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와 이세돌의 싸움은 알파고의 승리로 끝났다. 이번 대국은 일단 현재의 인공지능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전 세계인에게 공표했다는 측면에서 ‘이정표’ 같은 사건이다. 필자는 알파고의 승리를 아직까지는 계산 능력의 승리로 보는 편이지만, 적어도 계산 능력에서만은 기계가 인간을 능가한 것이다. 또한 알파고의 승리는 현 단계 기술 투자와 연구 방향을 설정하는 분기점이다. 앞으로 천문학적인 금액이 인공지능 개발에 투입되리라 예상된다. 돈 있는 기업들은 앞으로 과감하게 인공지능을 실제 산업에 적용할 것이다. 이로 인해 알고리즘으로 자동화된 기계 노동이 공장과 사무실의 인간 노동을 더 과격하게 대체할 것이다. 일종의 인공지능 연쇄반응이 일어나는 것이다.

알파고의 승리와 예상되는 연쇄반응을 두고 다양한 상상력을 펼치는 것은 당연하다. 영화 〈터미네이터〉나 〈매트릭스〉에서와 같이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고 인간은 기계의 노예가 될 것이라는 우려와 공포도 적지 않은 듯하다. 그런데 기계 생명체가 인간을 지배하는 일이 과연 일어날까?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려 한다면, 기계가 인간을 위협적인 존재로 느끼거나 최소한 기계가 인간을 지배해서 얻어내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인간이 지구의 생명체를 끊임없이 절멸시키고 있다는 측면에서, 인간의 존재가 기계에게 위협이 될 것이라는 상상은 충분히 개연성 있다.

그런데 기계에게 인간은 필요한 존재일까? 우월한 지능, 특수합금과 특수 물질로 구성된 강인한 몸체, 전기를 먹고 사는 기계 생물체에게 도무지 인간을 노예로 삼아야 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기계에게 인간은 아무 필요 없는, 끝내 절멸시켜야 할 존재로 인식되는 것일까?

ⓒ연합뉴스알파고와 이세돌(위) 9단의 대국은 인공지능의 현재를 보여줬다.

이런 상상은 어떨까.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을 가진 기계가, 엄청난 계산 끝에 다른 생명체를 지배하는 것은 진화가 덜된 생명체의 행동이라 판단하고 지구에서 인간과 공존하는 전략을 수립한다면? 혹은 도를 터득한 어떤 기계가 그저 인간을 도와주며 인간을 계도하는 존재가 되고자 하는 것은? 혹은 인간과의 공존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기계들이 다른 행성으로 집단 이주하는 것은? 기계가 인간을 지배한다는 상상이 가능하다면, 위와 같은 상상도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게임이론이나 진화생물학은 생명의 역사, 인간의 역사가 지배와 정복으로 점철되어 있기도 하지만, 또 그만큼의 타협과 협력, 자기희생도 함께 있었다는 것을 밝혀내고 있다. 인간이 지구에서 가장 우월한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이 가족이나 친족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대규모 협력 시스템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능을 가진 기계가 인간의 이기심과 폭력성을 발견한다면 인간 사회를 지탱해준 협력과 자기희생도 함께 발견할 것이다. 즉 기계가 인간을 지배할 것이라는 상상은, 인간 본성의 한 부분만을 기계에 투여한 것일 뿐이다.

인간의 노동 없이 부가 쌓이는 시대

필자가 보기에 기계가 인간을 억압하는 것보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지배하는 데 기계를 사용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의 첫 번째 숙제는 기계의 힘을 빌려 인간을 지배하려는 인간을 사회적으로 통제하는 것이다. 이미 저명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로봇보다 자본주의를 더 무서워해야 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또한 기계로 인해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은 이제 기정사실이 되고 있다. 이제 인간의 노동 없이 부가 쌓이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더 큰 문제는 인간의 노동 없이 만들어진 부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결국 기계 시대의 문제는 기계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다. 우리가 정작 걱정해야 할 것은 기계가 아니라, 우리의 정치이고 우리의 경제이고 우리의 삶이다.

기자명 전명산 (정보사회 분석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