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는 대한민국 정치 1번지다. 청와대가 있고 국무총리 공관과 정부 제1청사가 있다. 서울 종로구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이들은 거물로 성장했다. 윤보선·이명박·노무현 의원은 대통령에 선출됐다. 장면 의원은 민주당 정부의 실세 총리가 되었고, 유진오 의원은 제1야당 총재가 되었다. 정치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이들이 종로로 몰리는 이유다.

김무성 대표에 이어 새누리당 내 대선주자 지지도 2위를 달리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지난해 12월 종로구 출마를 선언하면서 “지난 5년간 실시된 주요 선거에서 (여권이) 4연패했다. 선거의 유불리만 따진다면 나에게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라고 말했다. 오 전 시장의 말대로 2010년 지방선거,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2012년 총선, 그리고 2014년 지방선거까지 여권이 연거푸 패배했다. 종로는 과연 그의 말대로 ‘여권의 험지’일까?

2010년 6회 지방선거 당시 종로구의 정당별 광역의원 비례대표 득표율을 살펴보면 한나라당 41.4%, 민주당 41%, 자유선진당 3.3%, 민주노동당 3.9%, 국민참여당 4.9% 등으로 야권의 파이(49.8%)가 더 컸다. 당시 야권연대(민주당-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의 위력은 종로구청장 선거에서도 나타나는데, 민주당 김영종 후보는 첫 출전임에도 서울시의회 부의장 출신인 한나라당 후보를 5.5%포인트 차이로 여유 있게 따돌렸다. 이는 1998년 2회 지방선거 이후 12년 만에 야권이 구청장을 탈환한 것이었다.

ⓒ연합뉴스2월4일 ‘설맞이 한복 입고 북촌나들이’에 참가한 김영종 종로구청장, 박진 전 의원, 정세균 의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왼쪽부터).

민주당은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전북에서 이동한 정세균 전 민주당 대표를 내보냈다. 새누리당 역시 대구를 떠난 홍사덕 비상대책위원이 나섰지만, 52.3% 대 45.9%로 정세균 후보가 낙승을 거두었다. 정당 비례대표 투표에서도 야권연합은 48.8%(민주당 38.2%+통합진보당 10.6%)로 새누리당(42.3%)을 멀찍이 앞섰다.

17대 총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정당 비례대표 득표율을 보면 한나라당 38.5%, 열린우리당 36.0%, 민주노동당 11.8%, 새천년민주당 9.6% 등으로 종로구는 야권에 ‘유리한 운동장’이었다. 그에 앞서 1998년 7월21일 국회의원 재선거 때는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한나라당 정인봉 후보의 1대1 구도였지만, 노 후보가 10%포인트 넘게 승리했다.

그러나 과거 13대부터 18대까지, 총선에서만은 야권이 단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다. 이는 ‘선거구도’와 ‘인물’ 탓이 컸다. 1988년 13대는 민정당 이종찬 후보가 약 38% 득표로 통일민주당 김명윤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평민당이 후보를 내지 않은 가운데 공화당 정인봉 후보가 야권 표를 나눠 가진 게 야권의 가장 큰 패인이었다.

3당 합당 이후 치러진 1992년 14대 총선에서는 구도가 달라졌다. 민자당 이종찬 후보는 35.5% 득표에 그쳤다. 자기 당 평균 득표율(20.3%)보다 높은 표를 받은 국민당 이내흔 후보(24.4%)가 표를 많이 잠식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무소속 정인봉 후보가 역시나 야당 표를 13%나 잠식하는 바람에 민주당 김경재 후보는 패했다. 1996년 15대 역시 다자 구도 속에서 제3당 요인이 승패를 갈랐다. 통합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자당 후보들의 평균 득표율(13.5%)보다 높은 표를 받아 선전했으나 자민련 김을동 후보는 자당 평균(11.7%)의 절반 정도에 그치는 6.7%밖에 득표하지 못함으로써 신한국당 표 잠식에 실패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이명박 후보의 당선으로 귀결됐다.

2000년 16대 역시 2강1약 구도의 선거전이었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영입한 이종찬 후보가 새천년민주당 간판으로 나섰지만, 한나라당 정인봉 후보가 승리했다. 자민련 김경환 후보가 4.1%밖에 득표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우상호(서대문갑)·김윤태(마포갑)·이인영(구로갑) 등 학생회장 출신 3인방이 2%포인트 내외 차이로 모두 낙선하는데, 자민련 후보가 2%대의 낮은 득표를 하거나 아예 없는 지역(구로갑)이었다.

새누리당의 치열한 예선 후유증도 변수

2004년 17대는 2강2중 구도였다. 열린우리당은 비례대표 재선 출신 김홍신 후보를 투입했으나 588표 차로 한나라당 박진 후보에게 석패했다. 역대 총선 최저 표 차이 패배였다. 새천년민주당 정흥진 후보는 자당 후보들의 평균(12.5%)보다 낮은 11% 득표에 머물렀다. 특히 그는 서울시의원과 종로구청장을 역임한 호남 출신 인사였으니 김홍신 후보에게는 더욱 불리했다.

2008년 18대는 뉴타운 광풍 속에서 험지 출마를 강행한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박진 후보와 맞섰지만 석패했다. 정인봉 자유선진당후보가 한나라당 표를 4.7%밖에 잠식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선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종로구 선거를 짧게 결론 내면 이렇다. 야권 연대가 이뤄지면 조심스럽게 야당의 우세를 점칠 수 있고, 다자 구도일 때는 제3, 제4당 후보의 득표력을 따져야 한다는 것.

새누리당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 박진 전 의원, 정인봉 전 의원 등 3인의 예선전이 우선 관심사다. ‘당원 30%+국민 70%’인 새누리당 선거인단 구성상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오세훈 전 시장이 다소 우위에 있다. 종로에서 3선을 한 박진 전 의원이 당원에서는 유리하다 해도 당내 대선 후보 2위인 오 전 시장의 인기를 넘어서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오세훈 전 시장의 걱정은 오히려 경선 이후에 있다. 박진 전 의원의 정치 재개 문제를 놓고 허위사실 유포 논란이 이는 등 상호 갈등의 골이 깊어졌기 때문이다. 박진 전 의원이 예선에서 탈락할 경우 일부 지지자들은 본선에서 오세훈 후보를 지지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당은 국민회의 대외협력위원장을 역임한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장이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1963년생인 그는 참여정부에서 대통령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전문위원, 이명박 정부 때는 대통령 소속 사회통합위원회 지역분과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국가 사업이나 지방자치단체 사업의 다양한 갈등관리 업무를 수행해왔다. 그러나 정치 신인이어서 거물들이 맞서는 종로 지역 특성에는 잘 맞지 않아 득표력은 미지수다. 단독 후보로 확정되다시피 한 더불어민주당 정세균 후보의 당선에 불리하게 작용할 우려가 높은 대목이다.

결국 정세균 의원의 종로 수성 여부는 정세균 본인에게 달려 있지 않다. 새누리당 후보의 경선 결과에 따른 표 분산, 국민의당 후보의 새누리당과 야권 표 잠식 등 외부 변수가 오히려 크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기자명 최광웅 (데이터정치연구소 소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