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한향란미국산 쇠고기를 유통할 수 있게 된 직후, 경기도 하남시에 위치한 한 수입육 소매점에서 주인이 쇠고기를 진열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유통이 시작됐다. 한국수입육협회는 7월15일 공식 출범하면서 미국산 쇠고기 30% 공동 할인 판매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냉동창고에 보관했던 미국산 쇠고기 5300여 t이 시중에 유통되기 시작했고, 한 수입업체가 비행기로 새로 공수한 ‘LA갈비’도 이달 안에 유통될 전망이다. 그러나 보수 일간지나 일부 수입육업체가 주장하는 것처럼 미국산 쇠고기가 ‘날개 돋친 듯 팔리’는 상황은 아니다.

7월16일 경기도 하남시에 위치한 한 수입육 소매점을 찾아갔다. 미국산 쇠고기를 하루 200만원어치 이상 판다고 주장하는 정육점이었다. 그러나 기자가 30분 가까이 머무르는 동안 이 점포를 찾은 손님은 딱 두 팀이었다. 그나마 이들은 미국산 쇠고기 대신 호주산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구입했다.

정육점 주인은 “비가 오는 날이라 손님이 적다. 오후 5시가 넘으면 손님이 몰려들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오후 5시가 넘은 뒤에도 손님은 몰려들지 않았다. 서울시 강동구 길동사거리에 위치한 미국산 쇠고기 전문 식당 ‘앵거스 소고기 전문점’에도 손님은 많지 않다. 지난해 10월 이전만 해도 저녁이면 자리가 없어 서 손님을 못 받을 만큼 성업하던 식당이다. 이 식당 사장은 “지난 몇 달 동안 폐점 위기에 처할 만큼 손님이 뜸했다. 지금도 장사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다만 열흘 전부터 예전 단골 중심으로 손님이 조금씩 늘어 희망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입육업체도 아직은 추가 물량을 주문하지 않은 채 눈치를 보는 처지다. 한국수입육협회 창립총회장에서 만난 수입육업체 대표들은 “아직 추가 주문을 하지 않았다. 소비자 반응이나 시장 추이를 보고 주문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미국산 쇠고기 판매가 조금씩 살아나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대다수 수입업체는 아직 시장을 저울질하는 눈치다.

현재 미국산 쇠고기 판매에 적극적인 쪽은 지난해 10월에 수입이 금지되면서 발이 묶였던 업체이다. 이들은 미국산 쇠고기를 냉동창고에 9개월 이상 보관하면서 컨테이너 한 개당 1200만~1500만원가량 손해를 보았다. 컨테이너 30개 분량이나 묶였다는 한 수입육업체 대표는 “그동안 날린 돈만 3억~4억원이다”라고 하소연했다. 이들 업체 처지에서는 보수 언론을 동원해 ‘미국산 쇠고기가 잘 팔린다’는 여론을 만들고, 할인해서라도 물건을 소진해야 할 형편인 것이다. 수입육업체인 하이푸드 박봉수 대표는 “지금은 미국산 쇠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사람이 많지만, 막상 먹어보면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불신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만큼 싸고 우리 입맛에 잘 맞는 쇠고기는 없다. 2010년쯤이면 국내에서 소비하는 미국산 쇠고기 양이 2003년 이전 수준으로 회복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수출업체는 적고 수입업체는 넘친다 

미국산 쇠고기 문이 열리자 소비자의 관심은 유통으로 옮겨갔다. 선명하지 않고 복잡한 유통구조 아래서 미국산 쇠고기가 한우로 둔갑하곤 하므로 마음을 놓기 어려운 것이다. 주부 김효정씨(38·서울 마포구)는 “정육점에서 파는 쇠고기가 한우인지 미국산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가정에서야 고기를 아예 먹지 않을 수 있다지만 학교 급식으로 나온 장조림은 호주산인지 미국산인지 확인할 수 없으니 불안하다”라고 말했다. 환경운동연합, 함께하는 시민행동 등 40여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소비자 안전행동 지원 네트워크’가 미국산 쇠고기 불매운동에 돌입하고, ‘광주·전남 지역 시국회의’가 미국산 쇠고기를 “팔지도, 사지도, 먹지도 않겠다”라는 3불 운동을 벌인 배경도 비슷하다.

미국산 쇠고기가 국내 소비자에 전해지기까지는 몇 단계를 거친다. 미국산 쇠고기의 80%가량은 타이슨푸드, 카길미트솔루션 같은 미국의 대형 수출업체 4곳이 공급한다. 이들 기업은 미국 각 지역 농장과 계약을 하고 소 사육을 관리한다. 계약 농장에서 공급한 소를 도축·가공한 뒤에 미국 내외에 공급한다.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 시장 80%도 이들 기업이 좌우한다. 이들은 한국에 지사를 설립하고 국내 수입업체에 물량을 나눠준다. 미국산 쇠고기를 주로 공급하는 미국 수출업체는 열 손가락 안에 꼽히지만, 이 물량을 받아 국내에 유통하려는 국내 수입업체 수는 100곳이 넘는다.

게다가 미국산 쇠고기는 호주산이나 뉴질랜드산과 달리 한우와 가장 비슷한 맛을 내 가격 대비 시장 경쟁력이 높다. 수입육 유통업체 굿팜 임윤영 대표는 “2003년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병하기 전만 해도 미국산 쇠고기가 한국 수입육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했다. 풀을 먹이는 호주나 뉴질랜드 쇠고기와 달리 미국 소는 한우처럼 옥수수 같은 곡물을 먹이기 때문에 마블링이 좋고 한우와 맛이 비슷하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수입육업체마다 미국산 쇠고기를 주력 상품으로 삼았고, 미국산 쇠고기 물량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국내 수입육업체의 경쟁력이었다”라고 전했다.

