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는 ‘잉여’가 우리를 구원할 거야
  • 이종대 (옐로데이터웍스 전략담당)
  • 호수 448
  • 승인 2016.04.20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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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시대’를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간단한 코딩이나 데이터 분석 능력을 갖추길 권한다. 정치권도 손 놓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언젠가 인간은 인공지능에 의해 완전히 대체되지 않을까요?” “저 같은 문과생들은 앞으로 뭐 하고 살아야 하나요?”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이 끝나고 한 주가 지나지 않았을 무렵, 한 대학 특강에서 나왔던 질문 중 일부다. 충격적인 대국 결과 때문인지 질의응답만 얼추 한 시간 반을 넘겼던 것 같다.

2년쯤 전부터 “문과라서 죄송합니다”를 줄인 ‘문송’이라는 신조어가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IT 발전과 스타트업 열풍으로 기업이 문과생보다 이과생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취업 전선에서 어려움을 겪는 문과생이 늘어난 영향이 크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공계 기피 현상을 걱정하던 것에 비하면 상전벽해다. 프로그래밍이나 데이터 분석 방법론을 배우려는 문과생도 늘어나고 있고, 이과에서 경영대와 가장 유사한 산업공학과에 대한 관심도 올라가는 추세다.

기술혁신은 실제로 산업 카테고리 자체는 물론이고 해당 업종 종사자의 일자리를 없애거나 위축시켜왔다. 자동차는 마부를, 석유는 광부나 나무꾼을, 사무자동화는 사환과 식자공, 인쇄소를 대체하는 식이다. 대체될 것으로 예상되는 당사자들은 불안해진다. 역사에서도 기술혁신에 대한 사회적 저항은 빈번한 일이었다. 기계에 대체될 것을 우려한 노동자들의 기계 파괴 운동인 ‘러다이트 운동’이나, 자동차 보급을 우려한 마부들의 조직적 로비에 의해 도입된 영국의 ‘적기조례(Red Flag Act)’ 등이 대표적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AP Photo</font></div>노동자들은 기계 파괴 운동인 ‘러다이트 운동’(위)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러다이트 운동이 벌어지던 19세기 세계 인구는 대략 10억에서 15억명. 2016년 현재 약 74억명이니 그동안 약 60억명이 늘었다. 기술 발전이 꽤 많은 일자리를 창출해오지 않았다면 인류 대부분은 실업자가 되어 인구 증가의 동력이 사라졌어야 한다. 지난 두 세기의 폭발적 인구 증가는, 기술혁신이 새로운 기회를 만들었으며 새로 만들어진 기회가 더 많은 인간을 부양해왔다는 강력한 증거다.

다른 나라에서 기본소득 도입이 논의되는 까닭

다만 향후 진행될 기술혁신의 방향은 인류의 근육과 두뇌를 대체하는 기계근육과 기계두뇌에 의해 주도될 여지가 크다. 그 때문에 인간의 삶은 지금보다 더욱더 ‘잉여’로워질 것이고, 인간의 노동이 가치를 직접 창출하는 영역이 줄어들 것이다. 특히 알파고로 대표되는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으로 머지않아 위협받게 될 직업군으로 기자·펀드매니저·변호사 등 화이트칼라까지 거론된다. 기계학습 알고리즘의 발전으로 측정 가능하고 패턴화할 수 있는 데이터가 존재하는 분야라면 어디든 위협받을 수 있다. 노동이 더욱 파편화되고 불안정해지는 컨시어지(concierge) 경제, 비정규직 경제가 보편화될 수 있다. 부와 권력의 편중은 더욱 깊어진다.

패턴화하거나 측정하기 어려운 인간만의 영역에서는 역설적으로 더 많은 부가가치가 창출될 수 있다. 노동에서 잉여로워진 인간들이 더 많은 예술활동과 여가활동을 통해 문화자본과 신체자본을 축적하고, 이를 통해 남과 자신을 구별 지으려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개인과 기업, 그리고 제품의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다양한 활동들이 더욱 부각되고, 사용자 경험을 개선하기 위한 인문사회적 통찰과 디자인 방법론이 각광받게 된다.

그렇다면 개인들은 다가올 미래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막연히 불안해하거나 ‘문송’할 시간에 간단한 코딩이나 데이터 분석 능력을 갖추길 권한다. 이와는 정반대로, 더욱 ‘잉여’로워질 인간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인문·사회적 통찰에 좀 더 천착하는 것도 필요하다.

여기에 부와 권력의 집중을 완화할 수 있는 정치적 해법이 더해져야 한다. 기계근육과 기계두뇌가 만들어낸 부에 대한 과세와 재분배다. 핀란드나 네덜란드 등에서 기본소득 도입이 논의되고, 미국 최고 수준의 스타트업 육성기관인 와이컴비네이터가 기본소득을 심도 있게 논의하는 것도 비슷한 흐름이다. 다음 대선이나 총선 땐 우리 정치권에서도 이러한 주제를 생산적으로 논의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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