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미래의 서점은 이럴 거야
  •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 호수 443
  • 승인 2016.04.01 22: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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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애틀 출장길에 오프라인 서점 아마존북스에 들렀다. 종이책의 종말을 재촉해온 아마존이 낸 오프라인 서점이 궁금했다.

미국 시애틀 출장길에 벼르던 곳을 방문했다. 세계적인 온라인 유통 공룡 아마존이 지난해 11월 처음으로 개설한 오프라인 서점 ‘아마존북스’다. 창사 20년 동안 고집스럽게 온라인으로만 책을 팔아온 아마존. 심지어 킨들이라는 전자책 리더를 내서 종이책의 종말을 재촉해오던 이 회사가 도대체 무슨 꿍꿍이로 오프라인 서점을 냈을까 궁금했다. 화창한 날씨에 방문한 아마존북스는 생각보다 작고 아담하고 예쁜 서점이었다. 하지만 일반 서점과는 몇 가지 다른 점이 눈에 띄었다.

첫 번째, 잡지를 제외한 거의 모든 책이 데이터에 의거해 진열되어 있다. 책마다 아마존 고객 평점이 붙어 있는데 모두 4점 이상(5점 만점)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리뷰가 10개 이하인 경우는 별점을 표시하지 않았으나 아마존에서 검색해보니 그런 경우에도 모두 4점 이상이었다. 즉 아마존북스에 진열되고자 하는 책은 최소한 4점 이상의 평점을 받아야 한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사진가</font></div>인터넷 서점 아마존닷컴이 2015년 11월 시애틀에 개설한 첫 오프라인 서점 ‘아마존북스’.

‘아마존 데이터’가 살아 숨 쉬는 오프라인 서점

서점 곳곳에 아마존 데이터가 살아 숨 쉰다. 들어가자마자 정면에 있는 코너에는 4.8점 이상 높은 평점을 받은 책들이 쌓여 있다. 새로운 소설 코너에는 “고객 평점, 선주문, 판매량 등의 데이터에 의거해 고른 책”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또 한쪽 코너에는 ‘당신이 <제로 투 원>을 좋아한다면’이라는 문구와 함께 피터 틸의 <제로 투 원>과 비슷한 성향의 창업 관련 서적이 소개되어 있다. 아마존 웹사이트의 책 진열을 그대로 오프라인으로 옮겨온 모양새다.

두 번째, 모든 책이 표지가 정면으로 보이게 비스듬히 눕혀서 진열되어 있다. 그리고 책마다 간단한 설명글과 고객 평점을 담은 작은 안내문을 붙여놓았다. 여기에는 책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나 독자 리뷰를 짧게 발췌해서 소개하고 있다. 고객이 책을 들춰보지 않아도 내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책을 세로로 촘촘히 꽂아놓지 않아서 같은 면적의 서점에 비해 소장 도서가 많지 않을 것 같았다. 서점을 방문한 고객에게 최대한 많은 책을 노출시키겠다는 전략을 읽을 수 있었다.

세 번째, 아마존북스의 책에는 가격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물론 출판사에서 붙인 정가는 붙어 있다. 하지만 도서정가제가 시행되지 않는 미국에서는 서점마다 그 책의 판매가격을 다시 붙이는 것이 관례다. 그러나 아마존북스의 책에는 그런 가격 표시가 없고 서점 곳곳에 “책의 가격은 아마존닷컴의 가격과 같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가격을 확인하고 싶으면 서점 곳곳에 설치된 바 스캐너에 책을 대거나 스마트폰의 아마존 앱을 사용해서 바로 검색해보라고 한다. 서점 내에서는 무료 와이파이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

네 번째, 아마존북스는 현금을 받지 않는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신용카드로만 책을 살 수 있다. 아마존닷컴에서 결제한 이력이 있는 카드로 책값을 지불하니 자동으로 아마존 회원정보와 연동되어 결제가 됐다. 물론 아마존 회원이 아니어도 책을 살 수 있다.

나는 아마존북스에서 긍정적인 인상을 받았다. 좋은 책들이 군더더기 없이 빽빽이 진열되어 있다는 느낌이었다. 대형 서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출판사가 판촉하는 책이 가득한 서가나 베스트셀러 랭킹이 아마존북스에는 없었다. 책마다 정성 들여 작성한 듯한 안내문도 인상적이었다. 다만 너무 무미건조하게 데이터에 의존해서 책을 큐레이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가 들어 점원에게 “누가 책을 고르는 것이냐”라고 물어보니 “아마존 데이터를 활용해 ‘사람’이 진열할 책을 골라낸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데이터가 지배하는 미래의 서점을 본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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