이런 까닭에 미국산 쇠고기는 ‘구매자’ 중심이 아닌 ‘판매자’ 중심으로 매매되어 왔다. 미국 수출업체들은 ‘패밀리’로 등록한 국내 수입육업체에만 물량을 공급하므로 국내 수입육업체는 ‘패밀리’에 끼기 위해 경쟁을 벌여야 한다. ‘패밀리’에 끼지 못한 업체는 미국 내 다른 수출업체나 무역상을 통해 고기를 수입해야 하므로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국내 수입업체를 통해 확보된 미국 쇠고기는 도매상을 거쳐 육가공업체와 급식업체 같은 대량 소비처, 음식점, 정육점, 대형 유통업체 등을 통해 소비자에게 전해진다(61쪽 도표 참조).

미국산 쇠고기가 한우로 둔갑할 수도

수입 쇠고기가 유통되는 과정에서 미국산이 한우로 둔갑할 가능성은 없을까. 미국산 쇠고기가 한우로 둔갑한 사례는 빈번하다. 오죽하면 “국내에서 판매하는 이동갈비 대부분이 미국산 쇠고기”라는 것이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일까. 수입육업체에서 도매상이나 소매상으로 물건을 바로 넘기기도 하지만 수입육업체 대다수가 영세한 규모이다 보니 유통과정 중 ‘나카마’로 불리는 중간 유통업자가 끼어든다. 축산시장 주변에 사무실만 얻어놓고 국내 수입업체나 도매상 간에 거래를 주선하고 중개수수료를 받는 이들이다. 이 과정에서 무자료 거래가 이뤄지고, 그로 인해 수입 쇠고기가 국내산 한우로 둔갑하곤 한다. 특히 한우와 맛이 비슷한 미국산 쇠고기는 한우로 둔갑시키기 쉽다. 

ⓒ시사IN 한향란미국산 쇠고기가 시중에 풀렸지만 전문 식당(위)을 찾는 손님은 아직 크게 늘지 않았다.
30개월 이상 된 미국산 쇠고기가 한국에 상륙할 가능성은 없을까. 한·미 쇠고기 협상에 따라 한국에 수출되는 미국산 쇠고기는 30개월령 미만임을 확인하는 품질체계평가(QSA)를 거쳐야 한다. QSA 마크가 찍히지 않은 미국산 쇠고기는 국내 검역당국이 반송 조처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QSA 프로그램 이행 여부는 미국 민간 기업 의지에 달려 있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많다. 시장의 80%를 차지하는 대형업체는 자발적으로 QSA를 충실하게 이행할 거라고 기대할 수도 있지만, 소규모 업체의 거래를 통해 수입되는 20% 물량에 대해서는 더 불안할 수밖에 없다. 수입육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뉴욕 등지에는 한국 업체와 거래하는 소규모 축산 무역업자가 많다. 국내에서 미국산 쇠고기 경쟁이 치열해지면 이들이 어떤 편법을 쓸지 알 수 없고, 국내 수입육업체는 그저 믿을 뿐 직접 확인하거나 검증할 방법이 없다”라고 털어놓았다.

더욱이 미국에서는 쇠고기의 월령 구분 없이 등급만 나누는 것이 유통 관행이다. 미국산 쇠고기는 월령과 상관없이 프라임·초이스·셀렉트 등 8가지 등급으로 분류해 시중에 유통한다. 물론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는 질이 떨어져 주로 셀렉트 이하 등급을 받는다. 셀렉트 이하 등급을 받은 쇠고기는 분쇄육으로 만들어져 햄버거 패티용으로 팔리는 것이 보통이다. 미국의 이런 유통 상황에서 30개월 이상 된 미국산 쇠고기가 국내로 반입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쇠고기 안전, 미국 수출업체 양심에 달렸다

7월11일, 정부는 식품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수입 쇠고기가 한우로 둔갑하는 것을 막기 위해 쇠고기 이력 추적제도를 2009년 6월부터 전면 시행하는 식의 대책이다. 쇠고기와 돼지고기 등 식육을 수입·가공·판매하는 업체가 고기를 팔 때 거래명세서를 작성해 구매자에게 주도록 의무화하겠다는 것이다. 또 바코드 하나로 수입 육류의 이력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수입 축산물 ‘유통단계별 이동경로 추적시스템’도 구축하겠다고 한다. 한국수입육협회 김태열 회장도 “정부와 적극 협조해 유통 이력 시스템 등을 만들어 미국산 쇠고기가 한우로 둔갑하거나 수입이 금지된 SRM 부위가 국내에 유입되는 일이 없도록 업계가 노력할 것이다. 수입 쇠고기에 대해 너무 불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당부했다. 그는 또 만약 SRM 부위나 30개월 이상 된 미국산 쇠고기를 부정 수입해 유통하는 업체가 있으면 검역소나 관세청을 통해 명단을 입수해 언론에 공개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모두 수입 쇠고기가 국내에 상륙한 뒤의 대응책이어서 국내에 들어오기 전 벌어지는 일까지 통제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인의 식탁 안전을 미국 수출업체의 양심에 기대는 수밖에 없는 처지다.

기자명 안은주 기자 다른기사 보기 anjo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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