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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분열=필패’라는 신화

2015년 12월13일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해 신당 창당에 나섰다. 정치권 일부에서는 ‘야권 분열=필패’라며 우려한다. 과연 그럴까? 서울 지역의 역대 총선 결과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최광웅 (데이터정치연구소 소장) webmaster@sisain.co.kr 2016년 01월 06일 수요일 제4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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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대다수 국가와 달리 영국은 비례대표제와 결선투표가 없다. 소선거구제만 있는 후진적인 선거제도다. 그 결과 보수당과 노동당이 오랫동안 양당 구도를 형성해왔다. 투표율도 60% 초·중반대로 낮은 편이다. 2015년 5월7일 총선에서도 보수당은 겨우 36.8%의 득표율로 단독 과반수를 확보했다. 이에 비해 30.5%의 지지를 받은 노동당은 35.7%의 의석밖에 차지하지 못했다. 지역 정당인 스코틀랜드국민당은 4.7%의 득표율을 얻었지만 의석은 8.6%를 점유했다. 스코틀랜드 의원 정수 59석 중 56석을 석권했기 때문이었다.

한국도 13~16대 총선은 비례대표 없는 소선거구제였으므로 득표율이 낮은 정당이 의석을 더 차지한 경우가 있었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평화민주당은 19.3%의 전국 득표율로 70석을 얻었다. 23.8%로 59석에 그친 통일민주당을 누르고 제1야당으로 올라섰다. 평화민주당의 이 같은 선전은 호남 37석 중 36석을 싹쓸이한 것이 주된 이유였다. 또한 서울에서 42석 중 17석을 차지해 각각 10석씩을 얻은 민주정의당과 통일민주당을 앞선 것이 주효했다.

출향 호남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서울은 13대 총선 이후 호남을 지지 기반으로 하는 정당이 주로 1위를 차지해왔다. 13~19대 총선에서 현 새정치민주연합 계열 정당이 서울에서 1위 또는 2위를 차지해왔다. 13대는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평화민주당·신민주공화당의 4당 구도였음에도 평화민주당은 출향 호남인의 지지를 기반으로 서울 1당을 차지했다. 득표율 20%대로 당선된 사람도 5명이나 되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1987년 대선에 나선 김대중 후보. 그는 1996년 총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로 정계 복귀했다.  
ⓒ연합뉴스
1987년 대선에 나선 김대중 후보. 그는 1996년 총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로 정계 복귀했다.

14대 총선도 3자 구도였다. 민주당은 서울에서 득표율 37.23%를 올려 34.78%에 그친 민주자유당을 겨우 2% 남짓 앞섰다. 하지만 의석 분포는 민주당 25석, 민주자유당 16석, 신정당 1석 등으로 13대보다 민주당이 격차를 더 벌렸다. 제3세력인 통일국민당이 주로 민주자유당 표를 잠식했기 때문이다. 통일국민당은 서울에서 지역구 후보들이 평균 20.28%를 얻었지만 당선자는 고작 2명에 그쳤다.

1996년 15대 총선 때는 새정치국민회의와 통합민주당 간 분열로 3자 구도가 되면서 신한국당이 서울에서 제1당이 되었다. 당시 정계 은퇴 선언을 번복한 김대중 총재가 이끄는 국민회의는 정치적 명분이 약했다. 제3당인 통합민주당이 국민회의에 도전하는 모양새였다. 정당별 서울 지역구 후보자들의 평균 득표율은 신한국당 36.46%, 국민회의 35.22%, 통합민주당 13.53%였으나 의석 분포는 신한국당 27석, 국민회의 18석, 통합민주당 1석, 무소속 1석이었다. 이처럼 제3당인 통합민주당은 평균 13.53%를 얻었지만 당선자는 이부영 의원 1명뿐이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통합민주당 후보가 25% 이상 득표하며 선전한 성북갑(이철/31.82%), 강서갑(박계동/29.88%), 도봉을(유인태/25.91%)은 오히려 국민회의 신인(유재건·신기남·설훈)이 죄다 당선됐다. 이는 제3세력인 통합민주당의 경쟁력 있는 후보들이 신한국당의 표를 잠식했기 때문이다. 국민회의와 달리 뚜렷한 지역 기반이 없던 통합민주당이 제3세력으로 살아남기 위해 주로 신한국당의 약한 고리를 공략했다는 증거다.

