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엠피터(본명 임병도)는 손꼽히는 정치·시사 블로거다. 2008년부터 포털사이트 다음의 블로그 티스토리에 정치·시사 글을 올렸다. 2010년부터는 직장을 정리하고 제주도에 내려가 전업 블로거로 살고 있다. 그 이후로 한 해도 빠지지 않고 티스토리 베스트 블로거로 선정됐다. 이제는 1인 미디어의 대표 주자로 꼽힌다. 그는 티스토리를 “블로거의 삶을 만들어준 고마운 플랫폼”이라고 했다. 8년간 올린 게시물이 2800여 개에 달한다.

그러나 새해부터는 티스토리에서 아이엠피터의 새 글을 볼 수 없다. 그는 “정치 글 삭제를 견디지 못해 티스토리를 떠납니다”라는 글을 올리고 2015년을 끝으로 블로그를 옮기겠다고 알렸다. 반복되는 게시글 삭제 요청 때문이다.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 2(정보의 삭제 요청)에 따르면 포털은 삭제 신청이 들어온 게시물에 대해 30일간 접속을 차단하는 ‘임시조치’(일명 블라인드)를 할 수 있다.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으로 권리가 침해된 경우로 조건이 한정돼 있지만 포털은 게시물 삭제 신고가 들어오면 기계적으로 임시조치를 내리고 있다. 2014년 임시조치 건수는 네이버가 33만7923건, 다음이 11만6261건으로 총 45만4826건에 이른다. 하루 1246건꼴로 포털에서 게시물이 사라지는 것이다. 임시조치 기간에 작성자가 이의신청을 하지 않으면 게시물은 삭제된다.

ⓒ시사IN 조남진정치·시사 블로거 ‘아이엠피터’ 임병도씨.

아이엠피터는 2010년 이후로 임시조치를 당한 게시물이 30~40건 정도 된다고 했다. “정확히 몇 건인지는 알 수가 없다. 블라인드 처리가 되면 메일로 통보한다. 그 메일을 확인하지 못하고 30일이 지나면 나도 모르게 글이 삭제되는 거다.” 삭제를 요청하는 이유도 터무니없다. 병무청은 ‘박재완 장관처럼 고혈압으로 군대면제 받기’라는 글에 삭제를 신청했는데 이유는 ‘불법 병역 면탈 및 감면 조장’이었다. 그는 “임시조치를 당하면 정말 기분이 나쁘다. 나는 전업 블로거다. 글 하나 쓰는 데 6시간에서 10시간 정도 걸린다. 하나의 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건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가게 문을 닫게 한 거 아닌가”라고 말했다.

아이엠피터뿐만이 아니다. 티스토리에서 ‘사람과 세상 사이’라는 시사·정치 블로그를 운영하는 오주르디(필명)는 지난해 11월과 12월에 게시물 두 개가 삭제됐다. 신고자는 ‘스폰서 검사’ 의혹을 받았던 박기준 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의 대리 단체이다. 삭제된 글은 ‘대검 감찰위는 감싸기 역할?’과 ‘이명박의 시각으로 본 박기준 스폰서 검사’이다. 두 글은 박기준 검사장 등 검사들이 지역 건설업자에게 향응과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돼 특검이 수사했으나 박 검사장은 공소시효가 지나 불기소됐고 검찰에서는 면직 징계를 받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존 보도에서 벗어난 부분은 없다.

정치·시사 블로거 ‘아이엠피터’ 임병도씨가 쓴 글을 블라인드하겠다는 통보 메일.

