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걸고 묻는다 후쿠시마의 비극을
  • 도쿄∙이령경 편집위원
  • 호수 444
  • 승인 2016.03.23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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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야 도쿄전력에 핵발전소 폭발 사고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됐다. 앞장서 고소인단을 모집한 무토 씨를 비롯해 고소인단에 참여한 시민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참사를 둘러싼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 가능성이 생겼다.

3·11 동일본 대지진 발생 보름 뒤인 2011년 3월26일, 무토 루이코(武藤類子·62) 씨는 동료들과 함께 전국 10개 지역에서 동시 기자회견을 열었다. 아이들과 임산부의 조속한 피난, 피난구역 확대, 적확한 정보 제공, 신속한 물자 지원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발전기 10기를 모두 폐로하라고 강력히 촉구했다.

무토 씨는 동일본 대지진 1년 전인 2010년부터 이미 ‘폐로 액션 후쿠시마 원전 40년’ 운동을 준비해왔다. 1971년 3월26일 상업 운전을 시작해 설계 수명 40년을 맞는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 1호기를 폐로하고 지역의 미래를 그려보자는 운동이었다. 2011년 3월11일, 핵발전소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기자회견은 참담하고 절박했다.

후쿠시마 시에서 태어난 무토 씨는 2003년에 20년 이상 근무한 장애인 특수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아버지의 고향 다무라(田村) 시에 터를 잡아 찻집을 열었다. 뒷산에서 직접 딴 약초, 산나물, 열매들 그리고 텃밭에서 키운 채소로 차와 먹을거리를 만들어 먹기도 하고 팔기도 했다. 난방은 장작으로 했다. 하지만 약 45㎞ 떨어진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고로 그녀의 터전은 방사성 물질에 오염되었다. “진작 운동을 시작해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1호기라도 폐로시켰으면 얼마나 좋았겠나”라며 무토 씨는 자책하고 안타까워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무토 루이코 제공</font></div>2014년 6월 도쿄 검찰심사회 앞에서 무토 루이코 씨(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와 고소인단이 도쿄전력 전 경영진 3인의 기소를 촉구하고 있다.

기자회견 1년 뒤, 무토 씨는 후쿠시마 현민 1323명과 함께 ‘후쿠시마 원전 고소인단’을 결성했다. 2011년 6월11일, 고소인단은 도쿄전력 전 경영진 3명 등을 후쿠시마 지방검찰청에 고소했다. 무토 씨는 “생전 처음 형사고소라는 걸 했다. 처음에는 무서웠다. 누군가의 죄를 묻는 것은 자신의 삶도 돌아봐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1986년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나던 해, 무토 씨의 언니가 백혈병에 걸렸다. 이 를 계기로 그녀는 핵발전소와 피폭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공부를 통해 핵발전소와 관련된 차별과 희생의 구조를 알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핵발전소 반대 운동에 참가했다. 이 과정에서 3·11 피해자가 됐다. 무토 씨는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은 이 폭발 사고의 원인과 책임자를 조사하고 밝혀 책임을 묻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으면 진실을 밝힐 수 없으며, 피해자 구제는 물론 재발 방지도 힘들다.

처음 고소인단을 모집할 때는 즉각 많은 이들이 참여해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지금까지 그 지역에 살면서 직간접으로 혜택을 받아온 거대 기업 도쿄전력을 고소까지 할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토 씨는 “후쿠시마 사람들이 그렇게나 정신적·경제적으로 핵발전소에 묶여 있었던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설명회를 열어 고소인단을 모았다. 1차 모집의 목표였던 1000명을 훨씬 넘는 사람들이 고소인으로 나섰다. 무토 씨는 전국 200여 곳에서 강연을 했다. 고소인단 모두의 노력 덕분에 2012년 11월15일에는 2차로 47개 도·부·현 1만3262명의 고소·고발장을 후쿠시마 지검에 제출할 수 있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무토 루이코 제공</font></div>무토 씨(왼쪽)는 도쿄전력 전 경영진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굴하지 않고 기자회견과 검찰심사회를 통해 계속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2013년 9월, 검찰은 피고소인 전원을 불기소 처분했다. 고소인단은 도쿄 검찰심사회에 이의를 제기했다. 검찰심사회는 일반 시민 중 검찰심사원으로 선정된 11명이 검찰의 불기소 처분이 타당한지 여부를 심사하는 제도다. 2014년 7월, 검찰심사회는 도쿄전력 전 경영진 3명에 대한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는 기소에 상응한다고 의결했다.

