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덕후’로 이끄는 한 권의 책
  • 고종석 (작가·칼럼니스트)
  • 호수 430
  • 승인 2015.12.19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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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한글 전용 문장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건 한자 지식이 배경으로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한국어 어휘의 과반이 한자어다. 교과서 한글 전용 문제와 별개로 한자를 가르쳐야 한다. 꼭 필요한 2000자 내외를 익히면 된다.

소리를 그릴 수 있을까? 세상의 모든 소리를 그릴 수는 없겠지만, 사람의 말소리는 그릴 수 있어. 어떻게? 우리는 매일 소리를 그리고 있어. 그게 글자지. 그러니까 문자는 소리의 그림이야. 우리 행성에서 쓰는 자연언어는 수천에 이르지만, 문자는 그렇게 많지 않아. 고대에나 중세에 쓰이다 사라진 문자들(예컨대 게르만족이 예전에 쓰던 룬문자나 만주어를 표기하던 만주문자)까지 포함하면 몇십 종에 이를지 모르겠지만, 지금 사용되는 문자는 아무리 늘려 잡아도 스물을 넘지 못할 거야. 가장 널리 쓰이는 문자는 잘 알다시피 로마문자지. 그런데 문자들 사이에 우월이 있을까? 있다고 생각하는 게 문자학자들 다수의 의견이야. 문자 발달사가 넓은 의미의 그림문자(한자 같은 뜻글자를 포함하는!)에서 일본의 가나 같은 음절문자를 거쳐 로마문자 같은 음소문자로 이어져왔다는 건 중학교 때 이미 배웠지. 물론 문자의 발달 단계가 개별 문자의 형성과 시간적으로 대응하는 건 아니야. 더 발달된 형식의 음소문자인 그리스문자는 덜 발달된 형식의 음절문자인 가나보다 먼저 만들어졌으니까.

그런데 이런 문자의 발달 단계로 문자들 사이의 우월을 정하는 게 꼭 옳지만은 않아. 예컨대 문자의 발달 단계로 보면 한자는 ‘원시적’ 문자라고도 할 수 있지만, 중국어를 표기하는 데 한자만큼 훌륭한 문자는 없어. 그러니까 로마문자나 키릴문자 같은 음소문자가 한자 같은 표의문자보다 반드시 우수한 문자라고 주장하는 건 경솔한 일이야.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이지영 그림</font></div>

앞서 얘기했듯, 문자는 소리의 그림이야. 꼭 상형문자만 그런 게 아니라 음절문자나 음소문자도 마찬가지지. 그림은 보통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그럼 가장 아름다운 문자는 뭘까? 눈에 보기 좋은 문자 말이야. 취향이 제각각이니 사람마다 대답이 다르겠지. 내 눈엔 아랍문자랑 키릴문자가 예뻐 보여. 적어도 한글보다는 예뻐 보여. 한글은 한자처럼 네모지게 모아쓰기 때문에 예쁘단 느낌이 덜해. 그 말은 한자 역시 예쁘단 느낌이 덜하다는 뜻이야. 그런데 참 이상하지? 한자와 가나가 섞인 일본어 문장을 보면 정말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어. 그 그림이 아름답다는 뜻이야. 한자도 가나도 그 자체로 썩 예뻐 보이진 않는데, 그 둘이 섞이면 참 아름다워 보여. 그냥 내 별난 취향이겠지.

성격이 전혀 다른 문자체계를 섞어서 쓰는 언어는 일본어밖에 없어. 예전엔 한국어도 그랬지만, 이젠 한글 전용이 대세여서 한자 혼용문을 보기 어렵지. 옛 유고슬라비아에서는 공용어인 세르보크로아티아어를 표기하는 데 로마문자와 키릴문자를 공용했지만, 글 전체를 로마문자로만 쓰든지 키릴문자로만 쓰든지 했지, 두 문자체계를 섞어 쓰진 않았어. 물론 이건 공식 표기법에서 그렇다는 거야. 사적인 글에서야 여러 문자들을 얼마든지 섞어 쓸 수 있겠지. 예컨대 “嫉妬는 나의 power야” 하는 식으로. 혹시 인용문의 한자를 모르는 이가 있나? ‘질투’야.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기형도 시인의 시는 다 아시지?

