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에 문제가 있다고 학력고사를 부활해야 할까. 아니면 부득불 수능과 학력고사를 동시에 시행해야 할까. 얼마 전 법무부의 사법고시 폐지 4년 유예 방침 발표 이후 사시 존치를 둘러싼 사회적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일견 ‘로스쿨’ 대 ‘사법고시’ 간의 충돌로 보이지만, 이러한 구조는 전혀 생산적이지 않다. 한국 사회는 짧게는 10년, 길게는 김영삼 정권 시절부터 법조인 양성 방식의 변화를 모색했고, 그 결과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갈등은 도입 7년이 지났는데도 왜 여전히 초기부터 문제점으로 지적되어온 부분들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지에 대한 분노로 이동해야 한다. 로스쿨 등록금이 비싸다는 비판은 왜 등록금을 낮추는 방안으로 연결되지 않았을까? 입학 과정의 투명성을 강화하자는 논의는 왜 없었을까? 로스쿨에 대한 비판이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사시 존치’와 같은 닫힌 논의로만 귀결되는 이유 중 하나는 한국 사회에서 로스쿨을 ‘자신의 성과’라고 내세우며 제도의 안착과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집단이 사실상 없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하에서 로스쿨이 도입되었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이 제도를 본인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노무현 정권 시절 법무부 장관을 지냈던 이는 한 강연에서 “내가 장관이 되었을 때는 이미 로스쿨이 결정된 이후라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등록금이 비싼 것이 좀 문제라 생각한다”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는데,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의 한가한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매해 2000명이 입학하고, 1500명의 법조인이 양성되는 제도에 대해 새누리당도 당론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시민사회라고 다를까. 우리 사회의 중요한 문제에 대해 어김없이 의견을 내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역시 로스쿨에 대해서만은 “입장이 없음”이 입장이었다. 그나마 로스쿨 도입에 적극적 역할을 해온 참여연대만이 최근까지 꾸준한 실태조사와 견해 등을 발표해왔으나, 예전의 동력은 사라진 지 오래다. 참여연대 활동가가 사석에서 “로스쿨에 대한 책임을 우리라도 지려고 한다”라고 토로한 것은 절박함의 표현이었다. 로스쿨을 운영하는 대학과 교수들조차 어느덧 제도의 충실한 운영자가 되어버렸다. 외부의 비판에 민감하게 응답하고 내부를 개선할 방안을 고심하는 로스쿨 교수는 드물다. 이러한 무책임의 결과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왜곡된 갈등이다..

입학생의 인적사항을 홈페이지에 모두 공개하는 하버드 로스쿨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이명익〈/font〉〈/div〉12월10일 한 고시생 모임이 ‘사법시험 존치’에 찬성한다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사시 존치냐 폐지냐를 두고 싸울 일이 아니다. 로스쿨을 그렇게 바꾸면 된다. 등록금 문제만 하더라도 거점국립대학들의 등록금을 반액 이하로 낮추는 방안, 공익활동을 전제로 후불로 받는 방안 등을 당장 검토할 수 있다. 교육부는 지난 5월 ‘로스쿨에 특별전형으로 입학한 저소득층 학생 300여 명의 등록금을 전액 면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는데, 바로 이런 식의 개입과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하버드 로스쿨은 홈페이지에서 입학생의 인적사항을 모두 공개한다. 학부 학점, 로스쿨 입학시험(LSAT) 점수부터 출신국, 출신 학부, 인종까지 내보이며 구성원의 ‘다양성’을 자랑한다. 내일이라도 시작할 수 있는 방안이다. 단일한 시험으로 한 줄로 세워 자르는 사법고시보다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에게 법조인이 될 기회가 열렸는지를 증명할 수 있는 통로이며, 이런 방식으로 다양성이 더욱 확보될 것이다.

사법고시 존치를 둘러싸고 사시 준비생들이 삭발을, 로스쿨 재학생들은 수업 거부에 자퇴서까지 제출하고 있다. 법원과 검찰의 독립성이 뒤흔들릴 때 1인 시위 한번 한 적 없는 예비 법조인들이 본인들의 이해관계 앞에서만 치열하다는 비판을 마음에 새겨야 하겠지만, 자신들의 미래가 흔들릴 때 누구나 절박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강조컨대 화살표가 바뀌었으면 한다. 로스쿨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로. 이 과정 속에서 로스쿨 제도의 개선과 변화를 추동하는 젊고 새로운 ‘집단’이 탄생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기자명 임재성 (평화 연구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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