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 읽는 책으로 가장 흔한 장르는 뭘까? 물론 교과서는 빼고 말이지. 내 경험으로는 위인전이야. 그게 반세기 전 얘기니 요즘은 사정이 달라졌을 수도 있겠네. 영어나 한자 학습서일지도 모른다는 뜻이야. 그렇지만 요즘에도 초등학생들은 위인전을 많이 읽을 거라 짐작해. 선생님들이 위인전 읽기를 추천하기도 하실 거고.

위인전은 말 그대로 훌륭한 사람의 전기야. 나도 초등학생 시절에 그런 훌륭한 사람들의 전기를 꽤 읽었어. 물론 누가 훌륭한 사람이냐를 정하는 것은 그 사회의 교육 당국이지. 내 경우에는 이순신 장군, 을지문덕 장군, 세종대왕, 폴란드 출신의 프랑스 과학자 퀴리 부인, 조지 워싱턴 미국 초대 대통령, 미국의 발명가 에디슨 같은 사람들의 전기를 읽은 게 기억나. 그런데 초등학생용 위인전이라는 건 내용도 소략할 뿐 아니라 부정확한 게 많아. 일단 전기의 대상이 위인, 곧 훌륭한 사람이니까 그 사람에 대한 나쁜 얘기는 나오지 않아. 위인전의 주인공은 꼭 성직자가 아니더라도, 거의 성인에 가깝게 묘사되지.

고등학생쯤 되면 우리는 위인전을 읽는 게 아니라 평전을 읽게 되지. 평전이라는 건 말 그대로 비평적 전기야. 저자의 관점이 들어간 전기라는 뜻이야. 사실 제대로 된 전기라면 다 평전이라고 할 수 있지. 저자의 관점이 들어가지 않은 전기라는 건 불가능하니까. 그렇지만 책의 세계에서 전기와 평전이 구별되기도 해. 우리가 초등학교 때 읽는 전기는 죄다 ‘훌륭한 사람’을 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고등학생쯤 돼서 읽는 전기, 다시 말해 평전은 그 대상이 꼭 훌륭한 사람, 착한 사람들은 아니거든. 평전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대체로 ‘문제적 인물’이지. 여기서 ‘문제적’이라는 것은 좋은 뜻일 수도 있고 나쁜 뜻일 수도 있어. 아무튼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좀 별난 사람, 더 나아가 자기가 살았던 시대에 영향을 준 사람을 뜻해. 물론 사람이 역사를 만들 뿐만 아니라 역사가 사람을 만들기도 하니, 이런 문제적 인물들은 자기가 태어난 세상에 영향을 받으며, 그 세상을 바꾼 사람들이야.

ⓒ이지영 그림

20세기의 가장 문제적 인물은 누굴까? 그건 생각하기 나름이겠지. 그렇지만 그 문제적 인물들에 독일 제3제국의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와 그에 맞서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른 소련의 스탈린이 포함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거야. 이 둘은 어떤 극단적 시각에서 보면 위인, 곧 훌륭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상식적 판단에 따르면 절대 훌륭한 사람이 아니야. 그냥 문제적 인물들이지. 그것도 극히 부정적으로 문제적인 인물. 이들은 자기가 태어난 시대에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그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어. 두 사람 다 잔혹한 독재자였지. 이들이 다스렸던 독일과 소련은 일반적 의미의 독재사회가 아니었어. 흔히 전체주의 사회라고 불리는 사회였어. 그러면 보통의 독재사회와 전체주의 사회의 차이는 뭘까?

독재사회의 최고 권력자, 즉 독재자들은 자기 맘에 안 드는 정적들을 탄압하고 모든 정책을 제멋대로 정하기는 하지만, 그 공동체 구성원들의 사생활에까지 간섭하지는 않아. 예컨대 독재사회에서는 제 돈 들여서 여행도 할 수 있고, 좋아하는 사람과 연애를 하다 결혼할 수도 있고, 경제적 여건이 되면 일을 안 하고 백수로 살 수도 있어. 그렇지만 전체주의 사회에서는 그런 것이 불가능해. 전체주의 사회에서는 여행을 하려 해도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정부가 허락하지 않는 연애나 결혼은 할 수 없고, 돈이 있다고 하더라도 백수로 살 수 없어. 그 공동체 구성원의 삶을 세목까지 정부가 결정해. 그러니까 권력의 피가 모세혈관을 따라 공동체 구성원의 사생활 깊숙이까지 흐르고 있는 사회가 전체주의 사회야. 히틀러가 다스렸던 독일 제3제국이 그랬고, 스탈린이 다스렸던 소련이 그랬어. 그리고 지금은 휴전선 이북의 북한 체제가 그렇지.

