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철 젊은협업농장 이사(50·사진)는 운이 좋았다. 풀무학교(충남 홍성) 교사 출신인 그가 제자 두 명과 함께 협동조합 형태의 농장을 처음 구상한 것은 2011년. 머리 쓰는 일이나 했지 농사일에는 서투르기만 했던 그가 농장을 하겠다고 하자 주변에서는 다들 “그러다 망한다”라며 심란해했다. 그럼에도 그가 일을 벌일 수 있었던 데는 농사지을 땅을 수월하게 얻은 덕이 컸다. “젊은이들이 들어오면 노인들만 살던 마을에 활력이 생길 것 같다”라며 인근 홍성군 장곡면 도산리 임응환 이장이 자기 땅을 빌려주는 한편 협동조합 이사로 직접 참여하는 열의를 보인 것이다.

ⓒ시사IN 신선영

그로부터 5년. ‘세 남자가 사랑한 쌈채소’라는 상호로 시작한 농장은 그새 ‘젊은협업농장’이라는 정식 협동조합으로 거듭났다. 660㎡(200평) 규모로 소박하게 시작했던 농사는 4600㎡(1400평) 규모로 늘었다. 현재는 이곳에 세워진 비닐하우스 여덟 동에서 농장 조합원 7~8명이 1년 365일 친환경 유기농 쌈채소를 재배한다. 프로 농사꾼에게는 소꿉장난처럼 보일 수 있는 농사 규모지만, 더 무리할 생각은 없다고 정 이사는 말했다. 돈을 많이 버는 게 농장을 세운 목적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 젊은협업농장은 귀농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노동을 같이하면서 농촌에 적응해가는 일종의 ‘인큐베이팅 농장’을 지향한다. 돈 없고 연줄 없는 귀농 초보자들에게 농업 현장이라는 배움터를 제공하되, 일단 농사일에 이력이 붙었다 싶으면 독립시키는 구조다. 실제로 지난 5년간 이곳을 거쳐간 조합원들이 독립해 새로 만든 농장만 4곳에 이른다. 이들이 나간 자리는 새 사람으로 채워진다. “우리가 생각해도 신기할 만큼 사람이 모여들더라. 귀농 교육을 하는 데는 많지만 현장에서 농업을 몸으로 접할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어서였던 것 같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준비를 거쳐 귀농하려는 젊은이들이 땅을 구하는 과정에서 벽에 부딪히게 되는 현실이다. 농촌에서도 땅 주인들은 귀농자에게 땅을 잘 빌려주려 하지 않는다. 빌려줘봐야 기껏해야 2~3년이다. 농지가 언제 거래될지 모른다는 기대심리 등이 작용해서다. 이래서야 안심하고 농사를 짓기 어렵다. 이에 젊은협업농장은 지난 연말 교보교육대상을 수상하면서 받은 상금 3000만원 중 1000만원을 ‘토지평화기금’에 기탁하기로 결정했다. 이 지역 홍순명 밝맑도서관장이 앞장서 조성 중인 토지평화기금은 유럽에서 유래한 공동체 토지신탁(CLT)을 본뜬 것으로, 공동기금으로 사들인 토지를 땅 없는 귀농자 등에게 장기 임대하는 모델을 만들고자 한다. “한국에 CLT를 도입하기에는 법적 제약이 너무 많다지만, 농민 초고령화 등으로 실질농지는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다. 서둘러야 한다”라고 정 이사는 말했다.

기자명 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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