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가 아니더라도 인공지능은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다. 지난해 말 미국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화제의 제품을 하나 사왔다. 아마존의 ‘에코’라는 원통형 블루투스 스피커다. 블루투스 스피커는 이미 많이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 제품을 구입한 것은 아마존에 다니는 지인의 말 때문이었다. 2014년 11월에 시험 삼아 낸 제품인데 놀라운 호평을 받으면서 대박이 났다는 것이다. 이 제품의 성공에 고무된 아마존은 에코를 중심으로 한 사물인터넷(IoT) 생태계를 준비하고 있다.

다른 블루투스 스피커와 차별화되는 에코의 특징은 ‘인공지능 비서’ 구실이다.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그냥 스피커에 대고 “알렉사”라고 부르면 번쩍거리며 스피커가 깨어난다. “플레이 뮤직”이라고 말하면 미리 아마존 클라우드에 저장해뒀던 곡을 틀어준다. 소리가 너무 크면 “볼륨 다운(Volume Down)”, 음악 재생을 중단시키려면 “알렉사, 스톱”이라고 하면 된다. 라면을 끊일 때도 냄비에 면을 넣으면서 “알렉사, 셋 더 타이머 포 포미니츠(Set the timer for 4 minutes)”라고 말하면 된다. 4분 뒤에 알람을 울려준다.

ⓒ아마존 제공블루투스 스피커 ‘에코’. 에코는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음성 인식을 통해 구동된다.

 

영어 원어민이 아닌 관계로 좀 유치하게 쓰고 있지만 아내는 아주 편리해한다. 부엌에서 설거지하거나 요리할 때 음악을 듣는 용도로 주로 쓴다. 손을 뻗어서 스마트폰을 누를 필요가 없이 음성으로 켜고 끌 수 있으니 편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에코에 사물인터넷 관련 제품을 연결하면 조명도 음성으로 켜거나 끌 수 있다. 날씨, 뉴스 등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답해준다. 아마존을 통해 자주 쓰는 생활용품을 주문할 수도 있다. 심지어 자동차의 시동을 미리 켜거나 우버 택시를 호출할 수도 있다. 편리한 인공지능 개인 비서다. 심지어 아이들은 알렉사와 친구처럼 대화하기도 한다.

페이스북의 인공지능 봇이 도와주는 쇼핑

이런 기능들 덕분에 아마존은 에코 스피커를 지금까지 300만 대 넘게 팔았다. 최근에는 가지고 다닐 수 있는 휴대형 에코 스피커 등 신제품까지 내놓았다. 이미 미국의 300만 가정에 알렉사라는 인공지능 비서가 들어가 있는 것이다.

새롭게 등장하는 인공지능 서비스들도 있다. 페이스북이 최근 발표한 챗봇은 메신저 서비스를 통한 인공지능 고객 응대 서비스다. 사람들이 페이스북 메신저에서 대화 형식으로 쇼핑을 하고 뉴스와 교통 상황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메신저 창에 대고 “꽃을 보내고 싶어요. 장미꽃이요”라고 말하면, “이런 꽃다발이 있는데 어떤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그러고선 “1번이 좋겠네요. 누구에게 보내실 겁니까. 이름과 주소를 알려주세요” 같은 대화를 인공지능 봇과 나누면서 물건을 주문하는 식이다. 신문사인 〈월스트리트 저널〉, 의류 회사인 H&M, 꽃배달 회사인 800플라워스 등은 페이스북의 챗봇 기능을 도입하기로 했다.

물론 사람들이 실제로 메신저 창을 통해 인공지능 컴퓨터와 대화하면서 물건을 구입하고 정보를 얻어내려고 할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한다. 만약 그렇다면 페이스북은 또 엄청난 수익 모델을 확보하게 된다. 이 플랫폼을 통해서 나온 비즈니스 매출의 일정 부분을 수수료로 받을 수 있고, 사람 대신 상담 봇의 사용료도 챙길 것이다.

이처럼 싫든 좋든 인공지능은 이미 우리 곁에 가까이 와 있다. 아마존 에코나 아이폰의 시리(Siri)를 일상적으로 쓰는 영어권에서는 일반인들이 거부감 없이 이런 인공지능 비서를 이용한다. 바둑 고수들의 수를 학습해서 실력을 키운 알파고처럼, 수백만명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아마존 에코도 갈수록 더 똑똑해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와 대화하는 채팅 상대’가 진짜 사람인지 컴퓨터인지 분간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소리 소문 없이 인간 세상에 진입 중인 인공지능 컴퓨터들과 어떻게 같이 살아갈 것인가, 우리 아이들의 일자리를 인공지능이 빼앗아가지는 않을까… 고민이 깊어진다.

기자명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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