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플레이션 공포] 통화정책의 최종 버전, 마이너스 금리
  • 이종태 기자
  • 호수 445
  • 승인 2016.03.31 02: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돈의 소비를 미루고 빌려준 대신 이자를 받는 것은 금융의 기본 원리다. 이런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는데도 ECB, 일본 등에서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했다. 미국 연준이 마이너스 금리를 채택할 가능성도 있다.

[특집] 디플레이션 공포


무엇을 할 것인가
 

“노동자 임금 올려 디플레이션 해결하자”
 

통화정책의 최종 버전, 마이너스 금리
 

통화정책 지고 재정정책 뜰까
 

‘헬리콥터 머니’가 주목받는 이유

 

‘마이너스 금리’란 예금자가 이자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축기관에 일종의 보관료를 내야 하는 제도다. 한마디로 많이 저축할수록 손해다. 현금으로 가지고 있으면 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수십만원이라면 몰라도 수억~수십억원만 돼도 현금으로 소지하는 데에 엄청난 비용이 든다. 고성능의 금고와 보관 장소가 필요한 데다 심지어 경비원까지 고용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보다는 차라리 저축 액수를 가급적 줄이는 방법, 즉 소비하거나 투자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일 수 있다. 결국 마이너스 금리는, 저축하지 말고 소비(투자)하라는 금융 당국의 ‘무언의 압박’이다. 2014년 유럽중앙은행(ECB) 마리오 드라기 총재가 마이너스 금리 도입을 선언한 이후 스위스, 덴마크 등도 이 제도를 채택했다. 지난 1월에는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도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다고 선언했다.

그동안 선진 자본주의국 정부들은 금리와 통화량을 조절해서 경기를 부양하는 통화정책에 집착해왔다. 재정정책은 논외였다. 통화정책 가운데서도 극단적으로 과격한 ‘기준금리 0%’와 양적완화 같은 수단까지 서슴지 않았지만, 사실상 실패하고 말았다. 이제 남은 것은 ‘통화정책 시리즈’의 최종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마이너스 금리밖에 없다.

물론 마이너스 금리가 가계나 기업에 적용된 사례는 없다(논의된 적은 있다). 지금까지는 은행들에만 적용되고 있다. 은행도 저축을 한다. 유럽과 일본의 금융 당국은 은행들에게 ‘저축하지 말고 투자하라’는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은행의 투자는 기업이나 가계에 대한 대출이니까, 많이 대출해서 경기를 살리라고 은행의 팔을 비틀고 있다는 의미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AP Photo</font></div>지난해 드라기 ECB 총재를 만난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왼쪽). 최근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했다.

그렇다면, 은행들은 어디에 저축하는가? 중앙은행에 저축한다. 가계와 기업이 일반은행에 계정을 가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반은행들은 중앙은행에 자행 명의의 계정을 갖고 있다. 그 계정엔 일반은행의 돈이 예치(저축)되어 있다. 이 돈을 일단 보유금(reserve)이라 부르기로 하자. 보유금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지급준비금’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일반은행들은 자행에 들어온 예금 중 일정 비율(지급준비율)을 중앙은행 계정에 의무적으로 예치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를테면, A라는 은행에 들어온 예금액이 모두 1000억원이라면, 지급준비율이 10%(한국의 실제 지급준비율은 11.5%)인 경우, 100억원을 중앙은행에 있는 A은행 명의의 계정에 예치해둬야 한다. 물론 더 많이 넣어둬도 괜찮다. 만약 A은행이 중앙은행의 자행 계정에 모두 120억원의 보유금을 갖고 있다면, 이 중 20억원(보유금 120억원에서 지급준비금 100억원을 뺀 액수)을 ‘초과 지급준비금(초과지준)’이라 부른다. 중앙은행이 이자도 준다.

