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묻은 돈 꿀꺽했다고?
  • 신한슬 기자
  • 호수 449
  • 승인 2016.04.26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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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투자회사 더벤처스의 대표가 스타트업으로부터 부당이득을 취했다는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중기청이 새로 도입한 창업 투자 프로그램 팁스가 평가대에 오른 셈이다.

벤처투자사가 자사의 권한을 빌미로 부당한 이익을 취한 것인가, 아니면 벤처 생태계에 대한 검찰의 무지로 괜한 해프닝이 벌어진 것인가? 스타트업 생태계의 ‘모범 사례’가 흔들리고 있다. <한국경제>는 지난 4월6일 더벤처스 호창성 대표(41)가 검찰에 구속됐다고 보도했다. 정부 지원금을 받게 해주겠다는 명목으로 5개 스타트업에서 30억원 상당으로 평가되는 지분을 ‘무상’으로 받은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죄)다. 그러나 더벤처스는 이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문제가 된 것은 중소기업청이 주관하는 TIPS(Tech Incubator Program for Startup, 팁스) 프로그램이다. 팁스는 쉽게 말해 정부의 기술개발자금 지원에 민간의 ‘엔젤 투자’와 ‘인큐베이터’ 방식을 결합한 제도다. 엔젤 투자란 신생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대신 지분을 받는 고수익 고위험 투자다. 예컨대 신생 기업에 2억원을 투자해서 20%의 지분을 받았는데, 향후 해당 기업이 100억원의 기업가치로 상장하거나 다른 대기업에 팔리면(인수합병) 20억원(지분 20%)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기업이 망하면(신생 기업이므로 망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투자한 2억원은 모두 날리게 되는 셈이다. 인큐베이터는 초기 스타트업에 공간, 멘토링 등 유무형의 지원을 제공해 성공적인 상장 또는 매각하기까지 함께 회사를 키우는 대신 지분을 받는 투자다.

팁스 관계사들이 입주한 서울 역삼동 팁스타운의 간판.

정부의 스타트업 지원은 사실 자금을 제공하는 정도다. 스타트업 처지에서는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갖고 있어도 실제로 수익을 내며 사업을 궤도에 올릴 때까지는 갈 길이 멀다. 재무 상태를 유지하거나 보유 기술의 상품화, 심지어 상장이나 인수합병 등은 우수 기술만 가진 젊은이들이 감당할 수 없는 몫이다.

그래서 팁스 프로그램은 성공한 벤처 1세대 혹은 기술 중견기업이 주도하는 엔젤 투자회사를 ‘운영사’로 선정한다. 운영사는 최종 선정 대상의 1.2배수에 해당하는 창업팀을 추천할 권한을 갖는다. 추천을 받은 창업팀은 최종적으로 정부 심사를 거치는데, 이때도 운영사 대표가 직접 자신이 추천한 창업팀에 대해 소개하고 발표한다.

정부가 창업팀을 선정하면, 운영사는 해당 기업에 1억원 내외의 자금을 투자하고 지분을 받는다(엔젤 투자). 정부는 이 기업에 최대 9억원까지 매칭 투자한다. 운영사는 2~3년간 사업 공간 및 각종 멘토링 등을 창업팀에 제공한다(인큐베이터). 예를 들어 창업팀에 부족한 기획, 개발, 디자인, 마케팅, 법무, 경영 등 전문 분야를 조언하거나 성공한 창업 경험자를 소개해줄 수 있다. 그 대가로 해당 스타트업의 지분을 추가로 취득할 수 있다.

팁스는 유망한 창업팀으로서는 자금과 멘토링 등 유무형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게다가 창업팀이 끝내 실패한다 해도 지원금을 토해낼 필요가 없다. 성공하는 경우엔, 정부 측 기술개발지원금의 40%만 상환하면 된다. 국내 스타트업 지원 사업 중 가장 좋은 조건이다.

알선수재 혐의로 검찰에 구속된 더벤처스 호창성 대표. 더벤처스 측은 검찰이 팁스의 운영 취지와 벤처업계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운영사에게는 적은 투자로 많은 지분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게 인센티브다. 그래서 불안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이다. 더욱이 팁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운영사는 투자 대비 2배까지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 이는 운영사가 투자금 이외에 멘토링과 사업 공간 등을 제공하는 것에 대한 보상이다. 다만 신생 기업의 경영권을 보장하기 위해 창업팀의 지분을 60%까지 보장해야 한다. 즉, 운영사가 가질 수 있는 해당 기업의 지분은 최대 40%다. 창업팀 지분이 60% 이하가 되면 팁스 대상 자격이 박탈된다.

