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7월5일 태안군 청포대와 몽산포 해수욕장에서 열린 해변 마라톤 대회(사진)에는 4만여 명이 참가했다.

삼성중공업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한 지 200일이 훌쩍 지났다. 지금 국민의 관심은 온통 미국산 쇠고기 문제에 가 있다. 그런데 태안 사고와 미국산 쇠고기 문제가 서로 닮은꼴이라는 점을 깨닫는 이는 별로 없는 듯하다.

이명박 정부가 수출 기업의 미국 시장 확보를 위해 성급하게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허용한 것은, 2005년 노무현 정부가 국내 정유사의 재정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IOPC(국제유류오염보상기구)의 보상 한도를 높이는 ‘추가보상의정서’에 ‘가입하지 않은’ 것과 같다.

이 의정서에 가입했다면 우리나라 정유사가 매년 분담금을 수억원 추가 납부하는 것만으로도 보상금이 현재 3000억원에서 1조원으로 올랐을 것이다. 삼성중공업 기름 유출 사고 피해를 전부 보상하지는 못하더라도 상당 부분 보상할 수 있는 액수다. 두 사안 모두 정부가 소수 엘리트 기업의 보호를 위해 다수의 희생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닮았다. 

2008년 현재 우리나라 해양 유류 수송량은 세계 4위다. 세계 1위에서 11위 사이의 나라 중에서 일본·이탈리아·네덜란드·프랑스·영국·스페인·독일 등이 추가보상의정서에 가입했다. 도시국가인 싱가포르,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나라의 10분의 1밖에 안 되는 인도를 제외하고 가입하지 않은 나라는 캐나다가 유일하다. 

기존 IOPC 펀드에 우리나라 정유사가 공동 부담하는 돈은 연평균 100억원 남짓이다(부담금 액수는 각 국가의 유류 수송량에 따라 매겨진다). 정유사마다 매년 수천억원대의 순수익을 올리는 점을 떠올리면 정부가 걱정할 필요가 없는 금액이다. 더욱이 대다수 사고는 기존 IOPC 펀드에 따라 보상이 이루어진다. 태안 사고처럼 심각한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에만 추가보상의정서에 따라 분담금을 갹출하기 때문에 가입국 소속 정유사의 분담금은 실제로 미미하다.

2007년 IOPC 펀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추가보상의정서에 가입한 20여 개국이 나누어 책임지는 분담금은 연간 28억원 수준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가입한다면 국내 정유사가 부담할 액수는 이 중 1억~2억원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다시 정유사별로 나누면 몇 천만원 수준이 된다.

몇 천만원 아끼려다 수천억원 손해봐

2006년에라도 우리나라가 의정서에 가입해 SK정유·현대오일 등이 단 몇 천만원이라도 추가보상펀드에 지불했다면 2007년 12월의 대재앙이 닥쳤을 때 태안 피해 주민은 1조원이 넘는 보상을 받았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추가보상의정서에 가입하지 않은 것은 2005년 해양수산개발연구원이 수행한  연구 결과 때문이다. 당시 해양수산개발연구원은 이 의정서에 가입할 경우 우리나라의 ‘분담금 비율’이 두 배로 늘어난다는 점,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대형 유류오염 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일본이나 유럽에 비해 1.5배 이상 낮다는 점을 들어 의정서 가입의 필요성을 부정했다. 하지만  모두 엉터리다.
 

ⓒ뉴시스한국은 해양 수송량이 세계 4위인데도 추가보상의정서에 가입하지 않았다. 위는 태안 기름 제거 모습.

첫째, 기존 IOPC 펀드의 가입국은 90여 개국이지만 추가보상의정서 가입국은 20여 개뿐이다. 중요한 것은 추가보상펀드가 가입국에만 혜택을 준다는 점이다. 이런 배타적인 혜택 때문에 일본·독일·프랑스·스페인 같은 나라가 모두 가입한 것이다. 게다가 분담금 비율이 ‘두 배’로 는다는 것 역시 말장난일 뿐이다. 앞서 설명했듯 2007년 기준으로 추가보상펀드에 내야 할 돈이 두 배로 증가한다고 해도 겨우 3억~4억원이다.   

둘째, 해양수산개발연구원은 어처구니없게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추가보상의정서 가입국에 비해 낮기 때문에 그 피해 규모도 그에 맞게 저평가되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예컨대 똑같은 양식장이 일본과 한국에서 훼손되었더라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일본의 절반 수준이므로 그 피해액도 절반으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에 따라 연구원은 과거 나호드카 호·에리카 호 사고 등도 ‘한국 실정에 맞게’ 저평가했다. 결국 우리 경제 관점에서 보면 ‘작은’ 사고만 발생했으니 우리나라는 추가 보상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기가 막혀서 할 말이 없다. ‘가난’이 기름 유출 사고를 막아주는 방패라도 된다는 말인가.  대형 오염사고 발생 확률이 “1.5배 이상 낮다”라고 계산한 대목 역시 우습다. 연구원은 국내 최대 사고였던 시프린스 호 사고의 피해 규모가 IOPC 보상 한도의 18%인 500억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IOPC 보상 한도의 28%를 받은 일본 나호드카 호 사고와 비교해 피해 규모가 1.5배 이상 낮다고 주장한 것이다. 완전히 엉터리다. 사고 발생 확률은 그 지역의 운송량·기후·선체의 안정성 따위를 고려해야 한다. 단지 1인당 국민소득과 사고 ‘전례’만 가지고 어떻게 ‘확률’ 운운한단 말인가.

정유사의 ‘사소한 이익’만 지켜줄 것인가

더욱 놀라운 것은 해양수산개발연구원이 단순한 경제지표의 비교를 통해 추가보상의정서 가입 시점을 권고한 점이다. 연구원은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시장 환율 기준으로 2만4000달러가 되는 시점에 추가보상의정서 가입 여부를 결정해도 늦지 않다”라고 밝혔다. 연구원의 판단대로라면 1인당 국민소득이 이제 갓 2만 달러를 넘긴 우리나라가 추가보장의정서에 가입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마침 국토해양부가 추가보상의정서 가입을 ‘고민’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하지만 아직 움직임일 뿐 확실한 건 없다. 이명박 정부는 수출 기업을 위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을 엉망으로 진행하는 바람에 국민의 원성을 샀다. 이번에 또다시 대기업 정유사의 ‘사소한’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의정서 가입을 뒤로 미룬다면 국민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다. 한발 늦었지만, 그것이 태안 기름유출 사고가 우리에게 준 중요한 교훈이다.

기자명 박경신 (고려대 교수·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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