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20대 총선을 읽는 6가지 관전 포인트

빼앗긴 지역구에는 ‘진박’이 오는가

총선 강타한 ‘공천 파동’

 

3월 셋째 주 여의도에는 봄바람 대신 피바람이 몰아쳤다. 여야 가리지 않고 공천에서 탈락한 정치인의 아우성으로 가득했다. 새누리당은 설마설마했던 비박계 정치인의 대규모 공천 탈락이 현실화됐고, 더불어민주당은 정청래·이해찬 의원 등의 컷오프 논란으로 발칵 뒤집혔다.

공천 후폭풍은 정치인에게만 몰아친 건 아니다. 공천 탈락자 발표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시시때때로 이뤄지는 통에 기자들은 3월 셋째 주 내내 ‘비상 대기’ 상태였다. 공천 논란은 총선 때마다 되풀이되는 연례행사지만, 이번 20대 총선 공천은 유독 소란스러웠다는 게 3월16일 방담에 참여한 기자들의 공통된 이야기였다. 그야말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정무적판단(정):공천 탈락한 새누리당 조해진 의원(경남 밀양·창녕)이 ‘역대 최악의 보복 학살 공천’이라고 했다.

춘래불사춘(춘):모 기자가 ‘나는 이번 공천 학살극이 정말 무서웠는데 사람들은 별로 안 무서워하는 것 같다’고 하더라. 피만 안 튀었지, 대통령 눈 밖에 난 사람들 다 죽인 것 아니냐.

눈먼자의도시(눈):친한 새누리당 보좌관이랑 문자를 나눴는데 의외로 담담했다. “정치란 게 원래 이런 거다. 예전에 무소속으로 선거 한번 뛰어봤는데 진짜 힘들었다”라면서.

ⓒ시사IN 신선영3월16일 정청래 더민주 의원은 ‘탈당하지 않고 당의 승리를 위해 제물이 되겠다’고 밝혔다.

승리의제물(승):차라리 처음부터 유승민 의원(대구 동구을)을 날려버리는 게 낫지 않았을까. 일부러 더 고통스럽게 하기 위해 저런 걸까? 확실히 지금 대통령에게 선거에서 이기느냐 마느냐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 것 같다. 원한을 푸는 ‘블러디 메리’ 같다.

쓰라린보복(쓰):18대 총선 때부터 취재했는데, 이번 총선이 제일 피곤하다. 새누리당의 경우 18대는 이명박, 19대는 박근혜라는 구심점이 있었다. 이번에는 김무성 대표 리더십이 너무 약하다. 왜 김 대표가 공천관리위원회를 친박 쪽에 유리하도록 구성했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간다.

:요즘 김무성 대표를 보면 안쓰럽기까지 하다. 자기 측근 몇 명 살리고 모든 걸 잃었다. 김무성 측근이 늘 “지는 게 이기는 거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는데 정말 시원하게 지고 있다.

:‘30시간의 법칙’을 또 보여줬다. 청와대에 저항하는 것 같다가도 결국 30시간을 못 넘긴다. 자기 계파도 못 지켜주면서 무슨 대선 주자냐. ‘친노 패권주의’에 대한 비판이 많지만 문재인 의원이 대권 주자가 된 것도 결과적으로 지난 총선 때 자기 사람이 많이 공천됐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 아닌가.

정:김무성 대표는 총선 끝나면 대표 임기도 끝난다. 대통령과 싸워서는 못 이기겠고, 최소한의 방어막이라도 쳐야겠다고 타협한 거지.

ⓒ시사IN 윤무영공천 탈락한 새누리당 조해진 의원(위)은 “역대 최악의 보복 학살 공천”이라고 말했다.

:유승민 의원에 대해 당의 정체성과 맞지 않는다고 트집 잡은 것도 말이 안 된다. 뒷담화 자리에 오기 전에 새누리당 당헌·당규를 살펴봤는데 문제 삼을 게 없더라. 굳이 따지자면 8조에 당과 대통령의 관계 정도 있던데, 이 상황과는 전혀 안 맞는다. 명분이 없다.