그러나 2015년 1월, 검찰이 또다시 ‘혐의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6개월 뒤, 검찰심사회는 또다시 기소를 결의했다. 검찰심사회가 두 차례에 걸쳐 기소 결의를 함에 따라, 2016년 2월29일 마침내 도쿄전력 전 경영진 3명은 강제 기소를 당했다. 5년이 지나서야 시민의 힘으로 법정에서 3·11 사고의 형사책임을 묻게 된 것이다.

도쿄전력은 정말 쓰나미를 예상하지 못했나

이번 기소는 ‘역사적인 일’로 평가된다. 법정에서 핵발전소 폭발 사고의 형사 책임을 묻는 것 자체가 처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 강제 기소 8건 중 유죄 확정은 2건뿐이었다. 피의자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 정리만 해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무토 씨는 승소를 장담할 수는 없으나 이미 얻은 성과가 크다고 말했다. 먼저 고소인들이 진술서 작성과 증언대회를 통해 자신의 상처와 마주하게 되었다. 들어줄 사람도 없고 떠올리기도 싫은 상처이지만, 피해자들은 고소운동을 통해 다음을 향해 한 발 내디딘 것이다.

또한 검찰심사회의 강제 기소 의결서를 통해서 정부 사고조사위원회가 인정한 사실이나 검찰청이 공표한 사실과 전혀 다른 진상이 밝혀졌다. 피의자 3명은 도쿄전력이 거대 쓰나미를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검찰심사회는 이들이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에 높이 15.7m의 쓰나미가 닥칠 수 있다는 예측 결과를 받고 대책을 세우고 있던 2008년 3월에 방침을 바꿔 사고를 키운 장본인이라는 것을 밝혔다. 고소인단과 변호사 그리고 국회 사고조사위원회의 협력조사원이었던 소에다 다카시(添田孝史) 씨 등은 검찰과 정부 조사위원회가 이 사실을 알고도 은폐하려 했다고 본다. 앞으로 열릴 재판에서 피고인 3명의 진술, 당시 도쿄전력 담당자, 정부 사고조사위원회의 관계자와 학자들의 법정 증언, 도쿄전력의 내부 자료가 공개되면 사고의 배경을 둘러싼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 가능성이 크다.

현재 후쿠시마 지역 18세 이하 청소년 166명이 갑상샘암 환자로 확인되었다(의심 환자 포함). 지난 1월22일, 세계 60개국의 연구자들로 구성된 국제환경역학회는 일본 정부와 후쿠시마 현에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와 어린이 갑상샘암 간의 관계를 밝혀내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와 후쿠시마 현은 그러한 인과관계가 확인된 바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우려가 있는데도 환경성과 후쿠시마 현은 ‘환경창조센터’를 설립해 청소년을 대상으로 ‘방사능을 무서워할 필요는 없다’는 내용의 교육과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사고 수습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점, 방사선량이 줄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도 위험한 곳이 많다는 점, 오염수나 폐기물 처리에 관한 문제점 등을 일본 정부는 제대로 알리려 하지 않는다.

무토 씨는 “심지어 ‘NPO 법인 해피로드 네트워크 후쿠시마·어린이·미래 프로젝트’ 같은 단체도 있다”고 분개했다. 이 단체는 2015년 10월 재해 지역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국도 6호선 청소에 후쿠시마 현 내 중·고등학생을 동원해 항의를 받았다. 물론 자원봉사라는 명목이었지만, 쓰레기를 줍는 루트의 방사선량 측정치를 공표하지 않아 참가 여부를 판단할 자료가 부족한 데다 피폭 방호조치가 불충분했던 것이다. 해피로드의 대표 니시모토 유미코(西本由美子·63) 씨는 아베 정권의 절대 지지 기반인 일본회의가 만든 ‘헌법 개정을 실현하는 1000만인 네트워크’ 발기인 중 한 명이다.

아베 정권은 여러 우려를 무릅쓰고 핵발전소 4기를 재가동했다. 이 중 2기는 지난 2월29일과 3월10일 안전 문제로 다시 가동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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