20세기 한 세대 인류의 운명을 결정한 지도자들

히틀러는 우익 전체주의를 이끌었던 사람이고, 스탈린은 좌익 전체주의를 이끌었던 사람이야. 우익 전체주의는 그것의 원조인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명명한 대로 파시즘이라고 부르는 일이 흔하고, 독일의 경우는 히틀러가 이끌던 집권당(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유일한 당이었지)의 이름을 따 나치즘이라고 부르기도 해. 히틀러 파시즘이라고도 부르고. 좌익 전체주의는 볼셰비즘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지만, 아예 스탈린의 이름을 따서 스탈린주의라고 부르는 일이 더 흔해. 우익 전체주의와 좌익 전체주의는 이름만 들어서는 상극일 것 같지만, 사실은 닮은 점이 많아. 그 닮은 점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앞에서 지적했듯, 공동체 구성원의 사생활을 거의 없애버린다는 거지.

히틀러와 스탈린은 일반적 의미에서 훌륭한 사람은 아니지만, 20세기 한 세대 인류의 운명을 결정한 전체주의 지도자였으니, 그 삶을 살펴볼 만해. 두 사람의 전기는 많이 나와 있지만, 나는 이언 커쇼의 〈히틀러〉와 로버트 서비스의 〈스탈린, 강철 권력〉을 읽어보길 권해. 커쇼의 책은 이희재라는 이가 옮겼고, 서비스의 책은 윤길순이라는 사람이 옮겼어. 두 책 다 출판사 교양인에서 나왔고.

커쇼의 〈히틀러〉는 두 권으로 이뤄져 있고 서비스의 〈스탈린, 강철 권력〉은 단권이지만, 두 책 다 부피가 상당해. 세 권 다 각각 1000페이지 안팎이니까. 이렇게 두툼한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내려면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할 것 같지만, 내 경우엔 그렇지 않았어.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거야. 히틀러나 스탈린이나 성격이 워낙 문제적이었던 데다, 다시 말해 둘 다 별난 사람이었던 데다, 이 두 사람의 삶을 비평적으로 살피는 커쇼와 서비스의 글재주가 뛰어나거든. 전기라는 것이 대개 그렇듯 〈히틀러〉와 〈스탈린, 강철 권력〉도 시간의 흐름에 맞춰 기술하고 있지만, 그 서술이 입체적이야. 그리고 기존의 전기에서 잘못 기술된 부분을 풍부한 사료에 뒷받침받아 교정하고 있어.

이 책들은 히틀러와 스탈린이라는 문제적 인물의 삶만을 그리는 게 아니라, 이 두 사람이 살았던 시대를 그리고 있어. 그러니까 이 두 책은 기본적으로 평전이기는 하지만, 부분적으로는 191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의 유럽사, 더 나아가서는 세계사이기도 해. 그들이 성년으로 살던 시대는 혁명의 시대이자 전쟁의 시대였어. 핏물이 흥건히 대지를 적시던 시대였지. 혁명과 전쟁이 히틀러와 스탈린을 낳았고, 히틀러와 스탈린이 그 혁명과 전쟁을 이끌었어. 이 두 사람은 그 시기의 대지를 흥건히 적신 핏물의 가장 큰 책임자이기도 했어. 두 사람은, 때때로 치사한 밀약을 했고, 근본적으로 숙적이었으므로, 〈히틀러〉에도 스탈린의 삶이 스며들어 있고, 〈스탈린, 강철 권력〉에도 히틀러의 삶이 스며들어 있어. 이 두 책을 읽는 것은, 비슷한 시기의 세계를 서로 다른 처지에서 바라보는 것이기도 해. 아, 모든 평전이 그렇듯, 이 두 책에는 너무 많은 인명이 등장해. 그 시기의 역사에 대한 지식이 넉넉하지 못한 독자들은 이 고유명사들 때문에 읽기가 조금 짜증스러울 수도 있어. 그러나 이 두 책은 그 고유명사들이라는 장애물을 건너면서 읽어볼 만해.

혹시 이 두 책을 읽고 나서 파시즘과 공산주의에 대한 흥미가 생겼다면, 두 책을 더 읽어봐도 좋지. 하나는 로버트 팩스턴의 〈파시즘〉이고, 또 하나는 스탈린 평전을 쓴 로버트 서비스의 〈코뮤니스트〉야. 이 책들 역시 교양인에서 나왔어. 팩스턴의 책은 다소 이론적이지만, 명민한 고등학생이라면 소화할 수 있는 책이야. 서비스의 책은 실천적 공산주의의 통사라고 할 수 있어. 히틀러와 스탈린, 파시즘과 공산주의는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났지. 그렇지만, 이 두 악은 자본주의의 악을 대체하기 위해 언제라도 되돌아올 채비를 하고 있어.

기자명 고종석 (작가·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