:편한 지역의 다선 의원도 쳐내겠다고 했는데, 진영 의원이 용산에서 편하게 있었나? 은평의 이재오도 그렇고. 거긴 험지다. 오죽하면 보수 언론도 엄청 세게 비판하더라. 오늘 〈동아일보〉가 사설에서 “새누리당이 이러고도 국회 180석이나 과반수 의석을 노린다면 도둑놈 심보”라고 했다.

:진영 의원 말마따나 ‘쓰라린 보복’을 당했다. 결과적으로 이게 다 유승민 띄워주기인데, 이렇게 되면 유승민 앞날 창창한 것 아닌가.

:유승민 지역구에 취재 간 기자들 정보 보고를 보니, ‘유승민이 집에서 치킨 시켜 먹었더라, 와이셔츠 새로 배달했다’는 내용도 있더라. 세월호 선주 유병언 사건 때 종편에서 이런 내용의 보도를 했는데….

:대구에 가보니까 유승민은 무소속으로 나와도 100% 될 거라고 하더라. 워낙 인지도가 높다. 친박 쪽 후보인 이재만 전 동구청장은 지역에서 이런저런 비판 여론이 높더라.

ⓒ연합뉴스 최근 대구를 찾아 ‘진박’ 정종섭 후보와 악수를 하는 박근혜 대통령.

:비박 무소속 출마가 대구 총선의 핵심 변수라던데?

:글쎄 잘 모르겠다. 대구 지역 국회의원들이 기본적으로 지역 관리를 잘 안 한다. 공천만 받으면 당선될 테니까. 그래서 이번에 탈락한 초선 의원들에 대한 반감이 있다.  

승:더민주 관계자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얼마 전 대구에 가서 어떤 종교인을 만났단다. 둘이 차를 마시고 있는데 정종섭 전 행자부 장관(대구 동구갑 출마)이 그 종교인을 만나러 왔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이 관계자가 자리를 피해주려 하니까 정 후보 만나기 싫으니 계속 앉아 있으라고 하더란다. 진박 마케팅하는 인간들 꼴 보기 싫다면서. 결국 정종섭 후보가 그냥 돌아갔단다. 어쨌든 진박 마케팅에 대한 반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더민주는 청년 비례에서 난리가 났다. 청년 비례대표 경선 절차가 중단됐고, 더민주 관계자에게 서류 첨삭지도를 받은 최유진 후보는 사퇴했다.

:결국 일을 무리하게 하면 될 일도 안 된다. 문제는 이 일을 계기로 핵심 지지층이 반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청래·이해찬 컷오프에 이어 최유진 사태까지 터지니, 김종인 지도부를 맹공격하고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최유진 후보가 국민의당 창당 발기인이었다는 건 마타도어(흑색선전)다. 어찌 보면 허위 사실이 핵심 지지층을 건드린 셈이다.

ⓒ연합뉴스홍창선 더민주 공관위원장은 자신의 비서 출신을 청년 비례 경선에 올리는 등 물의를 빚었다.

:이게 과연 한 인간을 싸잡아서 욕할 문제인가 싶다. 솔직히 청년 비례대표 자체가 꼭 필요한 것인가 하는 의문도 생긴다. 2012년 처음 청년 비례대표 뽑을 때 지원자가 없어서 공모 기간을 보름 연장했다. 그때도 선출 방식 논란 등 몇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이게 해결되지 않은 채 더 악화됐다.

:결국 청년에게 정치 술수만 배우게 만들었다. 이런 정당 구조에서 청년들이 정치를 배운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유럽의 청년정치 모델을 보면서 어떤 환상을 가졌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청년 비례에서 떨어진 사람으로부터 이야기 들었더니 면접은 5분도 안 봤다고 한다. 그러면서 가족의 직업을 캐묻는 등 신변잡기만 물어봤다고 하더라. 일반 기업에서도 그런 식으로 물어보면 문제가 될 텐데, 기본적으로 청년 비례대표를 뽑는 의미가 뭔지 당 내부에서 공유가 안 된 상태였다.

:홍창선 더민주 공천관리위원장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정청래 의원더러 도널드 트럼프처럼 막말한다며 망신을 줘놓고서는 갑자기 또 구제해야 한다고 나서고, 오락가락이다.

