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북동부에 위치한 노원병이 또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국민의당 공동대표인 안철수 의원에 맞서 이준석·이동학 등 여당과 제1야당의 젊은 정치인들이 도전장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진보신당 노회찬 상임대표는 노원병에 출마해 한나라당 홍정욱 후보를 상대로 박빙(2.05%포인트)의 차이로 분루를 삼켰다. 이명박 대통령 압승 직후 치러진 데다 상계동 달동네에 뉴타운 광풍까지 분 선거였음에도 진보 정당 후보로서 아슬아슬한 승부를 연출했다.

노회찬 후보는 2007년 민주노동당의 대선 후보 경선에서 가장 높은 대중적 지지도를 보여준 인물이었다. 당내 조직력이 취약해 당원투표로 승부가 갈리는 최종 대선 후보 자격은 얻지 못했지만 TV토론 등에서 보여준 그의 실력이 민주·진보 지지층의 결집을 불러왔다.

당시 통합민주당 김성환(현 노원구청장) 후보는 야당 거물인 임채정 전 국회의장의 사람이었다. 서울시의원을 거쳐 참여정부 청와대 정책조정비서관으로도 활동했다. 출신지 또한 노원병에서 강세인 전남 고흥이다. 그랬던 그가 통합민주당의 취약지인 강남·서초·송파·강동에 출마한 야당 후보 9명의 평균득표율(28.5%)의 절반 정도밖에 얻지 못한 것은 당시 진보신당에서 대선주자급이 출마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18대 총선에서는 대선주자급 인물이 출마해 선전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2007년 대선에서 민주당은 이인제 후보를 출전시켰다. 민주당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대통합민주신당으로 합당하고 난 후 잔류한 이들이 모인 군소 정당이었지만 그는 ‘경선’에 의해 정식 선출된 대선 후보였다. 비록 17대 대선에서는 1%(16만 표) 득표에 그치고 말았지만 이듬해 18대 총선에서 이인제 후보는 고향인 논산·계룡·금산 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통합민주당 후보는 여성 장군 출신 양승숙 후보, 한나라당은 MB계 김영갑 변호사였으나 그는 약 7%포인트 차이로 여유 있는 승리를 낚았다. 특히 자유선진당이 대전·충남에서 16석 중 13석을 싹쓸이하는 가운데 무소속 당선자는 이인제 후보 단 한 명이었다.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도 2007년 17대 대선에서 5.8% 득표율로 참패했다. 그러나 유한킴벌리 대표 출신인 그는 ‘사람중심 진짜경제’를 정책 슬로건으로 내걸고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18대 총선에서 창조한국당은 3.8% 득표율로 더욱 처참한 패배를 당했지만, 은평을에서 문국현 후보(52%)는 MB 정권의 2인자인 이재오 의원(40.8%)을 가볍게 눌렀다. 통합민주당 송미화 후보를 5.8%로 밀어낸 성과였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노회찬(위)·이인제·문국현·이부영 등(맨 왼쪽부터) 대선이나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던 거물 정치인은 총선 때 해당 지역구에서 꽤 높은 득표력을 보였다.

군소 정당 출신 대선주자의 승리 사례는 이 밖에도 많다. 1996년 15대 총선 때 김대중 총재가 국민회의를 창당하고 나서면서 야권은 힘겨운 싸움을 벌였다. 특히 지역 기반이 없는 통합민주당에게는 매우 불리한 선거 환경이었다. 3선 중진인 이철, 노태우 비자금 폭로의 주역 박계동 후보도 떨어졌다. 그러나 서울 강동갑에서 이부영 후보는 39.9%의 득표율로 국민회의 김형래 전 의원(26.4%), 신한국당 이춘식 후보(23.2%) 등을 상대로 여유 있게 승리했다.

이부영 후보는 1992년 14대 총선 때 등원한 초선 의원이었다. 당내 기반이 취약한 재야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1992년과 1993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잇따라 최고위원에 선출되는 등 당내 소장개혁파의 기수로 우뚝 섰다. 1992년 14대 대선에서 패배한 DJ가 정계를 은퇴한 이후 이부영은 항상 차세대 지도자군에서 맨 앞에 있었다. 이러한 ‘차세대 유망주’라는 기대치가 이부영의 15대 총선 압승을 이끈 것이다. 당시 서울 지역 통합민주당 후보들의 평균 득표율이 13.5%였으니 그의 경쟁력은 짐작되고도 남는다.

