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진표는 완성됐다. 이제 진짜 경기다. 3월31일부터 공식 선거운동에 들어갔다. 로고송과 벽보, 현수막이 일상인 2주가 펼쳐진다. 출마 후보자의 기초 자료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모두 올라왔다. 관심이 가는 후보를 검색해 관련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기자들도 선관위 홈페이지 검색에 여념이 없다.

 

여왕시대냐(여):국회의원 후보의 재산, 전과 기록 등이 공개됐다. 쏠쏠한 재미다. 기자들끼리 보면서 한참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겼다(웃음)’.

좋은코미디(좋):유권자도 많이 볼 것 같다. 포털 사이트에 후보를 검색하면 바로 선관위 프로필로 이동되더라. 이번 재산 공개로 가장 곤욕을 치른 곳이 민중연합당이다. 서울 동대문을에 출마한 윤미연 후보는 민중연합당 합당 전까지 흙수저당에서 활동했는데, 8961만원 재산을 신고했다가 당 이름 때문에 역풍을 맞았다. 사실 재산 규모가 그렇게 큰 건 아닌데.

무성이나르샤(무):확실히 흙수저·금수저 논란을 정치인들도 민감하게 여기는 것 같다. 대구 동구을 이재만 예비후보 쪽이 당초 내세운 콘셉트가 ‘흙수저 이재만, 금수저 유승민’이라고 한다. 서울 강서갑 신기남 후보 쪽에서는 ‘신기남 재산 7억, 금태섭 재산 77억’이라며 재산 11배 차이를 부각시키고 있다.

문제는선거다(문):전과 기록은 웬만하면 집시법 위반이더라. 그런데 예상치 못한 사람이 전과가 있어 상세 자료를 들춰보면 대부분 음주운전이더라. 의외로 많았다.

ⓒ연합뉴스새누리당 대구시당 회의실에 걸린 박근혜 대통령 사진. 이른바 ‘존영’ 액자다.

진박감별사(진):도로교통법 위반도 잘 살펴봐야 한다. 이번에 서울 은평을에 출마한 국민의당 고연호 후보가 포클레인 위에서 유세하는 사진이 돌아다니던데. 이것도 엄격히 보면 법 위반 소지가 있다(웃음).

:이번 선거에는 특정인에 대한 네거티브 전략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19대 때는 노원갑에 출마한 민주통합당 김용민 후보의 과거 막말이 선거 막판까지 쟁점이 되었고, 2014년 지방선거 때는 ‘국민 미개 발언’으로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의 자녀가 논란을 일으켰다. 과거 선거에 비해 이번에는 좀 조용한 편인데, 공천이 너무 늦게 확정돼서 그런 건지.

:공천이 늦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공천 과정에서 중앙 이슈가 연달아 크게 터져 웬만한 충격에는 다들 무뎌진 것 같다. 세월호 유족에게 ‘거지근성’을 운운한 내용을 SNS에 퍼 나른 김순례 대한약사회 여약사회장이 새누리당 비례 15번을 받았다. 논란이 일어 다음 날 새누리당 최고위에서 자질 문제로 추인이 보류되었지만, 후보가 버티니까 결국 흐지부지됐다.

:나경원 후보 자녀의 성신여대 부정입학 의혹도 많이 이야기되지 않았다.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때에는 ‘피부클리닉’ 논란이 어마어마했다. 지역마다 들여다보면 네거티브 전략이 없진 않으나, 전국적으로 크게 쟁점이 되지는 않는다.

:뒤늦게 수원에서 김진표 후보와 김상민 후보도 논란이 있긴 하다. 지난 2월 김진표 후보와 함께 등산을 간 조병돈 이천시장이 지역 주민인 산악회원에게 쌀을 줬다는 선거법 위반 혐의다. 김상민 후보는 19대 비례대표를 지내면서 정치자금 카드를 동네 빵집, 커피집, 결혼식 당일 근처 카페 등에서 사적으로 사용했다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국민의당 정호준 후보(서울 중구·성동을, 맨 아래 현수막)는 지난 3월31일 야권 단일화를 촉구하며 선거운동 중단을 선언했다.

:이번 주는 아무래도 ‘존영 논란’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박근혜 대통령 사진을 새누리당이 공문에 ‘존영’이라고 표기했다. 뒤늦게 국어사전을 찾아봤다(웃음). ‘존조’라는 동의어도 있더라.

