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이, 그 자체로 보잘것없어서가 아니라, 사회 주류의 합의를 거슬렀기 때문에 공론의 장(場)에서 배척받는 일이 생길 수 있을까? 당연히 있어. 오늘은 그 슬프고 불온한 책에 대해 얘기하려고 해. 책 제목은 〈아주 낯선 상식〉이고, 김욱이라는 법학자가 써서 개마고원이라는 출판사에서 냈어. 이 책이 사회 주류의 합의를 거슬렀다고 할 때, 그 주류란 우리가 보통 말하는 한국 사회의 보수 우익 세력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야. 개혁을 표방하든 진보를 표방하든, 이 사회에서 주류가 될 수는 있어. 마르크스주의자를 자임하면서도 좋은 스펙과 실천 없는 언설을 통해서 우리 사회 주류에 둥지를 틀고 있는 사람들도 많아.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극좌(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에서 극우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치 스펙트럼의 모든 주류에게 가장 불편한 정치사회적 주제가 뭘까? 바로 이 사회의 지역 문제야. 좌파식 표현을 빌리면 지역 모순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아주 낯선 상식〉의 부제는 ‘호남 없는 개혁에 대하여’야. 그리고 그 부제가 시사하듯, 이 책은 영남 패권주의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고 있어. 영남 패권주의라는 말이 낯설게 들릴지도 몰라. 이 말을 사용하는 언론이 거의 없으니까. 그렇지만 그 뜻을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을 거야. 한국 사회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영역에서 영남 지역(출신 인사들)이 패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뜻이야. 따지고 보면 한국에는 영남 패권주의가 자라날 환경이 잘 조성되었어. 박정희에서 시작해, 채 한 해도 대통령을 지내지 못한 최규하를 지나서,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이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영남 출신이 아닌 사람은 최규하와 김대중뿐이야. 다시 말해 1961년부터 2016년까지 55년 동안, 영남 출신이 최고 권력자가 아닌 시절은 한국에서 5년 남짓밖에 없었어. 그리고 다음 대통령도 영남 출신 인사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이지영 그림

이건 좀 이상한 일 아닌가? 정치 천재들은 영남에서만 나온다는 지리생물학적 원칙이라도 있다면 몰라도, 왜 한국의 거의 모든 대통령은 영남 출신이지? 그 결과로 영남 출신이 한국 사회의 정치·경제를 휘어잡게 되고, 다른 지역과 그 지역 출신 사람들은 소외되고 있는 거야. 그런데 그 소외되는 다른 지역 가운데 왜 호남의 소외가 또 가장 큰 거지? 하나의 가설은 호남 지역만이 영남 패권주의에 저항해왔기 때문이라는 거야. 물론 이것은 하나의 가설이야. 〈아주 낯선 상식〉이라는 책이 내세우는 가설이지. 나는 이 가설이 옳은지 그른지 잘 모르겠어.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한국 사회에 영남 패권주의라는 것이 또렷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야. 청와대를 비롯한 권력기관이나 재벌 기업에서는 영남 방언이 표준어 노릇을 하고 있잖아.

그뿐만이 아니야. 전통적으로 새누리당 계열 정당들은 흔히 영남 정당이라 불려왔고, 더불어민주당 계열 정당들은 흔히 호남 정당이라고 불려왔는데, 이젠 그것도 사실에 어긋나. 물론 아직 더불어민주당의 지지 기반은 호남이지만, 이 당의 지도부는 영남 출신이거나 친영남 출신 인사들이 장악하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대한민국은 여당도 영남, 야당도 영남, 재벌도 영남인 영남공화국이라고 할 수 있어. 이걸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게 이상할 거야. 그런데 어쩌면 나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이걸 정상적이라고 생각해왔어. 〈아주 낯선 상식〉은 그 이상한 정상성에 시비를 거는 책이야.

