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었다. 김정주는 지나가던 길이었다. 이승찬이 컴퓨터 앞에서 꼼지락대는 걸 봤다. 명색이 넥슨의 사장인데 김정주가 모르는 게임이 넥슨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저 퀴즈를 푸는 게임일 뿐인데 묘하게 재미있었다. 넥슨의 전설적인 게임 개발자 이승찬의 첫 작품 〈퀴즈퀴즈〉는 그렇게 넥슨의 차기작이 됐다. 십수 년 전 일이다.

우연은 계속됐다. 사람들은 돈 내고 게임을 하는 건 싫어했다. 돈 내고 게임 속 아바타를 꾸미는 데는 아낌이 없었다. 우연한 발견이었다. 넥슨은 게임은 무료로 하되 게임 속 아이템은 돈 주고 사는 과금 체계를 만들었다. 유명한 넥슨의 부분 유료화 전략은 그렇게 우연히 발견됐다.

우연에는 국경이 없다. 넷플릭스는 애인보다 더 내 취향을 잘 아는 인터넷 방송으로 유명하다. 어떤 영화를 선택했고, 어디에서 돌려봤으며, 어디까지 봤는지 따위 시청 패턴을 채집한 빅데이터 덕분이다. 유명한 넷플릭스의 씨네매치 알고리즘이다. 넷플릭스의 창업주 리드 헤이스팅스가 이런 알고리즘을 만든 것도 우연이었다. 처음엔 그저 시청자가 자신이 본 영화에 별점을 매기게 하면 재미있겠다 싶은 정도였다. 소비자들이 타인의 별점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걸 우연히 발견했다. 넷플릭스는 별점을 이용해서 소비자들한테 딱 맞는 영화를 추천해줄 수 있었다. 우연한 발견이 넷플릭스의 가장 큰 경쟁력이 됐다.

우연한 성공은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다. 우연히 같은 날 개봉한 〈스티브 잡스〉와 〈빅쇼트〉 역시 우연한 성공을 다룬 영화들이다. 〈빅쇼트〉는 2008년 금융위기 와중에 미국 부동산 폭락에 베팅해서 대박을 낸 사람들의 실화다. 그들이 미국 부동산 시장이 붕괴될 거라고 확신하게 되는 건 우연한 만남 혹은 우연한 발견 덕택이었다. 〈스티브 잡스〉의 성공에도 우연의 일치가 많았다. 리사를 만들려다 매킨토시를 만들었고 아이패드를 만들려다 아이폰을 만들게 됐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박영희 그림〈/font〉〈/div〉

우리 모두는 성공을 꿈꾼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방법을 모를 뿐이다. 우리는 늘 어딘가에 성공 방정식이라도 있다는 듯이 애타게 찾아 헤맨다. 출판 시장에서 자기계발서와 경영서가 많이 팔려나갔던 이유다. 자기계발서와 경영서는 성공을 필연처럼 다룬다. 이렇게 노력하면 저렇게 성공한다는 방법론들이다. 정작 아무리 그렇게 노력해도 저런 성공은 요원했다. 최근 들어 자기계발서와 경영서의 인기가 예전만 못한 건 그래서다. 다들 속은 기분이다.

더 많은 우연을 만들기 위해 주어진 길에서 벗어나보자

성공 비결은 따로 있다. 성공이 우연의 산물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건 방법이 아니라 태도다. 넥슨의 김정주나 넷플릭스의 리드 헤이스팅스나 애플의 스티브 잡스처럼 우연한 성공을 우연히 경험하고 나면 그런 태도를 배우게 된다. 보통 사람들도 그들의 인생을 찬찬히 읽어보다 보면 우연히 깨닫게 된다. 삶의 우연을 받아들일 때 성공의 기회가 주어지기도 한다는 걸 말이다. 성공이 진정 우연이라면 성공하려는 개인과 기업은 우선 우연성부터 증가시켜야 한다. 기업이라면 유연해져야 한다. 매출 목표나 분기 성과에 연연하면 조직 내 우연이 박멸된다. 사장이 지나가다가 사원의 컴퓨터를 살펴보고 갑론을박하는 일이 일상다반사여야 한다는 얘기다. 대박 난 기업은 다 그랬다. 개인이라면 더 많은 우연을 만들기 위해 주어진 길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생의 불확실한 우연에 충실히 몸을 내맡겨야 한다. 필연적 정답투성이인 온갖 인생 시험에 얽매여선 우연을 만날 확률만 줄어든다. 성공한 사람은 우연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잡스처럼 우연을 필연처럼 포장하면 된다. 잡스의 인생도, 다른 모든 성공한 사람들의 인생도 개연성 없는 우연이 남발되는 일일 드라마와 별다르지 않다. 잡스의 탁월한 프레젠테이션은 우연을 필연으로 변환하는 연금술이었다. 사람들이 누군가의 성공을 필연으로 믿으면 그는 신화가 된다. 삶은, 우연이다.

기자명 신기주 (〈에스콰이어〉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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