〈시사IN〉은 박기준 전 검사장에게 게시물 삭제 신청 이유를 물었다. 박 전 검사장은 “스폰서 검사라고 하는 것이 사실이 아니다. 나는 대한민국의 검사였지 스폰서 검사가 아니다. 징계도 검사들에 대한 관리감독을 잘못했다는 것 때문이지 스폰서 검사에 대한 건 아니다. 이렇게 낙인을 찍는 건 옳지 못하다. 26명을 죽인 유영철도 그렇게는 안 한다. 내가 무슨 천형을 받은 것처럼 해놓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제3자의 신고로도 글 삭제할 수 있도록 개정

박 전 검사장은 대리 단체를 통해 아이엠피터가 올린 게시물 두 개에도 삭제 신청을 했다. 아이엠피터는 임시조치 기간에 게시물 복원을 위해 이의신청을 했다. ‘삼성 X파일 떡값 검사 어떻게 살고 있을까?’라는 게시물은 현재 심사 중이며 ‘김영란 법, 범죄를 꿈꾸는 자들에게 유린당하다’라는 게시물은 복원됐다. 삭제 신청자가 게시물 복원에 반대할 경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에 가서 심의를 거치도록 되어 있는데 박 전 검사장의 대리 단체는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박 전 검사장은 울산 남구갑에 새누리당 예비후보로 등록해 총선을 준비 중이다.

아이엠피터처럼 적극적으로 게시물 복원을 요청하는 경우는 드물다. 일반적인 블로그 유저는 더 그렇다. 김유진씨(가명·30)는 책을 읽고 인상 깊은 대목을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다가 임시조치를 당했다. 주진우 〈시사IN〉 기자가 쓴 〈정통 시사활극 주기자〉 중 조용기 목사 부분이었는데 조용기 목사의 대리 단체에서 게시물 삭제를 신청했다. 김씨는 “너무 놀랐다”라고 회상했다. “방문자가 월 40명밖에 안 되는, 혼자서 끄적이는 수준의 블로그였다. 누군가 내 블로그를 보고 있다는 게 섬뜩해 그냥 지워버렸다. 금서도 아니고 시중에서 판매되는 책 내용을 올린 것에 대해 삭제 요청이 들어오니까. 이후로는 블로그에 글을 거의 안 올렸는데 (임시조치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게시물이 임시조치되면 작성자는 포털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소송에 나서는 작성자는 거의 없다. 반대로 블라인드하지 않을 경우, 신고자가 포털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정민영 변호사는 “게시물을 방치했을 때 포털에 책임을 묻는 판례들이 나와 있다. 임시조치를 해도, 하지 않아도 소송을 당할 수 있지만 차단당한 작성자가 소송까지 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 권리침해에 해당하는 글인지와 상관없이 포털에서는 임시조치를 하는 편이 유리하다”라고 말했다. 정보통신망법도 포털이 임시조치 같은 필요조치를 한다면 배상책임을 줄이거나 면제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어서 무분별한 임시조치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연합뉴스울산 남구갑 출마 선언을 한 박기준 전 검사장의 대리 단체는 블로거 글에 대해 삭제 신청을 했다.

아이엠피터는 2016년 1월1일부터 새로운 사이트에 글을 쓴다. 임시조치를 피해 떠났지만 포털 바깥의 온라인 환경도 녹록하지는 않다. 방심위는 2015년 12월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 규정’을 개정했다. 제3자의 신고나 방심위 직권으로 명예훼손성 글에 대해 삭제나 접속차단 등을 할 수 있게 허용됐다. 기존에는 당사자와 대리인만이 신고할 수 있었다.

정부에 대한 비판을 차단하고 온라인상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됨에 따라 방심위는 공적 인물에 대한 명예훼손 심의 신청은 당사자나 대리인만 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공적 인물에는 대통령, 고위 공직자, 국회의원, 공공기관의 장, 대기업 대표이사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공적 인물에 대한 규정은 가이드라인 정도인 내부 준칙으로, 법적 구속력이 없다. 고려대 인터넷투명성보고팀의 손지원 변호사는 “언제든지 위원회 의결로 바꿀 수 있는 사항이다. 예를 들어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의 7시간’처럼 공적인 인물의 사적인 영역에 대해서는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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