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과학 출판계에서 가장 큰 이슈는 올리버 색스의 사망 소식이었다. 신경 질환에 걸린 환자들의 삶을 섬세하게 살펴보고, 인간의 본질을 집요하면서도 아름답게 캐물어온 그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2015년 2월 〈뉴욕 타임스〉에 쓴 기고문에서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고 고백하고 죽음에 직면한 환자의 마음을 솔직하게 기술해 깊은 울림을 만들었다. ‘의학계의 계관시인’이라 불린 그가 떠나고 누가 남았는가? 깊이 생각할 여유를 찾기 힘든 의학을 사려 깊게 성찰하고 현대 의학을 따져 물어줄 의사가 아직 남아 있는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아툴 가완디 지음김희정 옮김부키 펴냄

아툴 가완디가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은 큰 위안이다. 올리버 색스가 임상 사례 기록에 초점을 맞춘 반면, 아툴 가완디는 질병을 대하는 현대 의학의 태도를 성찰한다. 의학 외에도 윤리학과 철학, 그리고 공중보건학을 공부해서인지, 그는 의료 과실, 현대 의학의 오류 가능성, 인체라는 미지의 영역에 직면해 있는 의사의 고뇌를 기록한다. 그의 첫 저서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불완전한 과학에 대한 한 외과의사의 노트〉와 후속작 〈닥터, 좋은 의사를 말하다〉에서는 풋내기 의사가 수수께끼투성이인 환자의 몸 앞에서 어떻게 권위를 가질 수 있는지, 수많은 오류 가능성 사이에서 현대 의학은 환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죽음’을 통해 이러한 문제의식을 끝까지 밀어붙이면서 정면승부하는 책이다. 인간에게 아름다운 죽음이란 없겠지만 인간다운 죽음은 있다.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단 채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고통스럽게 의학적 싸움을 벌이다 죽음에 이르는 환자들의 모습에서 아툴 가완디는 회의를 느꼈다. 다양한 환자들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그는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특히나 큰 울림을 주는 건, 그가 아버지와 이별하는 과정이다. 의사였던 아버지가 원한 것도 가족과 친구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의학이 인체에 대해 이전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좀 더 높은 치료율로 권위를 가지게 됐지만, 인간다운 죽음을 제대로 지켜주지는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는 의학이 개별 질병을 치료하고 생명을 연장하는 데에만 치중하지 말고, 치료의 외연을 넓혀 노년의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사가 일방적으로 질병의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환자들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경청하고, 할 수 있는 조처가 무엇인지 안내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이다. 차 안에서 연탄불을 피워 일가족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무덤덤하게 듣는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죽음에 관한 책’이다.

기자명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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