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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3분의 1이 놀림감이다?

소설 잡지 <악스트>와 SF 작가 듀나의 인터뷰에 SF 독자들이 불쾌감을 드러냈다. SF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반응이었다. 1인 웹진 <alt. SF>의 무기한 휴간과 장강명 소설가의 가세가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2016년 03월 10일 목요일 제4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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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가 소설가에게 질문을 던진다. 뭔가 다를 것 같다. 기대감은 독자의 몫이다. 정작 질문지를 받아든 작가의 소감은 달랐다. “전혀 다른 게 없다. 그게 문제였다. 20년 동안 다른 작가들도 많이 나왔고 독자들도 늘어났고 일반 대중의 장르 지식도 넓어졌고 나도 조금은 바뀌었는데 그동안 내가 받은 인터뷰 질문은 모두 똑같았다. (중략) 20년 동안 ‘안녕하세요. 전 듀나라는 익명으로 SF라는 걸 씁니다. SF는 이런 것인데요’를 반복해왔다. 모두가 질릴 수밖에 없다.”

1월 발행된 격월간 소설 잡지 <악스트> 제4호는 현재 서점에서 구하기 어렵다. 인쇄한 7000부가 거의 다 나갔다. 천명관, 박민규, 공지영 작가에 이어 네 번째 표지의 주인공은 듀나였다. 듀나는 작가 주나 반스(Djuna Barnes)의 이름에서 따온 필명이다. SF 작가이자 영화평론가다. 성별이나 나이, 얼굴 등을 밝히지 않고 글을 써온 지 20여 년. 인터뷰가 처음은 아니다. 이번 <악스트> 인터뷰는 유독 논란이 되었다. 편집위원인 소설가 백가흠·배수아·정용준이 묻고 듀나가 답했다. 주로 백 작가가 했던 질문이 화제의 대상이다. “나는 당신이 한 개인이 아니라 어떤 집단 내지 그룹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알지 않는가?” “결혼은 했는가?” “처음엔 신선한 일이었지만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은 식상해진 것도 사실이다.”

  <악스트> 4호 표지의 주인공은 SF 작가이자 영화평론가인 듀나였다.  
<악스트> 4호 표지의 주인공은 SF 작가이자 영화평론가인 듀나였다.

일부 SF 소설 독자들은 이들의 질문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미 상대에 대해 답을 정해놓은 듯한 질문 방식, 정체에 대해 반복되는 질문, 소설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무례함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후 1인 웹진 <alt. SF>와 출판사 은행나무 간 저작권 논쟁이 알려지며 또다시 화제가 되었다. <alt. SF>가 듀나의 인터뷰를 대거 인용해 비난하는 글을 게재하자, <악스트>를 발행하는 은행나무가 저작권법 위반을 언급하며 수정을 요구했다. 장강명 소설가도 가세했다. ‘SF 소설가 듀나’의 팬임을 밝힌 그는 질문이 무례했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alt. SF>의 인신공격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하며 ‘누군가를 비판하는 사람은 명예훼손 문제로 시달릴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SF 독자들은 왜 이토록 화가 났을까

듀나는 이런 소란을 예견한 것처럼 보인다. 잡지 인터뷰 마지막에 공개된 편집장과의 이메일에도 드러난다. 그는 ‘질문 3분의 1 이상은 딱 놀림감이다. 그냥 넘기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닥칠 재앙을 무시할 수 없을 거 같다’며 추가 질문이 없는지 묻고 있다. 어떤 점을 우려했느냐는 <시사IN>의 질문에 대해 듀나는 “일단 너무 나이브했다. (중략) ‘작가에게 요구되는 사회적·철학적 책무와 당위’ 같은 말이 들어간 질문에 어떤 진지한 대답이 가능할까?”라고 반문했다.

<악스트>와 <alt. SF> 간 저작권 논쟁은 장르문학 팬들의 분노를 샀다. 위는 트위터의 독자 반응 중 일부.
   
<악스트>와 간 저작권 논쟁은 장르문학 팬들의 분노를 샀다. 위는 트위터의 독자 반응 중 일부.