   
 

반면 전통적 야당 텃밭이면서도 통합민주당 후보가 10% 미만의 저조한 득표율을 올린 성동갑·을, 노원갑, 마포갑·을, 구로을, 영등포갑, 동작을, 관악갑 등 9곳은 전패했다. 조세형, 한광옥, 김병오 등 쟁쟁한 국민회의의 중진들이 낙선하는 이변이 벌어졌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통합민주당 후보가 신한국당 지지층을 잠식하지 못한 채 야권의 표가 갈린 탓이 컸다.

비례대표 선거제도가 처음 도입된 2004년 17대 총선도 다자 대결 구도였다. 당시 서울 지역 비례대표 득표율은 열린우리당 37.71%, 한나라당 36.67%, 민주노동당 12.58%, 새천년민주당 8.43% 등으로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에 살짝 앞섰다. 지역구 개표 결과 5% 이내로 당락이 결정된 선거구도 48곳 중 무려 18곳이나 나왔다. 그러나 의석은 열린우리당이 32석 대 16석으로 더블스코어였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역풍이라는 변수도 컸지만, 제3세력 지지자들의 전략 투표가 결정적인 이유였다.

서울 지역 30곳에 출마한 민주노동당 지역구 후보자들은 평균 5.57% 득표에 머물렀다. 정당 비례대표 투표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결과였다. 현 야권 지지층 상당수는 지역구는 열린우리당에 투표하되, 비례대표는 민주노동당에 투표했다. 이는 1등만 당선되는 소선거구제의 문제점을 너무나 잘 아는 지지자들의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서울 지역 총선에서 제3세력 등장 가능성은?

이처럼 역대 총선 결과로만 보면 소선구제가 실시되는 한 서울 지역에서 제3세력이 등장할 가능성은 낮다. 야권의 지지 기반인 호남 출신 유권자들이 현 집권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강력한 야당 한 곳에 표를 몰아주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2015년 12월13일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해 신당 창당에 들어갔다. 그는 혁신을 거부한 세력과는 20대 총선에서 야권연대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정치권 일부에서는 ‘야권 분열=필패’라며 염려를 감추지 않는다. 이번에도 제3세력은 맥을 못 출 것인가.

그러나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 등장할 때부터 안철수 의원의 주된 지지층은 전통적 야권 지지층이 아니었다. 통일국민당-이인제-정몽준 등을 잇는 이른바 제3세력의 계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3김이 정치 전면에서 사라진 후 오히려 더 늘어나고 있다.

여야의 분열이 심해지고 정당과 후보가 난립했던 18대 총선의 경우, 1~2당(한나라당·통합민주당)의 비례대표 득표율 총합이 겨우 62.65%에 머무를 만큼 제3세력의 파이는 커졌다. 인위적인 야권연대로 대부분의 지역구에서 1대1 구도가 만들어진 19대 총선 때도 1~2당 비례대표 득표율은 79.25%에 그쳤다.

안철수 의원이 추진하는 신당은 합리적 보수까지 포괄하는 중도개혁을 표방했다. 14대 통일국민당, 15대 통합민주당처럼 여당 표를 잠식할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전통적 야권 지지층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안철수 신당의 추가 득표력은 어느 정도일까. 과거 서울 지역 대선 결과를 살펴보면 1992년 통일국민당 정주영 17.98%, 1997년 국민신당 이인제 12.77%, 2007년 대권 3수를 한 무소속 이회창이 11.8%를 획득했다.

정권교체를 간절히 원하는 호남 민심은 더 많은 확장성을 가진 세력에게 전략적으로 표를 몰아줄 가능성이 높다. 호남 민심은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에게 전폭적 지지를 보냈으나, 이후 확장성의 한계와 호남 홀대 시비 등의 이유로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지지를 옮겼다가 최근 안철수 의원의 탈당으로 요동치고 있다. 서울의 출향 호남인도 마찬가지다.

앞서 15대 총선 결과에서 보듯 두 야당이 얼마나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내는가도 중요하다. 안철수 신당에서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내세울 경우 야권 승리를 넘어 서울에서 제1당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치는 생물이고, 3당 구도가 곧 야당 필패라는 말도 진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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