:어찌 보면 홍창선 위원장이 정청래보다 더 막말한 것 아닌가. 게다가 자기 국회의원 시절 비서 출신을 청년 비례 최종 경선에까지 올려놓았으니.

:새누리당이나 더불어민주당이나 모두 공천관리위원장이 문제였다. 아마 새누리당 이한구 위원장이 아니었으면 홍창선 위원장은 더 욕을 먹었을 거다(웃음).

:김종인과 문재인의 관계도 관심거리다. 처음에는 서로 자기가 살 숙주를 고르는 것이라고 봤는데 요즘은 잘 모르겠다.

:여담이지만 김종인 대표 체력이 대단하다.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모든 일정 소화하는 걸 보고 77세가 맞나 싶었다. 목에 주름 보고 ‘노인 맞구나’ 했으니까(웃음).

:김종인 대표에 대해 핵심 지지층이 아무리 부글부글 끓어도 문재인 전 대표가 가만히 있으면 소용없다.

:문 전 대표가 이해찬 의원 컷오프에 대해 밝혔다는 말을 간단하게 줄이면 “당의 정무적 판단도 중요하지만, 한번 고려해달라” 정도였다. 발언이 결코 세지 않았다.

:문 전 대표가 이해찬 의원과의 관계를 봐서 퍼포먼스 한번 해준 것 아닐까.

:이번 공천에서 문재인 측 사람들이 많이 배제됐다고 해도 스크럼 짤 사람들이 20명은 남아 있다.

:지금 ‘박영선 의원이 모든 걸 좌지우지한다’는 이야기도 과장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비대위에 들어가 있는 유일한 현역 의원이라 일정 부분 발언권이 있지만, 결정은 결국 김종인 대표가 하는 거다. 핵심 지지층이나 SNS에서 박영선 비토가 많은 거 보면 밉상으로 찍힌 건 맞나 보다.

:정청래 의원이 “당의 승리를 위해 제물이 되겠다”라고 말한 건 인상적이었다. 당내 분란이 임계점에 다다를 무렵 결단을 내렸다.

:이번 공천 과정에서 박원순 서울시장도 상처를 좀 받았다. 임종석 전 정무부시장이 서울 은평을 공천에서 탈락하고, 자기 사람들 상당수가 떨어졌다. 지금 상당히 우울할 거다.

:국민의당 이야기도 해보자. 천정배 의원이 수도권 연대 주장을 접고 당에 복귀하자 김한길 의원이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는 눈뜬 사람 하나가 모든 진실을 말해준다는 말이 있다”라고 말했던데, 유체이탈 화법 같더라.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할 때는 “양당 중심 정치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허물어내야 한다”라고 했는데, 앞뒤가 안 맞는 것 아닌가. 오늘 종편을 보니까 한화갑 전 의원이 나와서 “저런 정치인은 당선시켜주면 안 된다”라고 하더라.

:김한길이 최대 위기에 빠진 것 같다. 결국 불출마하지 않을 수 없었을 거다.

:국민의당은 수도권에서 당선될 만한 사람이 거의 없다. 지금 수도권에서 정의당보다도 지지율이 한참 처지지 않나. 그나마 노원병(안철수), 인천 계양을(최원식), 관악갑(김성식) 정도일 텐데 야권 연대가 안 되면 더욱 힘들겠지.

:수도권에 출마한 국민의당 후보 가운데 상당수는 그동안 더민주 소속으로 출마하려 했다가 번번이 경선에서 탈락한 사람들이다. 본선 진출 그 자체가 목적인 사람이 꽤 되기 때문에 야권 연대에 반대할 것이다.

:이번 총선이 끝나면 한 시대가 갈 가능성이 높다.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의 존재감도 옛날 같진 않을 것 같고, 과거 김대중(DJ)·노무현 정부에서 힘 좀 썼던 이들 상당수도 정리될 것 같다.

:한 시대가 가려 하는데, 대통령만 그걸 모르는 것 같다. 대구·경북을 근거지로 ‘시간을 거꾸로 달리는 소녀’가 되고 싶으신가 보다. 솔직히 창피한 한 주였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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