 

:익숙한 말이 아니다 보니, 사고도 있었다. 채널A에서는 관련 뉴스를 전하다가 존영을 ‘영정’이라고 표현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식 사진, 이른바 영정을 놓고 새누리당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습니다”라고. 하마터면 국가 비상상태가 선포될 뻔했다(웃음). 앵커조차도 낯선 구태의연한 말이 뉴스를 장식했다는 사실이 ‘웃프다’.

:북한이 자주 쓰는 ‘최고 존엄’이란 단어가 생각나더라. 이를 비꼬아 진중권 교수는 트위터에 “조선은 하나다”라고 남기기도 했다.

:여야 대선주자급 정치인들도 다들 한마디씩 했다.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는 “지금이 여왕시대냐”라고 비판했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그동안 머리 아픈 일이 많았는데 좋은 코미디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라고 말했다. 김 대표의 머리 아픈 일은 새누리당이 자체 풍자한 ‘무성이 나르샤’ 영상을 보면 잘 나온다(웃음).

:‘진박 마케팅’이 역풍을 맞을 조짐이 일자 진박 감별사가 단속에 나섰다. 최경환 의원이 대구·경북 선대위 기자회견에서 “소위 친박이라는 사람부터 친박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겠다”라며 솔선수범하겠다고 밝혔다. 여론이 안 좋다는 걸 아는 거다. 물론 이미 공천을 받은 후보들은 단속이 잘 안 된다는 게 문제지만(웃음).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요즘 동네 권력 관계망도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예전에 사회부에 있을 때는 아파트 입주자대표가 별 권력이 아니라고 여겼다. 그런데 정치부에 와 선거를 치르다 보니 이들만큼 중요한 사람이 없더라. 마포을 손혜원 후보 개소식에서도 아파트 동대표 200명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했다(웃음). 지역 조직, 밑바닥 선거가 이런 거구나 싶었다.

:요즘 관변 단체 사람들도 바쁘다. 새마을운동중앙회·한국자유총연맹·바르게살기운동중앙협의회. 세 조직은 선거에서 꽤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선거 빈도로 따져보면 꽤 중요한 권력이다. 아니면 선거가 이 조직을 유지시켜주는 동력이거나.

:야권 단일화도 막판 쟁점이다. 향후 국민의당 선거운동이 어떻게 될지가 궁금하다. 안철수 대표 개인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거는 느낌이다. 공약집도 너무 빈약하다.

:호남이야 당 조직이 있으니 알아서 움직일 텐데, 문제는 수도권이다. 인천 부평갑 문병호 후보, 경기도 안산 상록을 김영환 후보는 대놓고 안 대표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당신 선거만 하지 말라고. 3월28일 김 후보가 공식석상에서 “노원 버려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참 심각하다고 느꼈다.

:수도권 국민의당 후보들은 야권 단일화를 원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개별 후보들끼리 알아서 단일화를 하기가 쉽지 않다. 곽노현 교육감 선거 때 논란이 된 것처럼, 후보로 등록한 이상 돈 문제가 끼게 된다. 이미 투자한 금액이 있으니까. 특히 두 사람 지지율에 격차가 클 때에는, 적은 쪽에선 얻는 게 없으니까 조율이 쉽지 않다. 일부 후보는 벽보 한번 붙여보는 게 꿈인 인물도 있다(웃음). 사람 마음이라는 게, 내 이름이 찍힌 표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보고 싶으니까.

:조금 앞서간 이야기지만, 수도권 일부 국민의당 현역 의원 가운데 아예 선거를 포기할 가능성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총선 이후 정계 개편을 보고 각자 살길을 찾지 않겠냐는 것이다. 선거 기간이 너무 헐레벌떡 지나가는 기분이다. 한 야권 당직자는 “선거운동은 활주로인데, 이렇게 짧은 활주로는 처음이다”라고 말하더라.

:선거가 열흘 정도 남았지만 앞으로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2012년 대선 당시 이정희 후보도 선거 3일 전에 사퇴했다.

:시간이 촉박하긴 하다. 그런데 사실 ‘아름다운 단일화’가 이뤄진 적은 거의 없잖나. 이것도 소선거구제의 비극이라면 비극이지만.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