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이 화제다. 인공지능과 인간 고수의 대결은 승패를 떠나 인류의 미래에 여러 화두를 던지고 있는 듯하다. 인간 노동의 자리를 기계가 대치해가는 미래에 대한 암울한 전망도 언뜻 눈에 띈다. 도서관계에서는 책 없는 도서관이 개관하면서 이런 맥락의 논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2002년 미국에서는 애리조나 주 투손에 전자책만을 구비한 도서관이 개관했는데, 이후 주민들의 요청으로 결국 종이책이 함께 비치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계속되어 2013년에는 미국 텍사스 주 샌안토니오에 책 없는 도서관 ‘비블리오테크’가 개관했다. 도서관 내부의 모습은 마치 애플 스토어와 유사하다. 여러 대의 컴퓨터가 늘어서 있고, 도서관 이용자들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자신이 원하는 전자책과 각종 자료들을 둘러볼 수 있다.

이러한 신개념 도서관의 개관은 자연스레 ‘사서’의 존재에 대한 이슈로 번져 나갔다. 책 없는 도서관에서 사서는 과연 필요한 존재일까? 대개의 경우 책은 누가 읽어줄 수 있는 게 아니라 혼자 스스로 읽어야 하는 것이다. 마치 인터넷 서핑을 할 때 굳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 없듯 말이다. 소극적으로 보자면 책 없는 도서관에서도 이용자들이 쓰는 컴퓨터와 건물을 유지·관리해주는 이로서 사서의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사서는 과연 그런 식으로만 존재해야 하는 걸까?

ⓒ임윤희 제공미국 대니엔 도서관에서 열린 체스 대회에 참가한 어린이들.

세무 서류 작성·검토까지 도와주는 도서관

북미 도서관을 관찰하면서 미뤄보건대, 공공성을 지향하는 도서관들은 책의 대여뿐만 아니라 커뮤니티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하다. 북미에서는 도서관이 일종의 마을회관과 유사한 기능을 해온 경우가 꽤 있으니,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고민을 확장해간 것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사서의 업무 영역 역시 책을 넘어서 확장되어가고 있는 셈이다.

북미의 크고 작은 도서관에서는 책과 무관해 보이는 일들을 많이 벌인다. 예를 들면, 도서관 한쪽 방에 할머니들이 모여 일주일에 한 번씩 뜨개질 모임을 하기도 한다. 매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체스 대회를 여는데, 대회 직전에는 학생들이 도서관에 몰려와 끙끙거리며 체스 연습을 하기도 한다. 실직자들을 위한 취업 알선 프로그램도 인기다. 재취업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함께 실시되는 경우도 꽤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에 거주하는 후배는 소득세 신고를 위해 1년에 한 번씩 도서관을 찾는다. 세무사를 고용하기에는 비용 부담이 큰데, 도서관에서 각종 서식 작성 요령을 비롯해 서류 검토까지 해주기 때문에 예약만 하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세금 신고를 마칠 수 있다고 한다.

소규모의 동네 도서관만 이런 일을 하는 게 아니다. 샌프란시스코 공공 도서관은 내부 공사를 하면서 사람들이 모여서 토론할 수 있는 방을 여럿 만들었다. 2~4인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비롯해서 15명 내외가 쓸 수 있는 곳까지 여러 크기로, 이용자들이 함께 무언가를 논의하고 도모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개인적인 용무로 공간을 대여하기는 어렵지만, 지속적인 공부 모임, 지역 문제를 고민하는 단체, 그 외에 공공성과 관련한 지속적인 논의 테이블을 필요로 하는 모임 등이 이곳을 사용한다. 지식의 공공성을 추구하는 도서관은 그렇게 공간의 공공성까지도 함께 모색하며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도서관이 인류의 지식을 나누기 위해 마련된 공간이라면, 그 나눔을 기획하고 실행하며 유지하는 데 사서는 필수적인 존재다. 미래의 어느 날에는 그것조차 기계가 대치할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사서가 필요하다. 기계와는 달리 몸을 부대끼고 마음을 나누면서 나름의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그러한 인간에게 말이다.

기자명 임윤희 (도서출판 나무연필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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