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1년 쉬랬더니 잠만 자던데요?
  • 이수진 (심리상담가·‘꽃다운친구들’ 대표)
  • 호수 430
  • 승인 2015.12.16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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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청소년들이 살아갈 세상에서 전성기는 60~70대일지도 모른다. 20대 초반에 아이들의 삶이 결판날 것처럼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충분히 쉬어본 데서 나온 에너지가 아이의 내면을 바꿀 수 있다.

2015 사교육 탈출

학교 1년 쉬랬더니 잠만 자던데요?

10대에게도 안식년이 필요해

 

중학교를 졸업한 딸을 고등학교에 바로 진학시키지 않고 1년간 쉬게 했다. 그리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열여섯 살 청소년을 대상으로 1년간 방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교육단체 ‘꽃다운친구들’을 만들었다. 이력을 보면 이수진씨야말로 ‘길을 찾다 길이 된 사람들’이라는 강의 부제에 최적화된 강사다. 그녀는 어쩌다 이런 ‘무모한 도전’을 감행하게 된 것일까. 11월24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진행된 강의를 지상 중계함과 더불어 한국형 인생학교들을 소개한다.

 

일관성 없는 양육이 가장 문제라던데, 이 말 저 말에 흔들리는 ‘널뛰기 맘’이었던 나야말로 나쁜 엄마였다. 아이가 어릴 적에는 문제가 없었다. 내 기억엔 ‘신기한 나라’ 따위 교재가 쏟아졌던 것이 첫애가 7~8개월에 접어들던 무렵이었다. 효과가 궁금하긴 했지만 몇십만원짜리 교구 세트부터 사야 한다는 말에 망설임 없이 고민을 접었다. 아이가 초등학생 때도 ‘형편을 넘어서는 사교육은 시키지 않는다’는 소신을 지켰다.

그런데 아이가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불안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중학교 가면 배우는 내용이 어려워진다던데’ 하는 옆집 엄마들 말이 귀에 쏙쏙 들어오면서, 인근에서 가장 비싸다는 영어학원에 아이를 등록시키기도 했다. 비싼 학원일수록 외우라는 단어 수도 많아지는지, 아이는 학원 버스를 타기 직전까지 단어장을 들고 낑낑댔다. 그날 단어시험에서 틀리면 다 맞을 때까지 학원에 붙들려 있어야 한다고 했다. 어느 날부터 아이가 학원 갈 시간만 되면 배가 아프다는 둥 온갖 핑계를 대기 시작했다. 나는 나대로 마음이 지옥 같았다. 어떻게든 아이를 학원에 보내야 본전은 뽑을 테니.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이명익</font></div>아이 덕분에 ‘경단녀’였던 이수진씨에게도 직업이 생겼다. ‘꽃다운친구들’이라는 언스쿨링(unschooling) 교육과정을 만들었다. 이씨는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부모 역할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 혹시 아이와 헤어지고 싶었던 분 계신가?(웃음)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아이가 예쁜 구석이 있다. 그런데 중학교 이후로는 아이가 부모 영역에서 벗어나면서 부모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느껴진다. 그 소중하고 어여쁘던 존재가 6개월만이라도 헤어져 살고픈 존재가 되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부모라는 게 아이를 낳아 기른다고 그냥 되는 게 아니구나’ 하는 자괴감도 들었다.

