOI 부소장이었다. KSOI의 수석전문위원이었던 정창교씨는 대통합민주신당 원내기획실장으로 있고, KSOI 기획위원이었던 문명학씨는 권영길 후보의 정무특보를 맡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이들은 왜 ‘훈수꾼’이 아니라 ‘야전사령관’으로 대선에 직접 참여했을까? 정창교씨는 “우리는 기술자이기 이전에 영혼이 있는 사람이다. 정치를 통해 구현해보고 싶은 꿈이 있다”라고 말했다. 김헌태씨는 “제후 간 전쟁에 참전한건 처음이다. 베개를 코피로 적실 만큼 힘든 시간이지만 후회는 없다”라고 말했다.

KSOI 출신이 지지율 1위부터 4위 후보까지 주요 후보들의 책사 노릇을 도맡고 있어서 정치권에서는 “KSOI가 대선에 분산투자를 하고 있다”는 놀림을 듣기도 한다. 이들 중 캠프행이 가장 관심을 끌었던 인물은 바로 김헌태 전 소장이었다. 지지율이 0.1%밖에 나오지 않던 문국현 후보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마이너 문국현을 유력 후보로 끌어올린 김헌태

고등학교 때부터 <육도삼략> <태공망> <한비자>와 같은 동양의 병법서와 마키아벨리 <군주론>, 크라우제비츠 <전쟁론> 등 서양의 전략서를 노트에 베껴쓰면서 ‘선거전략가’의 꿈을 키웠던 김 전 소장의 첫 번째 선택은 문국현이었다.

문국현 후보를 고른 것이 의외라는 정치권 반응에 대해 그는 자신의 선택은 예고된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열린우리당이 총선에 압승한 직후 열린우리당이 망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탄핵의 역풍으로 다수당이 된 열린우리당은 정체성 혼란과 리더십 부재로 반드시 붕괴되리라고 보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열린우리당이 대통합민주신당으로 다시 뭉친 것이 또 한 번 죽는 길을 선택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중도 개혁 노선의 선명한 이념 정당이 아닌, 단순히 양적 확장만을 도모했다. 여론의 핵심은 범여권의 실정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다. 반여 전선에 갇히면 필패한다”라고 주장했다.

김 전 소장은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와 문국현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이 ‘양 대 질’의 싸움이라고 규정했다. 140석이 넘느니 어쩌니 하는 의석 수는 대선에서 아무 의미가 없고 오직 후보의 질이 중요한데, 정동영 후보보다 문 후보가 낫다는 것이다. 다만 미디어 노출 정도가 적어서 지지율 상승에 다소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 지지율 5%를 넘겨서 이 딜레마도 해결했다고 본다.

그는 “어느 순간 유사한 패턴의 사람들이 갑자기 이명박 지지성향으로 바뀌었다. 문국현 후보의 메시지가 제대로 도달한다면 되찾아올 수 있는 사람들이다. 무당파 성향의 사람들 사이에서 문 후보의 지지율이 1위다. 이명박 후보의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증거다”라고 주장했다.

정동영의 오른팔, 정기남

‘노무현 대통령에게 안희정씨와 이광재 의원이 있었다면 정동영 후보에게는 이재경(전략기획실장)과 정기남이 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측근으로 꼽히는 정 전 부소장은 정동영 후보와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다. 정 후보의 보좌관 출신인 그는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의 후보토론팀 실무자로, 2002년 대선에서는 국민참여운동본부 기획실장으로 일했는데 그 책임자가 모두 정동영 후보였다. 올해는 정동영 후보 본인을 위해 뛴다는 점이 다른 점이다.

정씨는 요즘 정동영 후보에게 쏟아지는 한나라당의 의혹 제기를 받아내느라 정신이 없다. 그는 “예상했던 상황이다. 다시 검증에 초점이 모아지는 것은 우리가 원했던 바다. MB와 함께 검증받겠다는 것으로 정면 돌파할 생각이다. 검증을 위한 ‘맞짱 토론’도 이미 제안해놓은 상태다”라고 말했다.