이 ‘금서 아닌 금서’를 읽어야만 하는 이유

그런데 이 책의 시비는 조금도 거칠지 않아. 분석은 정교하고 해석은 그럼직하며 결론은 타당해 보여. 사실 이 책은 여느 엉성한 정치평론서가 아니라 엄밀한 사회과학서에 가까운, 그리고 미답의 영역을 개척한 뛰어난 책이야. 그런데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매체에서 이 책을 단 한 줄도 기사로 다루지 않았어. 왜 그랬을까? 이 책이 시시한 책이어서, 서평으로 다룰 만한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서 그랬을까? 내 생각은 달라. 이 책이 영남 패권주의자들을 비롯한 한국인 대부분을, 특히 지식인들을 불편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야. 영남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할 영남 패권주의자들에게 불편한 것은 물론이고, 영남 이외 지역 출신의 사람들도-거기에는 호남 출신 사람들도 제법 포함되는데-이 책이 말하는 영남 패권주의에 순응하고 투항해버렸기 때문이라는 게 내 생각이야.

한국 사회에 분명하게 작동하고 있는 영남 패권주의를 지식인들조차 모른 체해. 그것을 절대 변경할 수 없는 디폴트값으로 정하고, 그 위에서 보수니, 진보니, 개혁이니 하는 얘기를 하는 거지. 그렇지만 개혁이나 진보라는 것이 차별과 양립할 수 없다면, 나는 영남 패권주의를 우회하는 개혁담론이나 진보담론은 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해. 가짜 개혁담론이자 가짜 진보담론이라는 뜻이지.

〈아주 낯선 상식〉의 핵심 메시지 가운데 하나는 호남의 세속화야. 왜 광주는 세속도시가 아니라 신성도시여야만 할까? 왜 호남 사람들은 제 세속적 욕망을 풀어놓으면 안 되는가? 왜 광주는 ‘민주주의의 성지’라는 ‘굴레’에서 해방되지 못하는가? 한번 생각해보자고. 호남 지역 사람들이 다른 지역 사람들에 견줘 정치적으로 더 윤리적이어야 할 의무가 있을까? 선거 때만 되면 이른바 개혁 정당에 몰표를 주고도, 그 몰표 때문에 지역주의자라는 조롱을 받아야만 할까? 심지어 다른 지역 출신의 개혁 정당 지지자들도 호남 지역의 몰표를 자주 조롱하잖아. 호남을 지지 기반으로 삼은 개혁 정당의 지도자는 왜 꼭 영남 사람이어야 하지? 왜 호남 출신 정치인들은 대통령선거에 나가선 안 되지? 〈아주 낯선 상식〉은 이런 당연한 질문들에 대한 저자 나름의 답변을 시도하고 있어.

나는 이 책의 주장에 다 공감하지는 않아. 그렇지만 이 책은 매우 논쟁적인 만큼이나 거기에 대한 찬성이나 반론을 불러내야 해. 그런데 이 책에 대해선 공적 담론장에서 찬성도 반론도 나오지 않고 있어. 왜 그럴까? 이 책을 소개하는 매체가 거의 없기 때문이지. 미디어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미디어에 언급되지 않는 책은 사실상 나오지 않은 책과 마찬가지야. 지금 한국 미디어 종사자들은, 개혁적 미디어든 보수적 미디어든 진보적 미디어든, 이 책의 존재 자체를 숨김으로써 자신들이 영남 패권주의자이거나 영남 패권주의자들의 친구라는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해.

내 독서 경험에 한정시켜 말하자면, 이 책은 지난해에 한국에서 나온 책 가운데 가장 중요한 책 서너 권 안에 꼽힐 만해. 나는 되도록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어. 많은 사람이 이 책에 설득되길 바란다는 뜻이 아니야.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이 책의 주장 가운데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생각해보고 토론해봤으면 좋겠어. 이 책은 두 겹으로 무서운 책이야. 첫째로, 우리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절대 정상이 아니라는 점을 폭로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서워. 둘째로, 좌우, 보수·진보 가리지 않고 한국의 주류 세력이 이 책의 존재를 감춤으로써 영남 패권주의의 영구적 온존을 기도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무서워. 한국 사회의 ‘이스태블리시먼트’는 사실상 이 책을 금서로 만들어놓은 거지.

제가끔 이 ‘금서가 아닌 금서’를 한번 펼쳐보자고!

기자명 고종석 (작가·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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