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양시에 사는 임성숙씨(39)에게 나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임씨는 다둥이 엄마다. 자녀가 넷이다. 5개월 된 막내아들을 빼고, 첫째 딸(만 6세), 둘째 딸(만 5세), 셋째 아들(만 3세)이 모두 같은 ㅅ어린이집에 다닌다. 매달 15일 임씨가 만든 ‘아이행복카드’로 결제된다. 눈 밝은 독자들은 내가 누구인지 금세 눈치 챘을 것이다. 나는 ‘누리과정 보육료’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세 아이 몫으로 첫째 22만원, 둘째 22만원, 셋째 29만5000원, 합해서 73만5000원이 지급된다. 막내는 가정양육수당으로 20만원을 따로 받는다. 양육수당은 내 사촌 격이다.

내가 몇 달만이라도 지급되지 않는다면, 임씨네 가계부에는 곧바로 빨간불이 켜진다. 임씨네 월 소득은 지난해 통계청이 조사한 4인 가족 평균 생활비(월 490만원)에 미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임씨도 아이를 돌보면서 프리랜서로 일한다. 내 ‘생사’ 여부를 놓고 만 3~5세 아이를 둔 부모들이 마음을 졸인다. 임씨도 계산기를 두드리다 한숨을 쉰다.

요즘 내 신세가 말이 아니다. 130만 아이들에게 지급되는 연간 4조원 규모 예산을 차지하는 나를 두고 중앙정부와 지방교육청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한때 ‘복지 모범생’으로 치켜세우더니, 어느새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것이다. 나를 두고 벌어지는 보육료 논쟁, 과연 누구에게 책임이 있을까? ‘양비론 프레임’을 넘어 잘잘못을 꼼꼼하게 따져보자.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누리과정 보육료를 1인칭 화자(話者)로 삼은 이유다.

ⓒ시사IN 신선영누리과정 예산 편성 논란이 가열되는 가운데 경기도 안양시에 사는 네 아이 엄마 임성숙씨가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있다.

이명박이 낳고 박근혜가 키운다던 정책

나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2년 3월 세상에 나왔다. 태어나기 1년 전부터 언론의 화려한 조명을 받았다. 2011년 5월 김황식 총리는 내 출생을 예고했다. 2012년 3월부터 만 5세 공통과정으로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내 이름까지 국민을 상대로 공모했다. 누리는 순우리말, ‘세상’을 뜻한다. ‘새누리당’에 포함된 누리와 같은 뜻인데, 내가 원조다.

부모 소득과 관계없이 월 20만원 보육료를 지급했다. 여야 모두 환영했다. 김상곤발 무상급식에 일격을 당한 이명박 정부가 무상보육으로 맞불을 놓았다는 분석도 뒤따랐다. 이명박 대통령은 내 출생을 앞둔 2011년 12월 유치원을 직접 방문해 이렇게 말했다. “5세 무상교육을 시작하지만, 2013년부터 4세, 3세도 지원하도록 내가 만들어놓고 떠나겠다.” 두고두고 회자되는 ‘이명박표’ 복지로 추어올렸다. 후임자인 박근혜 대통령은 0~5세까지 무상보육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다. 2013년 박근혜 정부는 누리과정을 만 3~5세로 확대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낳고 박근혜 대통령이 나를 키운 셈이다.

하지만 출생부터 내 재원(財源)이 문제가 되었다. 내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예산 편성 및 관리 주체가 나뉘어 있었다. 유치원은 교육재정(교육청)에서, 어린이집은 국고(보건복지부)에서 나왔다. 내가 첫발을 떼면서 통합해 각 시·도 교육청에 맡겼다. 중앙정부가 시·도 교육청에 내려 보내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하 교육교부금)을 재원으로 삼은 것이다. 별도 재원을 마련하지 않고 기존 교육교부금으로 충당이 가능하겠느냐는 논란이 일었다. 당시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경제 여건이 개선돼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내년부터 매년 3조원씩 증가할 것으로 보여 시·도 교육청에선 추가 부담이 없을 것이다”라고 큰소리쳤다.