부모교육을 찾아다니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매년 개설하는 등대지기학교도 그즈음 수강하게 됐다. 나는 별명이 ‘뇌심녀’다. 뇌가 심플한 여자라는 뜻이다(웃음). 강의에서 들은 좋은 말은 곧바로 실천해본다. 당시 인상적이었던 것이 “아이에게 효과적으로 개입하고 싶으면 관찰부터 하라”는 신을진 선생(한국사이버대 교수)의 말이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를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씻어” “숙제해” 따위 평소 하던 잔소리는 멈췄다. 이렇게 ‘감시’ 대신 ‘관찰’을 했더니 신기하게도 마음이 조금씩 움직이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 우리가 왜 감탄했던가. 그저 손가락 발가락 다 있고 건강한 것만으로도 감격하지 않았던가. 그때 그랬듯 ‘아이가 참 많이 컸구나. 학교에도 잘 다니고 있고 이렇게 집에 무사히 돌아와줬구나’ 싶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부모교육에서 내주는 숙제 중 아이의 장점을 찾아보라는 것도 있었다. 5개도 찾기 어려울 텐데 무려 30가지를 찾아보라고 했다. 이런 숙제를 하려니 관찰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었다. 그 결과 이런 장점들을 찾아냈다. “우리 아이는 마음만 먹으면 책상 정리를 아주 잘한다.” 뒤집어 말하자면 평소에는 책상이 엄청 지저분하다는 얘기다(웃음). 끼니를 잘 챙겨먹지 않는 것도 뒤집어 생각하니 “우리 아이는 배가 고프다고 엄마를 조르지 않는다”는 장점으로 둔갑했다. 아이 때문에 힘들 때면 이렇게 뒤집어보는 경험을 해보시라고 강추하고 싶다. 사소하지만 아이를 보는 눈에 큰 변화가 생긴다.

“공부의 주인은 아이”라는 당연한 명제도 새삼 되새겼다. 시험을 망치고 오면 가장 속상한 게 누굴까? 당연히 아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부모가 더 슬퍼하고 속상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서 “만날 게임만 하더니 그럴 줄 알았다” “내가 너 땜에 못 살아”라고 퍼붓는다. 공부의 주인은 아이인데도, 부모가 공부를 대신할 기세로 나선다. 이런 잘못을 범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노력해야 했다. 쉽지는 않았다. 아이가 엉망인 시험점수를 받아오면 가슴 한구석이 싸해진다. 그래도 이를 억누르며 “참 속상하겠다. 너도 한다고 했는데”라고 아이를 격려했다. 시험을 잘 봤을 때는 “네가 참 기쁘겠다. 네가 좋아하는 걸 보니 나도 기쁘다”라고 했다. 이렇게 공부나 시험을 부모가 아닌 아이의 일로 만들면서 아이와의 관계가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관계를 꺼림칙하게 만들던 마음속 필터가 조금씩 옅어진 것이다.

쉬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서 전성기는 몇 살쯤일까?’라는 질문 또한 생각을 바꾸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됐다. 평균수명 120세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은 어쩌면 60~70대에 삶의 전성기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부모들은 20대 초반에 아이들의 삶이 결판날 것 같은 기세로 달려든다.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명실상부한 평생학습 시대가 펼쳐진다는데, 배우는 게 지겨워지면 아이들이 어떻게 60~70세까지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선단 말인가? 이렇게 생각을 바꾸고 나니 10대는 평생을 마라토너로 뛰어야 할 아이들이 무슨 신발을 신을지 탐색하는 시기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아이를 잠깐 쉬게 해주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졌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올라갈 때, 또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년여를 쉬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진로를 탐색한다는 아일랜드 전환학년제나 영국 갭이어(Gap Year) 프로그램 등의 얘기를 들은 뒤 이런 생각이 더 강해졌다.

최근에는 이런 과정을 도입해 개교했거나 개교를 준비 중인 학교가 여럿 생겼다(10대에게도 안식년이 필요해 <표> 참조).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내가 첫애에게 1년간 방학을 선물해주고 싶다고 생각한 5년 전만 해도 이런 프로그램이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남편을 설득하고 아이와도 중2 때부터 대화를 나눴다. “유럽에는 1년간 휴학하는 프로그램이 많대. 여행도 하고, 진로도 탐색하면서. 너도 한번 해볼래?”라고. 아이의 첫 반응은 “그럼 학교 안 가도 돼?” 하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나중에는 “그럼 나중에 복학해서 어린애들이랑 학교를 같이 다녀야 하잖아. 싫어”라고 했다. 그렇게 2년여를 승강이한 끝에 아이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1년간 방학 기간을 갖기로 최종 결심했다. 기대와 망설임이 팽팽하게 교차하는 가운데 부모가 “괜찮아, 안심해”라며 살짝 등을 떠민 셈이다.

