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음악가 방준석과 ‘어어부 프로젝트’의 백현진이 만났다. 둘이 결성한 밴드의 이름은 ‘방백’이다. 짐작하다시피, 둘은 각자의 성(姓)을 합쳐 방백이라는 조어를 완성했다. 이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의도적 우연이다. 일단 ‘방향’ ‘다짐’ ‘어둠’ ‘심정’ 그리고 ‘변신’. 이 다섯 곡의 제목을 먼저 훑어보라. 그렇다. 이것은 방백이라는 2인조가 만들어낸 한 남자의 방백과도 같은 음악이다.

여기에 베이스 서영도, 드럼 신석철, 색소폰 손성제·김오키, 피아노 윤석철, 반도네온 고상지를 비롯해 국내 최고의 연주자들이 모였다. 작업은 마치 핑퐁처럼 진행되었다고 한다. 과도한 디렉션보다는 구체적인 예시 딱 하나를 던진 뒤에 반응을 듣고, 그 반응에 다시 반응하는 식이었다. 기실 음악은 어떤 느낌의 순간적인 포착이라는 측면에서 이보다 더 적확한 방식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음반은 듣는 이들에게 지극히 계획적인 동시에 다분히 즉흥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일단 두 음절로 똑 떨어지는 제목에 주목해야 한다. 이 제목들은 어떤 풍경을 듣는 이들에게 제시해준다. 그리고 적어도 나에게 그것은, 자신이 처해 있는 참혹한 현실을 애써 부정하지 않으려는 한 남자의 뒷모습이었다. 방백의 음악 속에서 이 남자는 뭐랄까, 부정성이라는 기묘한 놀이에서 막 탈출한 듯한 의식을 드러낸다. ‘다짐’의 가사 일부처럼 “술, 담배도 끊고 연애도 끊어보고/ 나름 할 수 있는 일을 해본다”라고 노래한다.

ⓒ스팽글뮤직 제공‘어어부 프로젝트’의 백현진(왼쪽)과 영화음악가 방준석이 만나 밴드 ‘방백’을 결성했다.

그렇다고 그가 갑자기 희망 전도사로 돌변하는 것은 아니다. 하긴, 방백이 걸어온 음악의 역사 속에서 헛된 희망이 언제 한번 자리한 적이 있었나. 그들은 이 앨범을 통해 ‘어른의 음악’을 들려주고 싶었다는 소회를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중요한 수식이 하나 빠져 있다. 이것은 어른이 아닌 ‘솔직한’ 어른의 음악이다. 예를 들어 그들은 젊은이들을 향해 위선의 표정을 지은 채 섣불리 훈계하지 않는다. 다만 현실이라는 게 언젠가는 먹먹해질 것임을 알고 있기에, 내 노래가 부디 가서 닿기를 노래할 뿐이다. ‘바람’의 가사처럼 말이다.

“이 노래가 혹시나/ 너에게 가서/ 조금은 힘이 된다면/ 〈행진〉 같은 노래처럼/ 너에게 가서 힘이 된다면.”

일상에서 시대를 건져 올리는 작품

아, 정말이지 주인공의 분신인 백현진은 위대한 보컬리스트다. 그는 이 앨범에 과한 수사를 부여하지 않고 그저 ‘물건’이라고 표현했지만, 저 자신이야말로 ‘진짜 물건’이라는 점을 음반 전체를 통해서 증명한다. 백현진이 강렬한 존재감을 지닌 스트라이커라면 방준석은 위대한 중원의 마에스트로다. 그의 탁월한 조율이 있었기에 방백의 음악은 비로소 완성형으로 거듭날 수 있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나머지 조력자들 역시 각자의 위치에서 환상적인 팀플레이를 들려준다.

앨범의 하모니는 거의 마지막에 위치한 ‘동네’에서 정점을 찍는다. 종국에 “우리 더러운 동네에서/ 우리 어여쁜 동네까지”를 되풀이해 노래하는 이 곡을 듣다가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했다. 언뜻 보면 양립 불가능해 보이는 ‘더러움’과 ‘어여쁨’을 양립 가능한 것으로 여길 줄 아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어른의 자세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일상을 스케치하는 속에서 시대를 건져 올리는 작품은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 않다. 방백의 방백을 깊숙하게 듣고 나니, 그들이 결국 대화를 건네고 있는 것임을 이제야 알겠다.

기자명 배순탁 (음악평론가∙〈배철수의 음악캠프〉작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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