<악스트>는 표지 인터뷰 대상을 소설가로 한정한다. 이번엔 ‘순문학에서 움직여왔던 사람 외에 다른 소설가와 한번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백다흠 편집장은 “SF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어떤 사람인지를 충분히 알리는 게 1차적인 목표였다. 소설가들이 듀나라는 소설가에게 소설 외의 창작자로서 가지는 고민의 지점에 대해 얘기를 건네보자는 선한 의도였는데 나쁜 의도로 둔갑된 게 지금의 현실이다. 고민하고 반성해볼 점이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악스트> 측도 할 말은 있다. 질문을 짤 때 세 사람이 각각 역할 분담을 했다. 백가흠 작가는 작품을 제외한 ‘작가론’을, 배수아 작가는 현실·인문·정치·사회 분야를, 정용준 작가가 칼럼과 소설 외 글쓰기 부분을 담당했다. SF 소설에 대한 파트가 애초 없었다. “지난 인터뷰도 그렇고 소설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쪽으로 갔다. 소설가가 소설가에게 소설 외적인 부분에 대해 묻고 그에 대해 얘기해보자는 콘셉트를 가지고 접근했다.”

‘<악스트> 사태’는 손쉽게 순수문학과 장르문학 간 대결 구도로 해석되었다. 무기한 휴간을 결정한 <alt. SF> 역시 이번 일을 ‘한국에서 SF가 여전히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정리하기도 했다. 일부 SF 독자들은 이른바 ‘순문학’ 작가들의 질문에 왜 이토록 화가 났을까. 전홍식 SF도서관장은 듀나에 대한 태도 자체보다 SF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반응이라고 해석했다. “기존 문단에 있는 분들이 (장르문학에) 접근하는 형태나 방향성이 인터뷰에서 다 나온 거 같다. 적대적인 것과 관심은 있지만 잘 모르는 것 그 중간이다. 그에 대한 장르 팬들의 반응도 당연하다.”

한 작가에 대한 태도를 ‘SF 문학을 대하는 자세’로 동일시하는 배경에는 듀나라는 작가가 가진 독특한 위치가 있다. 전홍식 관장은 “한국 SF 작가로서는 사실상 1호다. 그 전에도 작가는 있었지만 동시대 사람들이 보고 싶은 작품을 구사하는 건 처음이었다. 1990년대 중반, SF를 처음 접하던 사람들에겐 희망이었다”라고 말했다. 김준혁 황금가지 편집장 역시 그를 SF계의 ‘소중한 존재’로 요약했다. “중요한 위치에 있다. 한국 SF의 경우 장편소설이 거의 없고 단편 위주로 발표한다. 시장 환경에서 힘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 (작품을) 내더라도 성공한 작가가 드물다. 듀나는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온 독보적인 작가다.”

출판 시장에선 SF의 고정 독자를 500~1000명으로 보고 있다. 웹소설 분야에서 잘나가는 판타지·무협 등의 장르에 비해 시장이 작지만 그만큼 독자들의 ‘프라이드’가 강하다는 특징도 있다. 그런 성향이 때로는 과격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듀나는 순수문학과 장르문학, 두 진영이 나뉜다는 관점을 비롯해 1대1의 대결 구도로 보는 시선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순문학’이 자신을 주류라고 본다면 장르문학은 비주류다. 이들의 관계는 이성애 사회와 동성애자, 남성 중심주의 사회와 여성, 백인 중심 문화와 비백인의 관계와 비슷하다. 전자는 자신의 존재와 사고방식을 당연시하지만 후자는 그게 그렇게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안다. 그렇다면 전자는 후자와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자기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넘어서기 위해 훨씬 많은 것을 공부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일이 터진다.” 전홍식 관장은 이런 식의 논쟁이 한 번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고 예견한다. “순문학의 영역은 점점 좁아질 거고 SF의 영역이 좀 더 넓어지면서 충돌할 수밖에 없다.” <악스트>는 최근 출간된 5호에서 지난 인터뷰에 대해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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