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4년, 법령 75개 바뀌었다
  • 송기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국제통상위원장)
  • 호수 446
  • 승인 2016.04.08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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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는 한국 사회를 놀라울 정도로 바꿔왔다. 쌀뿐만이 아니다. 한·미 FTA에 맞춰 한국은 수많은 법령과 제도를 개정했다.

지난 3월15일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지 4년째 되는 날이다. 한·미 FTA로 달라진 것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은 한·미 FTA 찬성론자들의 의견처럼 장밋빛 세상이 오지는 않았지만, 반대론자들의 주장처럼 미국의 식민지가 된 것도 아니라고 무심히 말한다.

그렇지 않다. 세상은 분명히 한·미 FTA로 인해 달라졌다. 이를테면 한국은 2015년 기준으로 648만명이 1년간 먹을 수 있는 쌀을 해마다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나라가 되었다(통계청 발표 1인당 쌀 소비량 기준). 한·미 FTA의 결과다.

2005년 10월18일 국회에서는 쌀시장 개방 관련 공청회가 열렸다. 나도 토론자로 참석했다. 한국은 2004년 12월 세계무역기구(WTO)와의 협상에서 2015년부터 쌀을 관세화(쌀은 사실상 수입금지 품목이었다. ‘관세화’란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관세를 물리지만 수입한다는 의미다)하기로 했다. 그리고 관세화 이전까지는 매년 수십만t의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하기로 했는데, 그 분량이 2014년에는 40만8000여t에 달할 것이었다. 그것도 5% 정도의 저관세로 말이다. 그날 공청회는 이 같은 협상 결과의 국회 비준 여부를 토의하는 자리였다. 나는 반대했다. 그러나 옆 좌석의 토론자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캐나다 등 (쌀) 협상 상대국들은 지난해(2004년) 연말 타결된 쌀 협상 결과가 (한국에서) 아직까지도 이행되지 않고 있는 데 대해 우려를 표명해오고 있습니다.” 그는 이후 한·미 FTA 협상을 주도하게 되는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한국은 2015년 기준 648만명이 1년간 먹을 수 있는 쌀을 매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나라가 되었다.

당시만 해도 나는 김현종씨가 미국에서 한·미 FTA 문제를 협의하고 돌아온 직후라는 걸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는 쌀 공청회가 있기 한 달 전인 2005년 9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한·미 FTA 추진 결심을 받아냈다. 그리고 미국으로 날아가 협의를 시작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등 미국의 4대 선결 조건을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이윽고 대통령은 장관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FTA 하도록 합시다. 거역할 수 없는 대세입니다”라고 말했다. 김씨가 쓴 책(<한·미 FTA를 말하다>)에 있는 내용이다.

당시 김현종씨에게 ‘WTO 쌀 협상’의 국회 비준은 이후 기다리고 있는 한·미 FTA 협의에서 미국의 믿음을 이끌어낼 척도 같은 것이었다. 미국으로서는 쌀 협상조차 이행하지 않는 나라와 FTA를 협상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날 공청회에서 나는 쌀 협상 결과를 승인하지 말고 차라리 400~500%대의 적정 관세율로 쌀을 수입자유화하자고 말했다. 40만8000t이면 국내 쌀 소비량의 10%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이다. 이를 저관세로 도입하느니 차라리 자유로운 쌀 무역 시스템을 받아들이고 아주 높은 관세를 물리는 것이 국내 농민들에게 이롭다는 생각이었다. 더욱이 400~ 500%대의 높은 관세율은 WTO 협정에도 규정된 한국의 권리였다.

이에 맞서 김현종씨는 “지난주에 (WTO) 다자협상에 다녀왔다. 그 현장감을 거시적이고 미시적인 차원에서 확인하고 파악했을 때 거의 모든 국가들이 ‘관세 상한’을 받는 쪽으로 나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관세 상한’이란, 쌀 수입관세를 100~150% 이상 못 올리도록 ‘상한’을 둔다는 의미다. 이렇게 되면 400~500%대 관세율을 주장하는 것은 허망한 일이 된다. 김현종씨의 주장은 결국 2004년 말의 쌀 협상 결과를 그대로 받는 것 말고는 다른 출구가 없다는 의미였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윤무영</font></div>2011년 11월23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한·미 FTA 규탄 촛불집회.