“편취 금액 50억원? 이 바닥을 모르는 말”

결국 팁스 제도 자체가 운영사로 하여금 적은 투자금을 내는 대신 많은 지분을 가져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팁스가 모델로 삼은 이스라엘의 TI(Technological Incubators) 프로그램은 창업팀에 돌아가는 전체 투자금 중 15%를 투자사가, 85%를 정부가 내고, 투자사는 최대 50%의 지분을 가질 수 있다. 팁스보다 더 많은 보상이다. 여기서 리스크를 가장 많이 부담하는 것은 정부다. 투자사는 리스크가 비교적 크지만 사업에 참여할 유인(인센티브) 역시 매우 강하다. 창업팀의 리스크는 매우 작다. 스타트업 창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민간 주체(투자사와 창업팀)의 리스크는 줄이고 인센티브는 크게 설계한 것이다.

대신 운영사는 창업 성공률을 높일 수 있도록 ‘인큐베이팅’을 해야 한다. 투자금을 상회하는 지분 취득이 ‘무상’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는 부분이다. 더욱이 해당 기업의 기업가치 선정도 운영사에 맡겨져 있다. 이민화 카이스트 교수는 4월12일 SBS CNBC에 출연해 “스타트업의 기업가치는 원래 고무줄이다. 기업가치를 산정하는 룰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바 있다.

지금까지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감안하면 더벤처스가 반발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더벤처스는 검찰이 제기한 혐의에 대해 “팁스 운영 취지에서 벗어나는 일체의 행위를 저지른 적이 없다. 편취 금액으로 알려진 50억원은 기업의 초기 가치를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검찰은 더벤처스가 획득한 스타트업들의 지분을 ‘편취 금액’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벤처 생태계와 팁스를 이해하지 못한 결과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팁스를 통해 더벤처스에서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 중 일부도 검찰을 성토했다. 자신들은 ‘피해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스타트업 대표는 “팁스 가이드라인을 어기는 운영사는 없다고 알고 있다. 지원금도 ‘포인트’ 형태로 지급돼 유용이 거의 불가능하다. 검찰이 팁스의 취지를 오해한 것 같다. 더벤처스가 해온 ‘무형의 지원’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더벤처스는 지난 4월5일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선한 의도의 벤처 투자를 범죄로 오인한다면 앞으로 누가 벤처 투자를 할 것이냐’고 물었다.

스타트업 업계의 특성상 투자사가 많은 지분을 가져가는 것이 반드시 부당이득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는 시각도 있다. 지분을 많이 갖는다는 것은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도 많이 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운영사가 인큐베이팅을 열심히 해야 하는 동기가 되기도 한다. 익명을 요청한 한 스타트업 대표는 “엔젤 투자사나 인큐베이터가 지분을 많이 가져간다고 해서 업체 대표가 반드시 손해는 아니다. 경영권만 잃지 않는다면 오히려 투자사가 적극적이고 책임 있게 성공적인 ‘엑시트(상장 또는 인수·합병으로 투자금을 회수하는 것)’까지 도움을 줄 수 있다”라고 말했다.

팁스가 ‘성공’이라고 판정하는 기준은 인수합병(스타트업이 비싼 값으로 매각), 기업공개(상장), 연간 매출 6억원 초과, 후속 투자 유치 등 4가지다. 2016년 2월까지 이를 만족한 창업팀은 전체 133개 중 36개(27%)다. 인수합병에 성공한 팀은 단 2팀이며, 이 중 한 팀은 더벤처스의 투자를 받고 카카오에 인수된 파크히어다.

팁스 선정에 운영사가 중요한 구실을 하는 만큼, 정부 지원금을 볼모로 지나친 요구를 할 위험은 없을까? 실제로 2015년 초, 정부 지원금이 절실하지만 팁스 운영사의 과도한 지분 요구로 인해 포기했다는 심경을 SNS에 토로한 스타트업 대표도 있었다. 하지만 팁스 제도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운영사에 인센티브를 제공해서라도 엔젤 투자를 활성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민화 교수는 “팁스 논란은 인센티브 구조에 대한 논란이며, 창조 경제로 가는 패러다임 변화를 우리가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다. 팁스를 강화하면 강화해야지 위축시켜서는 대한민국에 미래가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청은 4월6일 팁스를 거쳐 간 입주 기업 158개에 대한 전수조사를 시작했다. 더벤처스에서 투자를 받은 10개 기업 중 팁스 가이드라인을 위반한 행정상의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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