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의장대·카투사·공군·해군·공병대·포병·기무사·보병·통신병·취사병·의무반·전경·의경…. 아들과 제자들을 통해 경험해본 군부대들이다. 열다섯, 열여섯 살이던 소년들이 앳된 얼굴로 중학교를 졸업하고 4~5년이 지난 후 군 입대를 앞두거나 첫 휴가를 맞아 찾아오는 일이 종종 있다.

벌써 20년도 더 된 일이긴 하지만 공병대에 가서 열심히, 그야말로 ‘삽질’을 하다가 쉬는 시간 한 장의 엽서를 적어 보낸 제자가 있었다. 역사학과 학생이라서 만날 유적지를 발굴하느라 삽질을 했는데 부대도 공병대에 오게 됐다고 농담을 했지만, 그 고단함이 엽서에 묻어나 마음이 짠했다. 전경에 차출되었던 제자 하나는 마침 그가 복무할 때가 부안 핵폐기장 반대 투쟁이 맹렬하던 해였는데, 주민들과 대치할 때 제일 무서웠던 게 ‘새우젓 폭탄’이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그는 웃으면서 이야기했지만 결코 웃을 수만은 없는 풍경들이었다.

ⓒ박해성 그림

전방 부대에 배치받고 첫 휴가를 나왔다가 휴가 마지막 날 귀대하기 직전 학교에 들른 제자가 있었다. 전방 생활에서 가장 힘든 건 그곳이 너무 춥다는 점이라고 했다. 그 외에는 견딜 만하다던 그 아이가 귀대하자마자 연평도 포격 사건이 터졌다. 녀석 걱정을 하는 내게 또 다른 제자는 ‘외출금지령 내리기 직전에 휴가 나온 녀석이 오히려 행운아’라며 걱정 말라고 했지만, 나는 귀대한 아들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하셨을 그의 어머니 마음이 짚여 하루 종일 우울했다. 길 가다 휴가 나온 군인을 보면 요즈음 군에 가 있는 제자들 생각이 나고 뉴스에서 군부대 관련 사고 소식이 들리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윤 일병, 임 병장 사건이 남의 일 같지 않아 얼굴도 모르는 그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우리는 모두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렇게 젊은 아이들을 볼모로 마음을 졸이고 살아야 하나 싶다.

제자의 그 대답이 참으로 고마웠다

“괴롭히는 선임은 없느냐, 요즘 군대는 매는 안 맞지?” 하는 나의 질문에 솔직하게 ‘몹시도 갈구던’ 선임 이야기를 하던 제자가 있었다. 온순했던 아이인데 그 선임 이야기를 할 때만은 언성을 높이며 울분 어린 목소리로 ‘참 이상한 사람’이라고 했다. 말년에 휴가 나왔을 때에는 “제가 당한 거 어딘가 풀고 싶은 마음이 저도 모르게 듭니다. 그 XX는 전역했지만 제가 받은 상처는 어디다 풀어야 할지…. 그래서 다들 후임들이 들어오면 똑같이 괴롭히고 갈구나 봅니다.”

그래서 ‘너는 후임들에게 어찌 했는가’ 물었다. “저도 똑같이 해주고 싶었어요. 정말로. 그렇게라도 제가 받은 스트레스를 풀고 싶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애들한테 그러면 그애들도 똑같이 원한을 품고 뒤에 오는 애들한테 그러겠지요? 저는 운이 없어 미친놈 만났다 생각하고요, 미친놈한테 당하는 건 저희에서 끝내야지요.”

군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결코 개인 인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군에 가지 않았으면 받지 않았을 상처, 군에 가지 않았으면 죽지 않았을 아이들, 군에 가지 않았으면 자기 영혼을 파괴시켜가며 남을 죽이고 때리고 밟지 않았을 청년들이 대다수다. 그러므로 그런 비극을 막을 시스템이 필요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군대란 원래 그런 조직’이라면서 규율과 질서 밑에 인간성을 깔아놓아서도 안 된다. 구조가 고쳐지고 달라지기 전까지, 자기가 물려받은 원한의 무게를 ‘여기서 대물림은 없다’며 과감히 끊어버린 나의 제자가 참으로 고맙다.

아주 무서운 말이 있다. ‘맞고 큰 아이가 자라서 때리는 아버지가 된다’는 말. 배운 게 폭력밖에 없었다는 것이 개인의 비극일 수는 있다. 그렇다고 그걸 핑계 삼아 ‘나도 맞고 자랐기 때문에 내 아이를 때렸다’ ‘나도 선임들에게 맞았으니 후임들을 그렇게 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폭력이 대물림되지 않으려면 강제로 폭력을 막는 방법과 자기 대에서 스스로 폭력을 멈추는 방법밖에는 없다. 그 가장 용감한 첫 번째 선언은 바로 내가 해야 한다. ‘나는 맞고 컸지만, 나는 너희를 때리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폭력의 대물림은 없다. 여기서 끝이다’라는 선언. 군대에서도,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자명 안정선 (경희중학교 교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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