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은 유엔이 정한 ‘흙의 해(International Year of Soils)’이다. 제68회 유엔 총회는 매년 12월5일을 ‘흙의 날’로 지정하여 200여 개 회원국과 국제기구, 시민사회가 토양을 보호하고 살리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기로 결의했다. 그 첫 번째 ‘흙의 날’에 한국에서는 역설적이게도 전국의 농민들이 노동자·시민단체들과 연대하여 서울광장에서 흙을 살리자는 행사 대신에 농민·농촌·농업을 살리자는 제2차 농민대회를 개최했다.

<흙 속의 보물 지렁이>최훈근 지음들녘 펴냄

이러할 때, 평생 지렁이 연구와 실천적인 지렁이 사육기술 보급에 전념해온 한 환경학도가 〈흙 속의 보물 지렁이〉라는 실천 연구서를 출간했다. 국립환경과학원에서 독보적인 지렁이 연구에 몰두하여 지렁이 양식의 활성화를 통해 오염된 토양의 폐기물 처리와 흙 살림을 복구함으로써 농가 소득을 증진할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 책이다. 우리나라 지렁이 박사 제1호인 최훈근씨가 그 주인공이다. 지렁이 사육 기술의 원활한 전수를 위해 한국지렁이산업협회를 창립하고 ‘지렁이 과학관’도 운영하면서 지렁이 도시농업 활성화와 음식물 쓰레기 처리의 실천에 앞장서온 길라잡이다. 〈흙 속의 보물 지렁이〉는 무경운(無耕耘) 유기농업의 만능 일꾼, 지렁이 연구서를 세상에 맨 처음 내놓은 찰스 다윈의 혜안에 버금가는 역저라고 말하고 싶다.

지렁이는 토양의 최고 개량사(改良師)이며 토양 비옥화와 환경생태계 복원의 최량의 견인자다. 땅속에 공기와 물의 통로를 만들어 생명의 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토양과 식물 뿌리가 제대로 숨 쉴 틈을 제공하며 떼알 구조를 만들어 흙의 입자를 고르게 해준다. 그리고 땅 위, 땅속의 각종 동식물 사체를 부식토로 변환시키고 지렁이의 오줌과 점액, 분변토로 지상 최고 양질의 유기농 비료 영양분을 공급한다. 이뿐 아니라 각종 동물과 미생물을 배양시키며 강우량과 수분을 조절하여 토양의 보수력을 높이고 홍수와 가뭄에도 변함없이 높은 수준의 농사 수확을 담보해준다. 그래서 친환경 농부들은 땅속에 지렁이가 많은 논밭을 최고로 친다.

쿠바가 미국의 전면적인 경제봉쇄 아래서 오늘날 세계 으뜸의 유기농 천국, 도시농업의 메카로 성장한 것도 농가마다 지렁이 양식 퇴비장을 만들어 대처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쿠바식 지렁이농법이 캐나다·미국·뉴질랜드·오스트레일리아·유럽 선진국들에 널리 보급되고 있다. 쿠바식 도시농업은 지렁이 양식과 분변토의 공급 때문에 가능했다. 지렁이 하면 ‘징그럽다’고 얼굴을 찌푸리는 도시민들은 예부터 지렁이를 토룡(土龍)이라 일컬으며 〈동의보감〉에도 중풍·인후염·두통에 지렁이탕 또는 용봉탕을 처방했음을 알지 못한다. 전 세계 여성 누구나 입술에 바르는 립스틱의 주원료가 지렁이라는 사실을 알면 잘못된 선입견이 조금은 고쳐지려나.

기자명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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