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팔이 끝판왕!’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대한 누리꾼들의 평가다.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 〈응답하라 1988〉이 추억의 시계를 1980년대로 돌려놓았다. 소방차와 김완선의 댄스음악이 흘러나오고 그 시절 광고 CM이 다시 나오는가 하면, ‘반갑구먼 반가워~’ 하는 그 당시 유머가 회자된다. 1980년대 후반 스타일이 패션계에서 복고 열풍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CJ E&M의 킬러 콘텐츠 중 하나다. 〈응답하라 1997〉을 시작으로 〈응답하라 1994〉를 거쳐 〈응답하라 1988〉로 오는 동안 꾸준히 진화했다. 세 편의 시리즈는 ‘실험’이 ‘대세’가 되고, 대세가 ‘전설’이 되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정통 드라마 제작진이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 제작진이 드라마의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냈다는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2012년 방영된 〈응답하라 1997〉은 파일럿 프로그램 성격의 실험 드라마였다. 1990년대 후반의 팬클럽 문화를 복원한 이 시추에이션 드라마는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최고 시청률 5%를 기록했다. 연기자보다 가수나 개그맨이 더 많이 출연해 정통 드라마와는 거리가 있었다. 2013년 방영된 〈응답하라 1994〉는 전편에 비해 좀 더 안정된 청춘물의 형태를 갖췄다. 회차별 에피소드 중심인 전편에 비해 삼각관계로 긴장을 주며 미니시리즈로 진행되었다. 1994년에 대학에 들어간 신입생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1990년대 초·중반의 대중문화를 전면에 등장시켰는데, 그즈음의 복고 열풍과 맞물려 최고 시청률 10%를 기록했다.

ⓒtvN 제공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은 1988년을 배경으로 다섯 이웃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마니아 드라마와 청춘 드라마를 거쳐 〈응답하라 1988〉에 이르러서는 가족 드라마의 면모까지 보여준다. 주인공들의 부모 이야기가 비중 있게 다뤄진다. 시청률도 상승세다. 4회 만에 최고 시청률 10%를 돌파하고 평균 시청률도 1회 6%였던 것이 4회에는 8%로 올랐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이 발표한 온라인 화제성 부문 조사에서는 점유율 24.6%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방영 초반부터 기세가 좋아서 시청률은 더 상승할 수 있으리라 예상된다.

〈응답하라 1988〉에서 돋보이는 점은 ‘추억팔이’의 짜임새가 좋아졌다는 점이다. 과거의 정서를 회상할 때 대개 대중음악과 광고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 대중의 원경험이 가장 강한 분야라서 그렇다. 그런데 〈응답하라 1988〉에서는 회상의 코드가 하나 더 늘었다. 바로 코미디언들의 유행어다. 김성균과 덕선(혜리 분)이 “아이고 성 사장~” “아이고 김 사장~” “반갑구먼 반가워~” 하며 그 시절 유행어를 재현한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세대를 나눴다는 점이다. 같은 시대라도 세대가 다르면 누리는 대중문화도 다르다. 〈응답하라 1988〉에서는 주인공 부모들을 통해 그 시절 기성세대가 누렸던 대중문화를 복원한다. 부모들이 모여서 당시의 히트송 ‘아파트’를 함께 부르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대학생인 보라(류혜영)가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와 같은 사회과학 서적을 읽는 모습을 통해 그 시절 대학 운동권의 단면과 세미나 문화를 보여준다. 선우(고경표) 동생 진주(김설)가 〈어린이명작동화〉 같은 어린이 프로그램을 보는 모습을 통해 어린이 문화도 환기시킨다. 이렇게 하면 주인공들처럼 1988년에 중·고등학생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 전후 세대가 함께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게 된다. 잘 만들어진 추억의 오케스트라인 셈이다.

