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강타한 ‘공천 파동’
  • 이오성 기자
  • 호수 445
  • 승인 2016.03.23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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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 후폭풍이 총선판을 흔들고 있다.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한 비박계 의원들이 ‘무소속 연대’ 깃발을 들지 여부가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TK의 ‘진박 배치’와 수도권 비박계 중진 제거를 위해 총선 구도 전체를 흔들었다는 말까지 나온다.

커버스토리

20대 총선을 읽는 6가지 관전 포인트

빼앗긴 지역구에는 ‘진박’이 오는가

총선 강타한 ‘공천 파동’

 

다시 ‘시계 제로’다. 총선을 채 한 달도 남겨두지 않은 3월 셋째 주 여의도에서 시작된 공천 피바람이 20대 총선을 혼돈으로 밀어넣었다. 새누리당의 비박계 유력 정치인들이 대거 공천 탈락하면서 총선 구도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형국이다.

항간에 떠돌던 새누리당 살생부 명단과 비교하면 이번 공천 파동의 실체가 뚜렷해진다. 살생부 명단에 올라 있던 친박계 서청원·홍문종·황우여 등은 컷오프에서 살아남은 반면 명단에 있던 유승민계는 실제로 배제됐다. 서울 은평을에서만 5선을 해 대안이 없는 것으로 여겨졌던 이재오 의원도 탈락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당 정체성을 훼손하거나 편한 지역에서 다선한 정치인을 배제하겠다’던 이한구 새누리당 공관위원장의 말은 ‘비박계 탈락’으로 현실화했다.

압권은 역시 대구다. 청와대와 인연을 맺은 ‘진박’ 대다수가 살아남았다. 이번 공천 결과에 대해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모든 걸 청와대 입장에서 보면 간단하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본거지인 대구는 싹쓸이, 후환이 염려되는 수도권 중진(이재오·진영·안상수)은 아웃, 시끄럽지만 썩 무섭지는 않은 이들(김용태·정두언)은 살려둔 것이 ‘공천 파동’의 요약이라는 이야기다. 후폭풍의 규모를 당장 가늠하긴 어렵다. 공천 탈락한 비박계 의원들이 ‘무소속 연대’의 깃발을 드느냐 여부가 이번 총선의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총선판이 ‘1여 다야’에서 ‘다자 구도’로 재편될 가능성이 생겨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파동도 만만치 않았다. ‘최전방 공격수’를 자임했던 정청래 의원을 탈락시킨 데 이어 친노 좌장으로 불리는 이해찬 의원도 공천 배제했다. 공천 결과에 반발하는 핵심 지지층이 SNS 등에서 항의하면서 내분 가능성이 점쳐졌다. 핵심 지지층의 이탈로 더민주의 지지율도 빠졌다.

하지만 3월16일 정청래 의원의 ‘백의종군’ 선언 이후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비례대표 최우선 순위였다가 마포을로 차출된 손혜원 더민주 홍보위원장과 정청래 의원이 손을 잡는 모양새를 연출하면서 ‘반전’이 일어나는 분위기다. 

비례대표 순위 논란으로 한때 김종인 비대위 대표가 칩거에 들어가는 등 김종인 체제 이후 최대 위기에 봉착했으나 3월23일 김 대표의 당무 복귀로 일단락됐다. 당초 '김종인 안'대로 1위 박경미 교수, 2위 김종인 대표 순위는 그대로 유지하되 송옥주 더민주 홍보국장, 김현권 더민주 농어민위원회 수석부위원장, 제윤경 주빌리은행 대표 등을 당선 가능권으로 배치하는 선에서 타협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이한구와 김종인, 두 ‘칼잡이’의 공통점

새누리당과 더민주의 공천 파동은 닮은 듯 다르다. 먼저 이한구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과 김종인 더민주 비대위 대표라는 ‘칼잡이’의 존재가 닮았다. 이들은 각각 박근혜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표라는 ‘대주주’를 등에 업었다. 이한구 위원장은 박 대통령의 ‘그림자 무사’ 노릇을 100% 충실히 해내고 있다. 김종인 대표의 경우 한때 문 전 대표와 엇박자를 내는 것처럼 보였으나, 문 전 대표의 암묵적 지지 속에 위임받은 권력을 거칠 것 없이 행사하고 있다.

이한구와 김종인, 두 칼잡이가 함께 ‘치킨게임’을 벌인 점도 닮았다. 이한구 위원장은 살생부 파동 등 비박계의 격렬한 저항을 뚫고 절벽으로 내달렸다. 김무성 대표와 수도권 의원들의 반발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김종인 더민주 비대위 대표는 최근 “총선 목표 107석에 미달하면 당을 떠나겠다”라며 총선 목표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김종인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필리버스터 중단, 정청래·이해찬 의원 컷오프 등에 따른 핵심 지지층의 반발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SNS 여론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메시지도 던졌다. 두 사람이 각각 유승민 의원과 이해찬 의원의 공천 배제 논란에 대해 ‘정무적 판단’이라고 말한 것도 똑같다.

다른 점을 짚어보자. 더민주의 경우 공천 파동이 수습 국면으로 들어가는 모양새다. 당이 더 이상 내홍에 휩싸여서는 안 된다는 당 안팎의 염려가 컸다. 분당 사태를 겪은 마당에 비대위까지 사퇴하면 총선 참패가 불을 보듯 뻔하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내분 피로증이 극에 달하면서, 김종인 대표의 리더십이 공고해졌다.

친노 주류에 속하는 한 당직자는 “김종인 대표의 전횡에 부글부글 끓지만, 총선 때까지는 당을 혼란에 빠뜨려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있는 게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유인태·정청래 의원 등이 백의종군을 선언한 것은 이런 공감대의 발로였다.

