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미에(踏み絵)’라는 게 있다. 일본 에도 시대에 기독교 신자를 색출해낸 방법이다. 예수 상을 새긴 금속판을 백성들이 밟게 했다. 밟지 못하거나 망설이는 신자들은 체포됐다.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에서 정치적 논쟁을 해결하는 방식이 후미에와 닮았다. 조금이라도 전향적 의견을 드러낸 이는 “김정은 개새끼 해봐”라는 말을 듣게 된다. 응하지 않으면 ‘빨갱이’다. 빨갱이의 의견은 수렴할 필요가 없기에 논쟁은 쉽게 끝난다. 사안에 따라 이 관용구에는 ‘김정은’ 대신 ‘김대중’이나 ‘노무현’이 들어가기도 한다.

내가 쓴 기사를 향해 자발적 후미에를 감행한 사람이 있었다. 지난해 입시 비리 의혹으로 시끄러웠던 하나고 교사였다. 그는 스스로 “노무현을 존경하며, MB를 혐오한다. 〈시사IN〉을 정기구독하며, 세월호 참사에 대해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아 경위서를 쓰기도 했다”라고 밝혔다. 거창한 신앙고백의 종착지는 다음 결론이었다. “우리는 악하지 않으며 누명을 썼다. 우리의 진실을 들어달라.” 그러나 별도의 ‘진실’은 없었다. 입시 부정은 교육청 감사에서 사실로 드러났다. 학교는 내부 고발 교사를 담임에서 배제하는 보복성 조치를 취했다.

ⓒ시사IN 양한모

당연한 이야기지만, 유독 하나고가 〈시사IN〉 구독률이 낮아서 취재에 나선 것은 아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교내 구성원들의 존경심이 부족해서도 아니었다. ‘학교가 응시 학생들의 성적을 조작했다’는, 꽤 개연적인 증언만 좇았다. 항의해온 교사가, MB가 아니라 그 할아버지를 ‘혐오’한다고 밝혀도 의혹은 남는다. 그런데도 취재 중 만난 학교 구성원 다수가 자신의 정치 성향을 ‘반론’으로 들었다. 그들은 〈시사IN〉도 ‘같은 좌파’라고 주장하며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고 타일렀다. 그러나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은 그들이다. ‘자칭 좌파’들의, 역설적이게도 일베를 닮은 논지는 입시 부정보다 더 지저분했다.

2년차 햇병아리가 ‘기자는 어떻다’ 운운하기는 조심스럽다. 다만 소크라테스의 ‘등에론’을 빌리겠다. 소크라테스는 성가신 등에가 되어 아테네 시민들을 깨우겠다고 말했다. 기자는 등에의 사촌 격인 파리쯤 되지 않을까? 파리는 맹목적으로 똥을 쫓는다. 따라서 구린 구석이 있는 한 파리 떼 같은 기자들에게 정치 성향을 간증해봐야 소용없다. 안타깝게도 파리라는 족속은 똥의 보혁을 가리지 않는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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