메인 캐릭터가 아닌 조연 캐릭터들은 그 시절 문화를 집중적으로 재현한다. 각자 추억 미션을 수행하는 셈이다. ‘쌍문동 박남정’ 동룡(이동휘)은 그 시절에 유행했던 춤을 보여준다. 오타쿠 김정봉(안재홍)은 그 시절 전자오락이나 우표 수집 등 다양한 취미생활을 보여준다. 바둑천재 택(박보검)이는 ‘바둑의 시대’를 대표한다. 1980년대 후반은 이창호 9단(1986년 프로 입단) 등 천재 바둑 소년이 활약하던 시대였다.

보통 시대의 기억을 복원할 때는 그 시절의 대중문화를 복원하고 큰 사건사고를 환기한다. 〈응답하라 1988〉에서도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친 탈주범 지강헌 사건이 등장한다. 보증을 잘못 서서 반지하 셋방에 사는 성동일은 이 뉴스를 보면서 “돈 없는 것이 죄인 줄 몰랐냐?”라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응답하라 1988〉은 추억의 신문을 펼칠 때 문화면과 사회면뿐 아니라 경제면도 펼친다. 아들의 우승 상금을 투자할 곳을 고민하는 택이 아빠(최무성)에게 이웃들은 ‘금리가 15%밖에 되지 않으니 일산에 땅을 사라’느니 ‘은마아파트를 사라’느니 다양한 충고를 해준다. 학생운동에 관여한 보라의 모습을 통해 정치면까지도 넘나든다.

디지털 시대가 불러낸 ‘아날로그 감성’

〈응답하라 1988〉이 빛나는 점은 지나간 시대 자체를 욕망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가난한 가족을 보여주지만 가난을 비루하게 그리지는 않는다. 가난한 사람과 졸부가 된 사람이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서울에서 살지만 시골 못지않은 정을 나누는 모습이 MBC 드라마 〈한 지붕 세 가족〉(1986~1994)을 떠올리게 한다. 부자들의 고급 아파트 단지와 가난한 사람들의 달동네가 나뉘어 있지만 지금의 도시와 다른 모습이다. ‘가난했지만 그때는 행복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응답하라 1988〉은 〈응답하라 1997〉과 〈응답하라 1994〉에 비해 가족주의 혹은 공동체주의가 도드라져서 ‘가족주의 판타지’ 혹은 ‘이웃사촌 판타지’라는 분석도 나온다.

ⓒtvN 제공<응답하라 1988>의 극 중 성동일(가운데) 가족. ‘가족주의 판타지’가 도드라진다.

이런 ‘추억팔이’ 드라마가 유행에 민감하기로 소문난 tvN을 통해 방영된다는 것도 아이러니하기다. 이덕재 CJ E&M 방송콘텐츠부문 대표는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적 해법이라 할 수 있다. 문명의 이기가 발달할수록, 삶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많아질수록 사람들이 행복해지기보다 피로도만 높아진다. ‘아날로그 감성’이 이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기획한 드라마인데 반응이 예상보다 훨씬 좋다”라고 말했다.

주목할 부분은 이 드라마를 이우정 작가나 신원호 PD 등 예능 프로그램 전문가들이 만들었다는 점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상황과 캐릭터가 중요하다. 상황이 절실하고 캐릭터가 확실하면 에피소드는 끝없이 생산된다. 이덕재 대표는 “예능을 만들 때는 상황 설정에 최선을 다한다. 상황 안에서 인물의 개성을 돋보이게 하고 인물들과의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갈등을 유발시킨다. 그런 과정에서 등장인물들끼리 호흡이 맞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재미를 느낀다”라고 말했다.

〈응답하라 1988〉과 같은 시추에이션 드라마에서는 스토리만큼 에피소드가 중요하다. 매회 시청자들은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까 하는 부분만큼이나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궁금해진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삼각관계가 탄탄하게 구축되어 있어서 드라마 스토리를 따라가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시청자들은 여주인공이 과연 누구와 결혼을 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갖고 드라마를 본다. 이처럼 전반적으로 잘 짜인 드라마지만 한 가지 우려되는 대목이 있다. 쪽대본 제작 방식이다. 따라서 급히 촬영한 후반부가 미리 기획된 초반부만큼의 짜임새를 보여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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