ⓒ연합뉴스2015년 12월21일 이재정 경기교육감이 청와대 앞에서 누리과정 예산의 국고 지원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했다.

교육교부금은 중앙정부가 거두는 내국세의 20.27%로 정해진다. 즉, 예산이 쓰이는 수요와 상관없이 법으로 교육교부금 비율이 정해져 있다. 내국세를 많이 거두면 교육교부금도 늘고, 적게 거두면 줄어드는 세입 상황에 영향을 받는다.

내가 세상에 나온 2012년 교육교부금은 전년보다 3조1000억원이 늘어난 39조2000억원이었다. 매년 3조 가까이 늘 것이라는 정부 예측이 딱 맞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난 복지 모범생이었다. 문제는 다음 해부터 불거졌다. 2013년 교육교부금이 40조8000억원, 전년보다 3조원이 아니라 1조6000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2014년 교부금은 40조9000억원, 전년 대비 1000억원만 증가했다. 2015년 교부금은 오히려 1조4000억원이 줄었다. 39조5000억원에 불과했다. 교육교부금이 2012년 39조원에서 매년 약 3조원씩 증가해 2015년에는 약 49조원이 된다던 정부 예측이 보기 좋게 어긋났다. 내수 악화와 이명박 정부의 감세 정책 탓이다. 들어오는 교육교부금은 줄고, 나가야 할 누리과정 예산은 늘면서 시·도 교육청 처지에서 보면 난 ‘천덕꾸러기’가 된 것이다.

누리과정 예산 때문에 준예산 사태까지 맞은 경기도를 따져보자. 2012년 경기도교육청이 떠안은 누리과정 부담액은 4168억원이었다.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런데 2013년 7688억원, 2014년 1조762억원, 2015년 1조4507억원, 올해는 1조559억원으로 내 덩치가 급속하게 커졌다. 도입 첫해에 비해 3배 가까이 늘었다.

하지만 정작 경기도교육청에 지급되는 교육교부금은 2012년 7조1000억원, 2013년 7조8000억원, 2014년 8조2000억원으로 늘다가 2015년 7조9000억원으로 감소했다. 올해 8조4000억원 수준으로 지난해보다 늘었지만 추세로 보면 2014년 수준이다. 교육교부금에 지자체 전입금, 자체사업 수입을 포함시켜 경기도교육청 전체 예산을 짠다. 경기도교육청에서 부담해야 할 내 몫이 늘면서 경기도 교육예산 전반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그동안 부족분은 지방교육채 발행이라는 인공호흡기를 달아 해결했다. 경기도교육청은 2013년 9500억원의 지방교육채를 발행했고, 2014년에는 3조8000억원, 지난해에는 6조1000억원의 지방교육채를 발행해 빚을 얻음으로써 나를 겨우 연명시켰다. 경기도교육청 외 다른 교육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2012년에 9조원에 불과했던 전국 시·도 교육청의 채무가 지난해 17조원까지 늘었다. 채무 비율이 매년 1%포인트씩 늘다가, 나 때문에 2015년 9%포인트나 뛰었다. 중앙정부도 내가 고사되는 것을 못 본 체할 수는 없었다. 지난해 목적예비비 5000억원을 지원했고 시·도 교육청이 지방교육채를 발행하면 정부가 이자를 대신 떠안았다.

경기도교육청을 비롯한 교육감들은 이제는 중앙정부가 책임을 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종전대로 유치원을 제외한 어린이집 몫은 중앙정부가 부담하라는 것이다. 지금 상태로는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재정 경기교육감은 “2015년 누리과정 예산을 맞추기 위해 학교운영비 5% 삭감, 각급 기관 운영비 20% 삭감, 기간제 교사 1000명 감원 등 약 8900억원을 무리하게 삭감했다”라고 말했다.