정씨는 여론조사 반영비율 등 경선과 관련한 게임의 룰을 정할 때 먼저 수용해서 손 캠프를 압박하자는 주장을 펴서 관철시켰다. 그러나 하루에 300여 통의 전화를 받아야 하는 공보실장 노릇을 하느라 정무적인 판단에 집중하지는 못했다. “일에 치여서 예전만큼 선거의 터닝 포인트가 될 만한 중요한 계기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어쨌든 캠프에서 결정한 내용을 후보가 잘 따라주어 위기를 잘 극복했다”라고 말했다.

대통합민주신당의 책사, 정창교

대통합민주신당 원내기획실장을 맡고 있는 정창교 전 수석전문위원은 KSOI 출신 중에서 이번 대선에 대해 가장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는 사람이다. 수치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3.3% 포인트 차이로 범여권 후보가 이긴다는 것이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민주화를 겪은 세대가 주류다. 세대 구성이 불리하지 않다’ ‘여전히 국민들은 진보개혁 성향의 정부를 원한다’ ‘한나라당이 따라하지 못할 신기술이 있다’라는 것이다.

세 가지 이유 중 그가 가장 공을 들이는 것은 신기술 부문이다. 그는 민주당 기획조정국장으로 있던 지난 2000년 민주당 대표최고위원 선거에서 전자투표를 처음 도입하기도 했다. 그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이길 수 있는 강철검이 두 개 있다. 하나는 모바일 투표고 다른 하나는 매니페스토다. 모바일 투표는 후보 단일화 과정의 역동성을 극대화할 것이고 매니페스토는 한반도 대운하 공약의 허상과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권영길의 해결사, 문명학

후보와 함께 낮잠을 자다가 불현듯 일어나서 기가 막힌 제안을 한다는 권영길 캠프의 문명학 정무특보는 고전적인 의미의 책사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지난 2002년 부산시장 선거에서 민주노동당 김석준 후보의 득표율을 16.9%까지 끌어올린 주역이다. 그는 당시 중앙당의 부름을 받고 권영길 후보 캠프에 합류했다. 방송토론국장을 맡은 그는 권 후보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국민 여러분 살림살이 나아지셨습니까”를 이끌어냈다.

   
 
ⓒ시사IN 윤무영
이명박 후보의 숨은 두뇌로 꼽히는 윤여준 전 의원(왼쪽)과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오른쪽).
 
KSOI 기획위원이었던 그는 이후 <빵과 장미>라는 정치컨설팅 회사를 직접 세우기도 했다. 대선과 함께 다시 현장으로 돌아온 그는 권 후보가 심상정 의원과 경선에서 다툴 때 전략을 진두지휘했다. 그는 “결선을 치르게 되어 캠프가 망연자실해 있을 때 후보를 설득해서 심상정 후보에게 ‘맞짱 토론’을 제안했다. 그런 제안이 올 것 같았기 때문에 먼저 제안을 했다. 공격적으로 임해 캠프 분위기를 추스를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권영길 후보가 민주노동당 후보가 되었지만 당선까지는 여전히 첩첩산중이다. 당장 당 지지율에도 미치지 못하고, 민주당 이인제 후보에게까지 뒤지기도 하는 낮은 후보지지율이 문제다. 지지자들을 포용하기 위해 ‘문국현 때리기’에서 ‘문국현 끌어안기’로 전략을 수정했다. 그는 “절대 구도 게임에서 밀리면 안 된다. 구도 안으로 들어가서 싸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범여권 후보를 돕고 있는 이들과 반대편에 서서 김성식씨와 함께 이명박 후보를 도울 정치 컨설턴트로는 정치컨설팅사 ‘민’의 박성민 대표가 꼽힌다. 윤여준 전 장관과 함께 이 후보의 숨은 책사로 꼽히는 박 대표가 공식적으로 선거 캠페인에 관여하는지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나는 정치평론가와 정치 컨설턴트를 겸업하지 않는다. 내가 TV에서 보이지 않으면 게임이 시작되었다고 알면 된다”라고 말했다.

‘정치 컨설턴트의 세계에는 국경이 없다’는 말이 있다. 선거가 끝나면 이들은 다시 모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치열한 전선 위에 서 있다. 이명박 후보를 돕고 있는 김성식 전 수석전문위원, 문국현 대망론을 주창하는 김헌태 전 소장, 정동영 필승론을 외치는 정기남 전 부소장, 범여권의 승리를 장담하는 정창교 전 수석전문위원, 권영길 신화를 만들려는 문명학 전 기획위원. 이들 중 최후 승자는 누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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