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는 예능국에서 개표방송을 하나요?” 제20대 총선이 치러진 4월13일, 방송인 서유리씨가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SBS 선거방송 ‘2016 국민의 선택’은 화려한 컴퓨터그래픽과 기발한 패러디를 선보이며 ‘개표테인먼트’ 시대를 열었다. 유승민 무소속 후보가 거울을 바라보며 머리카락을 깎는다. 자막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영화 〈아저씨〉 패러디다. 새누리당을 연상케 하는 ‘빨간 옷’의 스파이더맨이 가면을 벗자 ‘파란 옷’을 입은 진영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변신한다. 끊임없이 당을 바꿨던 이인제 새누리당 후보 뒤에서는 ‘불사조’가 불을 뿜는다. 각 인물의 정치적 히스토리에 재미와 패러디를 가미했다. 동원된 영화만 20여 개다. 후보자 140여 명이 직접 연기에 참여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트위터 코리아에 따르면 4월13일 트위터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스브스’였고 두 번째는 ‘개표방송’이었다.

ⓒ시사IN 이명익

SBS 선거방송 기획팀을 이끈 주시평 PD(45)는 “이 모든 게 집단지성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SBS 선거방송 기획팀은 2015년 10월에 꾸려졌다. 3개월 동안 주 PD를 비롯해 기자 2명과 작가 6명이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짰다. 누구나 딱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영화 장면을 선정하기 위해 1000만 관객 영화를 중심으로 리스트를 만들었다. 그중에서 인상에 남는 장면을 선정해 정치적 맥락과 스토리를 입혔다.

이 밖에도 주요 지역구가 주목받는 이유와 판세를 설명하고자 ‘총선 삼국지’를 기획했다. 3파전이 된 이번 총선과 어울렸다. 사극을 즐기는 중·장년층을 고려해 투표율 발표는 ‘총선록’(〈징비록〉 패러디) 콩트로 했다. 실제 사극에 출연하는 단역 배우들이 연기 실력을 뽐냈다. 모바일 시대에 발맞춰 카카오에서 해설 방송을 하고 시청자들의 ‘투표 2행시’를 공모하기도 했다.

그다음은 그래픽 작업이었다. 4개월이 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각 부서에서 차출된 기자 15명가량이 후보자들을 섭외했다. 크로마키(색상 차이를 이용한 영상 합성 기술) 배경과 조명·의상·분장도구를 들고 후보자들의 선거 사무실을 일일이 다니며 연기를 주문했다. 그렇게 찍은 영상에 밤새워 그래픽을 입혔다. 본사 그래픽 디자이너 3명과 프리랜서 13~14명이 작업했다. 주 PD는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엄청나게 고생했다. 내가 상상한 걸 그 이상으로 구현해줬다”라고 말했다.

주 PD는 정치부 기자였다. 2012년 대선 개표방송 때 처음으로 PD를 맡으며 연출가로 변신했다. 당시에도 영화 〈친구〉 〈인디아나 존스〉를 패러디해 화제가 되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연출을 하다가 다시 선거방송을 맡았다. 주 PD는 “대선 때는 정치에 무관심한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자는 생각이 컸다. 이번에는 재미와 내용,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진중함을 놓치지 않으려 고심했다. 주요 지역구(경남 김해을, 서울 강남을 등)는 동 단위로 개표 상황을 보여주며 결과를 분석했다. 신도시 아파트 건립에 따른 젊은 층 유입 등 인구학적 변화를 주목했다. 모바일 시대에 단순한 결과 보도는 포털을 따라잡기 힘들다. ‘이야깃거리’가 있는 개표방송을 의도했다.

아쉬움도 남는다. SBS 선거방송 시청률은 지상파 3사 중 꼴찌였다. 분석해보니 젊은 층에 비해 중·장년층의 반응이 좋지 않았다. 주 PD는 “온 가족이 모여 함께 볼 수 있는 방송을 의도했지만 부족했다. 젊은 층의 반응이 좋았지만, 사실 TV를 소비하는 세대는 아니다. TV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고민이 남는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신한슬 기자 다른기사 보기 hs51@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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