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으로 돌아간 쌍차 해고자들
  • 신한슬 기자
  • 호수 434
  • 승인 2016.01.07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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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30일 쌍용차 노·노·사가 합의문을 작성했다. 복직 시점이 명시되지 못하는 등 미흡한 점이 있지만 7년 가까이 온갖 싸움을 해온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에게 복직의 물꼬가 트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정리해고에 맞서 거리로 나왔던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 2413일 만에 공장으로 돌아간다.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정문 앞에 있었던 농성 천막이 정리됐다. 고동민 전국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조합원의 트위터 아이디가 ‘쌍용차 해고 노동자 고동민’에서 ‘쌍용차 복직 대기자 고동민’으로 바뀌었다. 김수경 전국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조합원은 2015년 12월30일 노조 사무실 안 칠판에 이렇게 적었다. “동지들! 7년 동안 정말 고마웠습니다! 몽땅 사랑합니다! 쌍차 지부 일동.”

같은 날 오후 4시, 김득중 전국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과 최종식 쌍용자동차 사장, 홍봉석 쌍용차 기업노조 위원장은 ‘쌍용자동차 경영정상화를 위한 합의서’에 서명했다. 노·노·사 교섭을 시작한 지 11개월 만에 법적 효력을 갖는 합의문이 탄생했다. 최 사장은 “대화와 소통을 통해 갈등을 마무리 짓고 새 출발을 하게 되어 기쁘다”라고 말했다. 김 지부장은 “7년이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쌍용차가 쟁점이 되었다. 이번 합의를 통해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기업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라고 말했다.

합의 사항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회사 측은 신규 인력 수요가 있을 시 해고자 중 복직 희망자를 2017년 상반기까지 순차적으로 복직시키도록 노력한다. 비정규직 해고자 6명 역시 정규직으로 우선 채용한다. 둘째, 복직 희망자가 해고무효 소송 등을 취하하면 회사 역시 손해배상 소송 및 가압류를 즉시 취하한다. 셋째, 복직 대기자와 희생자 유가족의 생계지원금 15억원을 공동 조성한다.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이후 쌍용차지부 조합원과 가족 28명이 세상을 떠났다. 넷째, 노사가 협력해 쌍용자동차의 경영을 정상화한다. 현재 쌍용자동차 평택 공장 가동률은 58%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2015년 12월30일 평택 쌍용차 공장 정문 앞에서 ‘투쟁보고대회’가 열렸다. 파업 당시 경찰이 진압하는 장면 등이 슬라이드 쇼로 상영되었다.

합의서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험난했다. 쌍용차 해고자 김정욱·이창근은 2014년 12월부터 100일간 공장 안 굴뚝에 올라가 회사 측에 대화를 요청했다. 70m 상공의 외침 이후 2015년 1월29일 노사 실무교섭이 처음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회사 측이 복직 시기를 명기하지 않겠다고 버티면서 11개월을 더 끌었다. 김득중 지부장은 8월31일부터 45일간 단식을 했다. 쌍용차지부는 9월23일 쌍용차 대주주인 마힌드라 그룹의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을 만나기 위해 인도로 갔지만 만나지 못했다.

2015년 12월11일, 노·노·사 대표자들이 잠정 합의안을 도출했다. 여기에서도 복직 시점은 명시되지 못했다. ‘노력한다’는 단서 조항은 복직이 확정은 아니라는 의미다. 합의안을 받아 든 쌍용차지부 조합원 총회에서 찬성과 반대가 치열하게 맞섰다. 반대표를 던졌던 한 해고자는 “7년간 싸웠는데 또다시 복직 시기를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한다니 아쉬움이 컸다. 하지만 찬성했던 사람들도 나름 다른 답이 없으니까. 지치기도 하고…”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잠정 합의안은 5표 차이로 통과됐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2015년 12월30일 쌍용차 노·노·사 대표가 ‘쌍용자동차 경영정상화를 위한 합의서’에 서명했다.

경찰의 손배소 등 해결해야 할 문제 남아  

2016년 1월31일, 정규직 해고자 12명과 비정규직 해고자 6명이 공장으로 돌아간다. 복직 대상자들은 2015년 12월31일부터 2016년 1월11일까지 회사 측에 채용 관련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의 법률 대리를 맡은 장석우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합의에 따르면 해고자가 먼저 기간 안에 정리해고 무효소송을 취하해야 입사 지원 대상도 되고 회사 측의 손해배상 소송도 취하된다. 다만 싸움이 7년이나 계속되다 보니 정년이 얼마 안 남은 분들이 있어서 애매한 부분이 있다”라고 말했다. 노조 관계자는 “다음 복직은 언제가 될지 모르다 보니 1차 복직 대상자를 선정하는 기준을 정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회사 측 2명, 기업노조 3명,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2명으로 이루어진 복직점검위원회가 복직 기준을 정할 예정이다.

이번 합의에도 불구하고 쌍용차 해고자에게 청구된 손해배상 소송이 전부 취하되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경찰이 청구해 2심이 진행 중인 13억7000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은 그대로다. 사측이 제기한 소송이 아니기 때문이다. 회사 측이 금속노조를 대상으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도 합의서에 들어가지 않았다.

복직은 결정됐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그래서 ‘승리보고대회’가 아닌 ‘투쟁보고대회’가 열렸다. 12월30일 오후 6시 평택 쌍용차 공장 정문 앞에서 열린 투쟁보고대회 ‘동지들 덕분입니다’에는 겨울비가 내리는 차가운 날씨에도 200여 명이 모였다. 공동행동을 했던 송전탑 반대 밀양 주민과 용산참사 유족 등이 쌍용차 노동자들을 격려하러 왔다.

용산참사 희생자 유족 전재숙씨가 무대에 올라 “저는 이 자리에 서니 눈물이 난다. 이게 기쁨의 눈물인지… 너무 고생들 많이 했다. 우리 아들 같은 동지들, 하루속히 저 공장으로 돌아가서 일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라며 감격했다. 대한문 천막 농성에서부터 쌍용차지부와 연대했던 시민 양창권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연대하면서 매년 겨울이 올 때마다 이번 겨울은 넘기지 말자고 하면서, 매년 그런 겨울을 넘기면서 옆에서 지켜봤는데 이번에는 넘기지 않는 겨울이 왔다. 연대하다 보니 쌍용차 해고자들의 투쟁이 이 땅에 있는 모든 노동자·시민들을 위한 투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무대를 지켜보던 조합원들이 눈물을 훔쳤다.

보고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무대 배경에는 7년간의 투쟁 사진 수백 장이 슬라이드 쇼로 상영됐다. 쌍용차 노동자들 옆을 지키며 현장을 기록했던 사진작가들이 보내준 사진이다. 77일의 옥쇄 파업, 세 번의 고공 농성, 세 번의 단식,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 앞 3보1배, 대법원 앞 2000배, 오체투지, 1인 시위, 대한문 분향소 등의 사진이 하나씩 지나갔다. 양창권씨의 말처럼 “안 해본 것 없이 처절했던 목숨 건 싸움”의 기록들이었다. 김득중 지부장은 “굶고, 올라타고, 바닥을 기고, 노숙 농성을 하면서 그래도 우리가 희망을 잃지 않고 달렸던 것은 연대해준 여러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라며 투쟁보고대회 참석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무대 위에서 발언한 쌍용차의 ‘동지들’은 모두 “마지막 한 명의 해고자가 복직되는 그날까지” 연대를 다짐했다. 김득중 지부장은 “저는 맨 마지막에 복직하겠다고 조합원들에게 약속했다. 여러분들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제가 복직할 때까지 힘을 모아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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