 

중앙정부는 내가 탄생한 법적 근거를 들어 지방 교육청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밀어붙인다. 지난해 10월 지방재정법 시행령을 개정해 누리과정 예산을 시·도 교육청의 의무지출 경비로 지정해버렸다.

결국 ‘증세 없는 복지’로 폭탄 돌린 꼴

중앙정부와 지방 교육청 사이 전선에 올해는 지방자치단체까지 끼어들었다. 어린이집 예산은 교육청에서 나오는데, 어린이집에 전달하는 관리 주체는 지자체다. 올 4월 총선을 앞두고 표심에 민감한 지자체는 어린이집 예산을 자체 편성한 후 나중에 교육청한테 해당 금액을 받겠다며 급한 불 끄기에 나섰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한 걸음 더 나갔다. 남 지사는 “1~2월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도비 910억원으로 충당한 뒤 그래도 중앙정부가 움직이지 않으면 지방채를 발행해 올해 전체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책임지겠다”라고 밝혔다. 경기도교육청은 ‘미봉책’이라며 반대한다.

내 재원을 두고 이처럼 중앙정부-시·도 교육청-지방자치단체가 얽혀 있는 형국이다. 과연 해법은 없을까?

해법은 나를 세상에 내놓은 중앙정부가 가장 잘 알고 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지방교육청 책임이라고 말하지만, 2014년 가을에 2015년도 예산안을 짜면서 정부가 해법을 제시한 바 있다. 만 3~5세 누리과정 전면화 첫해를 앞둔 2014년 7월, 보수와 진보를 떠나 전국 시·도 교육감협의회는 한목소리를 냈다. “재정 여건을 고려해 2015년도 누리과정 예산 중에서 어린이집 보육료 예산을 전액 편성하지 않겠다.” 교육교부금 예측에 실패한 교육부도 이를 받아들였다. 교육부가 기획재정부에 보낸 2015년 예산요구서를 보면 유치원을 뺀, 어린이집 누리과정에 해당하는 예산 2조1500억원이 국고에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명시했다. 교육부도 사실상 교육교부금 재원만으로는 나를 감당할 수 없다는 걸 자인한 셈이다. 하지만 기획재정부가 전액 삭감했다.

ⓒ시사IN 조남진1월13일 경기도의회 로비를 점거한 사립유치원연합회 소속 원장들. 강득구 경기도의회 의장(마이크 든 이)이 예산 심의를 위한 본회의를 개최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다.

따로 재원을 마련하지 못하면, 법 개정을 통해 내국세 20.27% 비율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 인상 폭은 사회적 토론을 거칠 필요가 있다. 물론 기획재정부는 난색이다. 이미 국가 재정건전성에 ‘비상등’이 켜진 탓이다. 재정수입에서 총재정지출과 4대 사회보장성 기금액을 뺀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가 지난해 47조원에 이르렀다. 역대 최대 적자를 기록한 2009년 43조원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결국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해답이 모아진다. 바로 증세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증세 없는 복지를 대통령 공약으로만 기억하는데, 합리적 조세 수준 결정을 위한 국민대타협위원회 설치도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이제 이 공약을 실천할 때다”라고 말했다.

내가 천덕꾸러기가 된 것은 박근혜표 ‘증세 없는 복지’ 정책의 결과다. 폭탄을 돌리다 결국 누리과정에서 터진 것이다. 아마 올해 난 또다시 목적예비비 등 인공호흡기를 달고 연명할 것이다. 올해를 넘기더라도 내년에 내 덩치는 또 커진다. 임성숙씨의 첫째는 초등학교에 입학해 누리과정에서 벗어났다. 막내아들이 2년 뒤 누리과정에 편입된다. 난 임씨네 막내에게도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싶다.

기자명 고제규·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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