‘嫉妬’라는 그림이랑 ‘질투’라는 그림의 느낌이 퍽 다르군. 최근에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교육계가 티격태격하고 있나 봐. 나는 병기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는 쪽이야. 그렇지만, 한국어 문장에 한자를 병기하든 하지 않든, 초등학교 때부터 한자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해.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부터 한글 전용을 한다는 것과 초등학교 때부터 한자를 가르친다는 것은 서로 아무런 모순이 없어. 왜 한자를 가르쳐야 하냐고? 그건 무엇보다도 한국어 어휘의 과반이 한자어이기 때문이지. 우리가 한글 전용 문장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건, 한자 지식이 배경으로 깔려 있어서 그런 거야. 이 말에 반대할 사람이 많겠군. 그렇지만 여기서 논쟁을 하고 싶지는 않아. 그걸 떠나, 나는 한자에 매혹된 사람이어서, 논쟁이 되지도 않을 거야. 한자가 얼마나 매력적인 문자체계인지, 그리고 한국어 사용자들이 왜 어려서부터 한자를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내 의견이 궁금하면, <감염된 언어>라는 책에 실린 ‘버리고 싶은 유산, 버릴 수 없는 유산’이라는 글을 읽어줘. 개마고원이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야. ‘버리고 싶은 유산, 버릴 수 없는 유산’이라는 글을 읽고 나서도 한국인들이 한자를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 거야. 물론 꼭 필요한 2000자 내외를 익히자는 얘기지, 수만 자를 다 배우자는 얘기가 절대 아니야!

나는 한글전용론자야. 그렇지만 한글이 가장 뛰어난 문자인 것은 한국어를 표기할 때뿐이라고 생각해. 대부분의 유럽어를 표기하는 데 가장 뛰어난 문자는 로마문자고, 중국어를 표기하는 데 가장 뛰어난 문자는 한자지. 한글전용론자들은 한글이 얼마나 과학적인 문자고, 한자가 얼마나 뒤처진 문자인지를 강조하곤 해. 그렇지만 한글과 한자를 나란히 비교해서 어느 쪽이 더 뛰어난 문자인지를 판단하기는 어려워. 한글이 한자보다 뛰어나다는 말은 비유컨대 스도쿠(數獨)가 바둑보다 더 우월한 게임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해. 제가끔 장단점이 있지만, 한자의 세계는 한글의 세계와 비교할 수 없이 깊은 역사와 넓은 세계를 지녔지. 나는 스도쿠보다는 바둑이 더 우월한 게임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니까, 결국 한자가 한글보다 더 뛰어난 문자체계라고 말한 셈이군. 근거를 대라고 하면, 나는 다시 <감염된 언어>를 읽어보라고 말할 수밖에 없어.

5만 자 이상의 한자를 다 아는 사람은 없다

‘덕후’라는 말은 다 아시지? 일본어 ‘오타쿠’에서 나온 말. 덕후가 실천하는 연구와 잘난 척을 ‘덕질’이라고 하는 것도 아시지? 군사 문제에 빠삭한 사람은 ‘밀덕’이라고 하고, 정치 문제에 빠삭한 사람은 ‘정덕’이라고 하지. 사실 한 분야의 덕후가 되는 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거야. 나는 불행하게도 아무 분야에서도 덕질을 못하는 ‘잉여’야. 그렇지만 혹시라도 한자의 덕후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 읽히고 싶은 책이 하나 있어. 여기서 ‘한자의 덕후’라는 건, 존재하는 5만 이상의 한자를 다 알고 있는 사람을 뜻하는 게 아니야. 그런 사람은 예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거야. 그리고 어느 분야에서나 ‘덕후’는 그런 평면적 지식을 그득 지닌 사람을 뜻하는 게 아니야. ‘밀덕’이라고 해서 세상의 모든 무기를 다 알고 있을 필요는 없어. ‘정덕’이라고 해서 세상의 모든 정치인 이름을 외고 있을 필요는 없어. 무기의 발달이 전쟁 양상을 어떻게 바꿨고, 그것이 국제정치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이해하는 사람이 ‘밀덕’이지. 사소한 에피소드가 선거 결과를 어떻게 뒤집었고 그것이 국제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아는 사람이 ‘정덕’이지. 그런 의미의 ‘한자 덕후’가 되고 싶은 이들에게 나는 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靜)라는 일본인 학자가 쓴 <한자의 세계>라는 책을 권해. 고인덕이라는 중문학자가 번역했고, 솔출판사에서 나왔어.

당연한 얘기지만, <한자의 세계>는 한자 학습서가 아니야. 이 책은 한자의 기원에서 시작해 오랜 세월 이 위대한 문자체계가 중국의 사회·문화·정치·경제와 어떻게 상호작용했는지를 살펴. 저자가 일본인인 만큼, 중국만이 아니라 일본의 예도 드물지 않게 나와. 일본어랑 일본 역사를 조금이라도 알면 읽기가 훨씬 수월하겠지만, 일본어와 일본 역사를 전혀 모르는 나도 거뜬히 읽어냈으니 겁낼 건 없어. 한자의 기원인 갑골문과 금문의 문자 자료도 매우 풍부해서, 이 책을 읽으면 곧 한자에 대해 ‘덕질’을 시작할 수 있어. 물론 이 책은 ‘한자 덕후’로 가는 첫걸음일 뿐이야. 덕후가 되는 길은 멀고 험난해서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으로는 절대 이룰 수 없어. 그 책이 설령 <한자의 세계> 같은 노작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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