공청회로부터 한 달여 뒤인 2005년 11월, 전용철·홍덕표 두 농민이 쌀 협상 반대 시위 중 경찰에 맞아 사망한다. 그런데도 국회는 같은 달 (의무 수입을 규정한) 쌀 협상에 대한 비준동의안을 통과시키고 만다. 그러나 김현종씨가 ‘거시적이고 미시적인 차원에서 확인하고 파악한’ 일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WTO는 이른바 ‘관세 상한’ 규정을 도입하지 않았다. 한국은 올해 513%의 관세를 매겨 쌀의 수입을 자유화했다(저관세 의무 수입+고관세 수입자유화 동시 실시).

한·미 FTA가 ‘경제민주화’ 법안 좌절시키기도

쌀 문제 이외에도 한·미 FTA는 한국 사회를 놀라울 정도로 바꿔왔다. ‘달라진 것이 없다’는 말은 일종의 현실 회피다.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달라진 점’은 한·미 FTA에 맞춰 개정된 수많은 법령과 제도이다. 미국식 제도들이 FTA를 타고 한국으로 날아왔다. 박주선 국회의원실에 제출된 정부 자료에 따르면, 한·미 FTA로 인해 한국은 법률 32개, 시행령 16개, 시행규칙 18개, 고시 9개 등 모두 75개 법령을 개정했다.

이 중 특히 눈여겨볼 법령으로는 올해부터 시작된 미국식 ‘허가-특허 연계제도’가 있다. 한국에서는 특허 기간이 지난 약품을 복제한 후발 약품의 경우, 안전성 및 유효성만 확인되면 판매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한·미 FTA에 따라 올해부터는 특허권을 가진 제약회사에 통지해야 품목 허가를 받을 수 있다. 만일 해당 제약회사가 특허침해를 주장하며 판매금지 신청을 내면 최대 9개월 동안 복제약 판매가 금지된다.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주목해야 할 변화들도 있다. ‘한·미 FTA 위반’이라는 미국의 주장 때문에 좌절된 정책들이다. 대표적 사례가 ‘저탄소차 지원제도’다. 정부는 2009년부터 이 제도를 추진했다. 국회는 2013년에 탄소배출 부담금을 징수해 저탄소차를 지원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그런 직후엔 저탄소차 예산으로 1500억원을 확보했다는 정부 보도자료도 나왔다. 그러나 미국이 한·미 FTA 위반이라고 주장하면서 시행 시기를 2020년 말로 연기하고 말았다.

우정사업본부는 2011년 11월 우체국보험의 가입 한도를 4000만원에서 6000만원으로 50% 높이는 입법 예고를 했다. 그러나 한·미 FTA에 명시된 투명성 조항을 위반하는 제도라는 미국의 반대로 포기했다. 금융위원회는 2013년 10월, 국내에서 카드를 결제하는 경우 미국계 글로벌 기업인 비자카드사의 해외 결제망을 사용하지 않는데도 이 회사에 수수료를 지급해야 하는 모순을 해결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역시 한·미 FTA 위반이라는 미국의 반대로 중단되었다.

더욱 심각하게는, 국내 대기업들이 한·미 FTA를 이용해서 중소 자영업자 등 경제적 약자를 압박하고 경제민주화에 저항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2013년, 경제민주화 흐름을 타고 ‘대기업의 중소기업 사업영역 침해’를 차단하는 제도의 법제화(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명령)가 시도되고 있었다. 당시 삼성카드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명령’이 법제화되면 미국의 대형 유통업체인 코스트코가 한·미 FTA의 국제 중재에 호소할 거라는 내용의 공문을 직능경제인단체연합회에 보냈다. 대기업이 한·미 FTA를 빌미로 경제민주화를 좌절시킨 대표적 경우다.

지금까지 열거한 것은, 한·미 FTA로 한국 정부의 정책 자율권이 침해당한 사례 중 일부에 불과하다. 필자는 정부에 ‘한·미 FTA 위반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추진하지 못한 정부 정책을 전부 공개하라고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물론 그들은 공개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2005년에 등장한 한·미 FTA 앞에 희생된 것은 쌀만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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