그렇게 1년을 쉬는 동안 아이는 대단한 일을 한 것이 아니다. 처음엔 이참에 진로를 좀 찾아봤으면 하는 부모 욕심도 있었지만, 아이는 그저 집에서 놀 뿐이었다. 아빠가 출장 갈 때 가끔 여행 삼아 동행하는 정도가 특별한 이벤트였다. 남은 시간에는 집에서 설거지도 하고 강아지도 돌보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잠자는 것으로 때웠다. 오죽하면 아이 스스로 ‘너무 잠을 자서 피부가 좋아졌다’고 할 정도였다.

그랬던 아이가 지금은 고3 입시생이 되어 있다. 그 1년이 아이에겐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최근에 한 인터뷰에서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보이진 않지만 내면의 변화가 있었어요. 1년이 통째로 비면서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가족과의 관계도 좋아졌어요.” 그러면서 이런 말도 했다. “내 사춘기 감정을 혼자 소화해내면서 내 감정이 어디서 오는지,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 사람인지 저 자신을 이해하고 제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됐어요.” 그런가 하면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회원 아들로, 우리 아이와 비슷한 시기에 1년을 쉰 친구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전에는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정말 고민이 많았는데, 그 고민을 덜하게 되었어요. 겁을 안 내도 된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이 과정에서 일명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였던 나도 새 일을 찾았다. 아이가 쉬는 동안 청소년 상담을 공부한 데 이어 지금은 ‘꽃다운친구들’이라는 언스쿨링(unschooling) 교육과정을 준비 중이다. 언스쿨링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도 아니요, 집에서 부모가 가르치는 것도 아니다. 아이 스스로 무엇을 공부할 것인지 결정하고 실천에 옮기는 교육 방식이다. 이를 위해 지난 9월 꽃다운친구들 설명회를 갖고 함께하겠다는 11개 가정을 모집했다. 중학교 졸업을 앞둔 11개 가정의 아이들은 내년 1월4일 방학식을 갖고 1년 방학에 접어들게 된다. 이 기간, 일주일에 2일은 함께 모여 공동수업을 하고 3일은 각자 집에서 가족수업을 하게 된다.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려 애쓰기보다 정말 쉬어보는 것, 심심해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쉬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사실 우리 가족 또한 아이가 1년 방학을 끝낸 직후에는 ‘우리가 잘한 건가?’ ‘1년을 너무 느슨하게 보낸 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계량화할 수 없는 그 어떤 성과가 있었음을 느낀다. 이제 스무 살이 된 아이는 또래들과 확연히 다르다. 그것은 아마 충분히 쉬어본 데서 나온 에너지일 것이다.

가족수업은 아이를 가르치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 시간에 부모도 자신을 돌아보며 중년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지 공부하자는 얘기다. “사랑은 지각 있게 주는 것이고, 지각 있게 주지 않는 것이다”라고 스콧 펙은 말했다. 놀라운 교육열을 지닌 대한민국 부모들이 새겨들어야 할 얘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진짜 사랑한다면 부모도 아이도 함께 성장하는 게 맞다. 아이가 독립해서 혼자 걸어갈 수 있게끔 성장시켰다면 부모는 아이를 제대로 사랑한 것이다. 나아가 그 과정을 통해 부모 또한 성장했다면 더더욱 진짜 사랑을 한 것이다. 이 길을 앞으로 꽃다운친구들(kochin.tistory.com)과 함께 걸어가 보려 한다.

정리·김은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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