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메신저 사업이 에어컨 장사라면 한국은 남극이다. 카카오톡이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해서다. 그런데 IT기업도 아닌 은행이 메신저 사업에서 꽤 성과를 거두고 있다. 우리은행이 출시한 모바일 메신저 ‘위비톡’에는 출시 두 달여 만에 80만명이 가입했다.

위비톡은 개량된 기능을 내세운다. 메시지를 회수하거나 그룹 대화방에서 특정 사용자에게 귓속말을 보내는 등 카톡에 없는 기능이 있다. 여러 기기에 설치할 수 있다는 것도 차별점이다. 카카오톡은 한 계정으로 모바일 기기 1대에서만 이용할 수 있다. 홍보도 적극적으로 했다. 2월부터 ‘국민 MC’ 유재석을 내세운 TV 광고를 황금시간대에 내보냈다. 우리은행이 TV에서 광고를 한 것은 5년 만이다.

하지만 메신저 이용자들은 우수한 기능이나 유명한 광고 모델에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모바일 메신저는 특수한 상품이다. 메신저를 선택하는 절대 기준은 ‘사용하는 사람의 수’다. 많이 쓰는 제품에 사람이 더 들고, 적게 쓰는 메신저는 사람이 준다. 미국 경제학자 하비 라이벤스타인은 이를 ‘네트워크 효과’라고 불렀다. 카카오톡은 네트워크 효과로 독점적 지위를 강화시켜왔다. 2014년 검경의 사찰 논란으로 신뢰에 큰 흠집이 난 이후에도 카카오톡은 건재했다. ‘사이버 망명’을 선언한 이용자들 대다수가 머지않아 다시 카카오톡으로 돌아왔다. 2015년 4분기 카카오톡 실사용 인구는 4006만명으로, 사실상 스마트폰 이용자 전부다.

ⓒ시사IN 조남진위비톡을 홍보하기 위해 서울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에 설치된 캐릭터 ‘위비’.

카카오톡이 점령한 ‘남극’에서 위비톡이 판로를 확대한 숨은 비결은 따로 있었다. 우리은행 직원들의 ‘영업’이다. 다른 메신저들과 달리, 위비톡은 처음 설치할 때 ‘추천인 행번’을 쓰는 칸이 있다. 행번은 은행에서 직원에게 발급하는 사원번호다. 위비톡 관리자인 우리은행은 행번을 통해 ‘누가 누구를 가입시켰는지’ 알 수 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위비톡을 검색하면 ‘추천인’이 연관 검색어로 붙는다. 관련 게시물 대부분이 “위비톡에 가입하고 추천인으로 이 행번을 적어달라”는 내용이다.

우리은행에서 일하는 직원 A씨는 “은행에서 위비톡 가입 실적을 매일 온라인에 고시했다”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가까운 지인들과 고객 몇 분에게만 권유했다. 전 지점의 위비톡 가입 실적이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압박을 받았다. 며칠 뒤부터 ‘인당 100명씩 가입’으로 일괄 지시가 내려왔다.”

A씨에 따르면 실적 게시는 직원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계속됐다. 3월1일 우리은행 광양포스코지점에서 일하던 박 아무개 계장이 단합대회 중 쓰러져 숨졌다. A씨는 “동료들은 ‘과로사 아니겠나’라고 추측했다. 이후 프로모션은 종료됐다”고 말했다.

“위비톡 데이터베이스로 추가 영업할 계획”

위비톡은 지난해 5월 우리은행에서 출시한 ‘위비뱅크’와 연동돼 있다. 위비뱅크는 모바일에서 은행 업무 대부분을 처리할 수 있는 플랫폼인데, 간판 서비스는 사실상 소액 대출이다. 은행은 위비톡으로 확보한 개인 연락망을 통해, 소액 대출을 비롯한 금융상품을 ‘추가 영업’할 수 있다. 메신저로서는 카카오톡을 넘지 못하더라도, ‘미끼 상품’으로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

우리은행 홍보팀 관계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위비톡 데이터베이스를 토대로 추가 영업을 할 계획인 것은 맞다. 그러나 본점에서 직원들의 위비톡 가입 실적을 체크하거나 할당량을 지정한 적은 없다”라고 말했다. 박 아무개 계장의 과로사 여부에 대해서는 “일부에서 하는 이야기일 뿐이다. ‘일이 많아서 죽겠다’고 말하는 것과 실제 ‘과로사’는 전혀 다르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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