반면 새누리당의 내홍은 이제 시작이다. 내홍 가능성은 지난해 여름 박근혜 대통령의 유승민 찍어내기 사태 때부터 점쳐졌다. 말은 많았지만 분란을 최소화하며 타협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정치권의 전망이었다. 유승민 의원은 살려놓되, 그의 수족을 자르는 방법으로 대구·경북을 장악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2월 초 ‘친박계 칼잡이’인 이한구 의원이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당의 정체성을 훼손하거나 편한 지역에서 다선한 정치인을 배제하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그 결과가 유승민계 학살과 수도권 중진의 공천 탈락으로 나타났다. 대구·경북의 보수 언론조차 이한구 위원장의 ‘칼춤’을 염려하고 나섰지만, 그의 기세는 수그러들 줄 모른다.

공천 파동의 규모와 강도가 예측보다 훨씬 큰 탓에 정치권도 한동안 혼란에 빠졌다. 갖가지 해석이 난무하지만, 공통된 이야기가 있다. 청와대와 친박계가 총선 승리의 기준을 ‘삭제’해버렸다는 것이다. 무슨 말일까.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안철수 대표(위)가 이끄는 국민의당은 교섭단체 구성에 성공했지만 주목도에서는 처진 느낌이다.

 

공천 파동 이전 새누리당의 총선 공식 목표는 김무성 대표가 밝힌 180석이었다. 항간에서는 200석(개헌 가능선)까지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도 떠돌았다. 이런 목표가 현실화되려면 새누리당의 텃밭인 영남권 싹쓸이만으로는 부족하다. 수도권에서 과반을 뛰어넘어야 가능한 목표다. 정치권에서 유승민이나 이재오 의원의 공천 배제 가능성을 낮게 본 이유가 이것이었다. 두 의원이 탈락할 경우 수도권의 온건한 새누리당 지지층이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유승민을 자를 경우 수도권에서 새누리당 의석이 10개 정도는 날아갈 수 있다”라는 게 여야의 공통된 진단이었다.

새누리당의 공천 결과는 이런 관측을 보기 좋게 빗나갔다. 총선 목표 따위에 연연해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읽힐 정도다. 실제로 이한구 위원장은 공천 파동 이후 총선 목표 의석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결국 과반인 150석 이상만 얻으면 총선 결과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판단 아래 공천 학살이 자행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대구·경북의 진박 배치와 수도권의 비박계 중진 제거라는 목표를 위해 총선 전체 구도를 흔들었다는 이야기다. 무시무시한 해석이지만, 이것 말고 새누리당의 공천 파동을 설명할 다른 해석을 찾기 어렵다.

물론 새누리당 지지층의 성향상 공천 파동이 총선 때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비박 무소속 연대가 힘을 얻으면서 다자 구도가 현실화되지 않는 이상 지지층 분열 양상은 없으리라는 전망이다. 실제로 공천 파동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호남 회복’에 사활 걸고 나선 더민주의 전략

공천 파동을 겪으며 더민주의 총선 전략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났다. '중도 공략'과 ‘호남 회복’이다. 정청래 의원을 컷오프시킴으로써 강경파 색깔을 탈색했고, 사실이야 어쨌든 친노 세력의 좌장으로 불리는 이해찬 의원을 공천 배제함으로써 호남 유권자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안철수·천정배 공동대표는 물론 김한길 전 선대위원장의 지역구에도 더민주 후보를 공천했다. 국민의당과의 연대 가능성을 일축하고, ‘전면전’을 벌인다는 태세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심상정 정의당 대표(위)가 제안한 야권전략협의체 논의는 ‘김종인 더민주 체제’에서 정지됐다.

 

3월16일 관훈토론에 참석한 김종인 대표는 “총선 목표인 107석에 미달하면 당을 떠나겠다”라고 말했다. 총선 목표에 대한 자신감을 공개리에 드러낸 자리였다. 실제로 더민주 핵심 당직자는 “수도권에서 국민의당 지지율이 정의당보다 뒤처지면서 107석 이상 가능하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왔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국민의당이다. 총선을 한 달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까지 야권 연대를 두고 내분에 휩싸이면서 공천 과정 자체가 뉴스가 되지 못했다. 당선 안정권이 4~5번으로 예측되는 비례대표 공천에 100명 넘는 인사가 몰렸다는 것이 주목받은 뉴스였다.

국민의당은 더민주에서 공천 탈락한 정호준 의원과 부좌현 의원이 합류하면서 원내교섭단체가 된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안철수 대표가 천정배·김한길 등 지도부의 야권 연대 요구를 거절하면서 당이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다고 국민의당 관계자는 말했다. 특히 그동안 더민주 경선에서 번번이 탈락했다가 국민의당 공천을 받아 본선에 진출하게 된 수도권 출마자들의 경우 져도 좋으니 끝까지 가보자는 분위기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의당은 애가 탄다. 김종인 더민주 대표가 정의당과의 연대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야권 연대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문재인 대표 시절에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제안한 야권전략협의체 건설 논의도 김종인 대표 체제에서 정지됐다. 뚜렷한 중도 노선을 택한 김종인 지도부로서는 앞으로도 진보 정당과 연대할 뜻이 없어 보인다. 3월23일 더민주는 심상정 대표, 정진후 원내대표 등 정의당 지도부가 출마한 지역에 후보를 내기로 했다. 중앙당 차원의 야권연대 가능성이 더욱 옅어진 셈이다.

정의당으로서는 김종인 체제에 반발해 정의당 지지로 옮긴 더민주 지지층을 어떻게 붙잡아두느냐가 우선 숙제다. 3월18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정의당 지지율은 국민의당(8%)에 이어 7%를 기록했다. 지난해 심상정 대표 선출 직후에 이어 두 번째로 7% 지지율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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