이 초과지준으로 인해 경제 시스템의 작동에서 가장 중요한 금리가 형성된다. 이른바 오버나이트 금리(overnight rate)다. 은행들은 영업을 마친 뒤, 상호 간에 정산을 한다. 하루 동안 고객들이 이 은행 저 은행으로 옮긴 금액을 최종 결산하면 은행끼리 주고받아야 할 금액이 나온다. 정산 결과, A은행이 B은행으로 일정 액수를 지급해야 한다면, A은행의 중앙은행 계정에서 B은행의 중앙은행 계정으로 해당 금액을 옮기게 된다. 그런데 A은행이 B은행 계정으로 보낼 돈이 30억원이라고 가정해보자. A은행의 보유금 120억원 중에서 30억원을 빼내면 90억원이 남는다. 의무적으로 유지해야 할 100억원보다 10억원 적다. A은행은 다른 은행으로부터 급히 10억원을 빌려야 한다. 만기는 하루다. 다른 은행들 역시 지급준비금은 유지해야 하므로 초과지준 가운데 일부를 A은행에 빌려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은행 간의 자금 거래’가 매일 이루어진다. 그 과정에서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은행 간 하루 만기 금리’인 오버나이트 금리가 형성된다. 은행들이 다른 은행에 빌려줄 초과지준이 풍부하면 오버나이트 금리가 내리고, 반대의 경우에는 오른다는 의미다.

‘초과지준’의 이자 조절해 오버나이트 금리 조정

오버나이트 금리는 상환받지 못할 위험이 극히 작은 든든한 상대(다른 은행)에게 초단기로 빌려주는 돈의 이자율이다. 당연히 매우 낮은 수준으로 형성된다. 은행들이 다른 종류의 수많은 대출에 각각 금리를 매길 때 ‘바닥’ 같은 역할을 한다. 가장 밑에 있는 오버나이트 금리가 올라가면(내려가면), 다른 대출의 금리도 인상된다(인하된다).

그러므로 중앙은행이 경기 조절을 위해 사회의 여러 금리를 올리거나 내리려면, 이 오버나이트 금리를 움직여야 한다. 예컨대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3%로 제시했다면, 오버나이트 금리가 3%로 접근하도록 조치하겠다는 의미다.

중앙은행은 어떤 방법으로 오버나이트 금리를 움직이는가? ‘은행 간 자금 거래 시장’에 개입하는 방법을 통해서다. 예컨대, 일반은행이 중앙은행 계정에 ‘저축’해둔 초과지준의 이자를 조절하면 된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AFP</font></div>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유럽중앙은행. ECB는 2014년 마이너스 금리 도입을 선언했다.

유로존 중앙은행인 ECB의 경우, 지난해 12월의 초과지준에 대한 금리가 마이너스 0.3%였다. 오버나이트 금리는 이보다 조금 높은 마이너스 0.24%다. 일반은행들 처지에서는 같은 마이너스 금리지만 ECB에 예치해두기보다 다른 은행에 빌려주는 쪽이 손해가 적다. 또한 오버나이트 금리가 내리면 은행들이 일반 고객에게 빌려주는 금리도 하락한다.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유로존의 경우 마이너스 금리 제도를 시행하기 이전에는 3.28%였던 ‘5년 이상 주택담보대출’의 평균 금리가 최근에는 2.82%까지 내렸다.

그러나 마이너스 금리가 장기적으로 경기를 부양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무엇보다 2년째 마이너스 금리 제도를 시행해온 유로존 경제부터 대출 규모가 미세하게 늘어난 점을 빼면 크게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금리를 내리고 심지어 마이너스로까지 전환했는데도, 민간 경제주체들이 돈을 빌려 투자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뭔가 다른 진단과 방법이 필요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한편 마이너스 금리는 은행의 재무구조를 악화시킬 것이다. 일반 고객에 대한 대출금리까지 크게 인하되면서 은행들의 수익률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마이너스 금리로 은행들의 팔을 비틀어 덮어놓고 돈을 빌려주도록 하는 과정에서 부실 대출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원인은 미국 은행들의 부실 대출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선진 자본주의국 정부들이 재정정책 등 대안적 수단을 금기시하는 상황에서는 마이너스 금리 제도가 가장 현실성 있는 불황대책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엄청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재정정책이 아니라) 통화정책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일반은행이 저축한 초과지준에 0.5% 정도의 이자를 지급하는 미국 연준(중앙은행)이 조만간 마이너스 금리 제도로 전환할지 모른다는 소문이 떠도는 이유다.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