다시 오는 4·13 총선에서 안철수 후보가 출마하는 서울 노원병을 보자. 2013년 4·24 보궐선거 당시 안철수 후보는 60.5%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금배지를 달았다. 상대방은 경찰청장과 코레일 사장을 거친 허준영 후보였으나 그의 득표율은 안 후보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거물 후보가 지역에 출마할 때 유권자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대통령이나 서울시장 등 큰 인물을 배출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부푼다. 다른 하나는 거물 정치인의 등장으로 지역 발전을 기대하게 된다는 점이다.

노원병 선거구가 신설된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임채정 의원이 당선했다. 그는 14~17대 내리 4선을 기록하며 여당 정책위 의장과 당 대표, 그리고 국회의장까지 지냈다. 그동안 그는 적지 않은 노원구 숙원사업을 해결했다. 교통난이 심각한 동북부 지역 주민들을 위해 동부간선도로 확장공사 설계를 시작한 것이 대표적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노회찬·이인제·문국현·이부영(위) 등(맨 왼쪽부터) 대선이나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던 거물 정치인은 총선 때 해당 지역구에서 꽤 높은 득표력을 보였다.

대선주자의 위상이 총선 결과에도 영향 미쳐

1980년대 도심 재개발에 밀려난 철거민들의 정착촌이었던 노원구는 대표적인 베드타운이다. 구민의 대부분이 원거리 출퇴근을 한다. 현재 이 지역의 최대 현안은 지하철 4호선 창동 지하철 차량기지 이전 문제다. 창동 기지가 2019년까지 남양주로 이전하게 되면서, 그 일대에 6만 평 이상의 땅이 새로 생긴다. 노원구청과 도봉구청은 창동·상계를 신경제 중심지로 조성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내놓았다. 사업비만 수천억원대다.

안철수 의원은 보궐선거로 뒤늦게 등원했음에도 상계8단지 재건축 승인계획 결정, 각종 문화복지시설 국비 확보 등 지역 숙원사업에서 일정한 성과를 냈다. 비록 국민의당 지지율이 하락세에 있지만, 향후 대규모 사업을 앞둔 노원 지역 유권자에게 안철수 대표의 경쟁력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자료〈/font〉〈/div〉노회찬·이인제(위)·문국현·이부영 등(맨 왼쪽부터) 대선이나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던 거물 정치인은 총선 때 해당 지역구에서 꽤 높은 득표력을 보였다.

새누리당은 이준석 전 비대위원이 유력하다. 서울시의원 출신으로 지역 기반이 탄탄한 이종은 전 당협위원장의 예비후보 사퇴로 본선 진출이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상계동 출신인 이준석 예비후보는 자신을 연어에 비유하며 “상계동은 유년 시절을 보낸 마음속 고향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안철수 대표를 겨냥해 연고도 없이 빈자리를 찾아온 불곰에 비유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선은 이동학 전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과 황창화 전 국회도서관장의 2파전으로 짜이는 분위기다. 새정치민주연합 전국청년위원회 부위원장 출신인 이동학 전 위원은 지난해 김상곤 혁신위에 청년대표로 참여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황창화 전 관장은 임채정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해 상계동을 기반으로 20년 이상 지역 당원들과 부대껴온 장점이 있다. 그는 참여정부에서 한명숙 총리 정무수석을 거쳐 19대 전반기 국회도서관장을 지냈다. 노원 갑·을·병 중 호남세가 가장 강한 병에서 경북 예천이 고향이라는 약점이 있다.

최근 국민의당 지지도 하락과 함께 안철수 대표의 대선주자 지지도 역시 출렁거리고 있다. 그의 당선 여부는 지역구에서의 선전보다는 민생 해법과 같은 국가 비전 제시에 있다. 대선주자로서 그의 위상이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선거 결과가 좌우될 공산이 크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노회찬·이인제·문국현(위)·이부영 등(맨 왼쪽부터) 대선이나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던 거물 정치인은 총선 때 해당 지역구에서 꽤 높은 득표력을 보였다.
기자명 최광웅 (데이터정치연구소 소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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