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합의’에는 피해자들이 없다
  • 전혜원 기자
  • 호수 435
  • 승인 2016.01.18 23:5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커버 스토리


끝났다 뉘 말하는가


경로 이탈한 ‘막가파’ 외교의 결과


“돈을 내는 행위만으로 배상이라고 할 수 없다”


‘그 합의’에는 피해자들이 없다
 

눈치 볼 때 보더라도 ‘이것만은’…

 

 

일본 진보지 <아사히 신문>은 “역사적인 진전”이라 평가했지만, ‘12·28 위안부 합의’에 비판적인 일본 지식인도 적지 않다. 한국에도 번역 출간된 <한·일 교섭-청구권 문제 연구>의 저자이자 ‘일·한 회담 문서 전면공개를 요구하는 모임’에서 활동하는 오타 오사무(太田修) 일본 도시샤 대학 글로벌학 연구과 교수(조선근현대사·한·일 관계사 전공)에게 이번 합의에 대해 물었다. 1월7일 오타 교수가 보내온 이메일 답변을 정리했다.

이번 합의를 어떻게 평가하나?
부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아베 정권은 정권 발족 이래, 말로는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고 하면서 실제 행동에서는 일절 책임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한 아베 정권이기에 이번 책임 인정은 ‘일보 전진’이긴 하다. 그러나 그것은 고노 담화의 수준에 겨우 이르렀다는 의미에서 일보 전진이며, 내용에 새로움은 없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2015년 6월20일 한·일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일본 도쿄에서 심포지엄이 열렸다. 오타 오사무(오른쪽에서 두 번째) 교수도 이 자리에 참석했다.

이유가 무엇인가?
첫째, 이번 합의는 피해자 할머니들의 목소리나 그 지원운동과의 협의에 기초해 있지 않다. 무엇보다도 피해자 할머니들이나 그 지원운동이 납득해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이 불충분하다. ‘군의 관여’라는 한마디로 끝낼 게 아니라 △일본 정부 및 군이 군의 시설로서 ‘위안소’를 설치·관리·통제한 것 △할머니들이 위안소 등지에서 강제적인 상황에 놓인 것 △중대한 인권침해였던 것 등 구체적으로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
셋째,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된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았다. 경제적인 보상에 대해서는, 만약 피해자가 받아들일 수 있다면 ‘최종적 및 불가역적 해결’이어도 될지 모른다. 그러나 △진실 규명(일본 정부가 보유한 자료 공개, 국내외 자료 조사, 피해자 청취 조사 등) △기억·추모(학교나 사회에서의 역사 교육, 추모사업) △재발 방지 조치(잘못된 역사 인식에 근거한 공인의 발언 금지, 그 밖의 잘못된 역사 인식에 대한 비판 등)는 앞으로도 계속 실천해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구체적인 조치를 표명하지 않은 채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된다’고 한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넷째, 한국 측이 재한 일본 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대해 ‘적절한 형태로 해결되도록 노력한다’고 한 점이다. 일본 정부가 ‘소녀상’ 철거를 요청한 것에 대한 발언이라고 추측된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이를 조건으로 이번 합의를 주고받은 거라면 언어도단이다. 일본 정부의 진의가 피해의 해결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소녀상 문제는) 기본적으로는 피해자 할머니나 지원운동 측에서 결정해야 할 일이다. 양 정부에 이론이 있으면 피해자 할머니나 지원운동 쪽과 직접, 충분히 협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일본 정부가 이론이 있는 것이라면, 한국 정부에 요청하는 게 아니라 할머니나 지원운동과 직접 대화해야 할 것이다.

이번 합의를 1965년 한·일 협정과 비교한다면?
1965년 협정과 비교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애초에 일·한 회담과 그 결과 체결된 일·한 조약(한·일 협정)은 식민지 지배나 전쟁 동원 피해를 불문에 부치는 것이었다. 피해자나 그 지원운동의 목소리를 받아들이는 일은 전혀 없었다.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중요한 것은 1965년 일·한 재산청구권 협정으로 모든 게 해결됐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과 이번 합의의 관계다. 일본 정부는 이제까지 그러한 주장을 계속해왔고, 이번에도 그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합의로 사실상 그 논리가 무너진 것이 한층 명백해졌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1965년의 청구권 협정으로는 해결되지 않았다는 바로 그 이유로 (1993년의) 고노 담화나 이번 합의가 필요해진 것이다. 일본 정부가 지금도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 종료’를 계속 주장하는 것 자체가 자가당착이다.
이번 합의로 만들어질 재단에 일본 정부 예산이 들어간다. 민간 모금이었던 아시아여성기금과는 다르다.
아시아여성기금의 최대 문제점은, 피해자 할머니나 지원운동의 의사를 무시하고 강행했다는 점이다. 이번에는 할머니나 지원운동의 의사를 비교적 의식했다고는 하지만, 최종 합의는 역시 피해자 할머니나 지원운동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결과가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2014년 6월2일 일본 도쿄 중의원 제2회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아시아 연대회의’ 소속 참가자들이 일본 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일본 내 여론은 어떤가?
아베 정권은 이번 합의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 같다. 올여름 참의원 선거 때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 일·한 관계가 정상화됐다는 외교적 성과를 선전하려 하고 있다. 거대 미디어는 경제적 지원과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된다’는 두 가지 대목을 강조한다. 이제까지 아베 정권에 비판적이었던 미디어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 같다.
피해자 할머니나 지원운동의 비판 또는 비판적인 목소리가 충분히 전해지고 있지 않은 것이 문제다. 어째서 이번 합의가 문제인지, 피해자 할머니나 지원운동의 비판적 목소리를 포함해 합의의 문제점이나 과제, 대안 등에 대해 일본 사회에 문제 제기를 해나갈 필요가 있다.

피해 당사자와 지원단체는 이번 합의가 ‘무효’라고 호소하고 있다. 앞으로 양국의 각 주체가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고 보나?
이번 합의의 잘못은 피해자나 지원운동과의 대화를 결여한 채 이뤄진 것이라는 점에 있다. 양국 정부, 특히 일본 정부는 피해자인 할머니나 지원운동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합의가 되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양국 정부는 피해자 할머니나 지원운동과 직접 대화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번 ‘합의’대로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2014년 6월 제12회 일본군 위안부 문제 아시아 연대회의가 낸 <일본 정부에 대한 제언-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아시아 지역의 피해자와 지원단체가 일본 정부에 제시한 해결책. △사실과 책임 인정 △공식 사죄 △배상 △진상 규명 △재발 방지 조치 등)가 피해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최저한의 내용이 아닐까.

Magazine
최신호 보기 호수별 보기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